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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
케이트 제이콥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새롭게 부활한 뜨개질의 인기가 놀랄 만한 시대 역행적 현상이라는 게 꺼림칙하지 않으세요? 뜨개질 같은 구식 취미 활동에 시간을 낭비하는 여성들이 과연 자신의 직업적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까요?” p 21
다윈의 말이다. 이 말은 내 생각이기도 했다.
언니와 동생은 손재주가 좋아 뜨개질이나 재봉질을 잘하는데 반해 나는 코 뜨기조차 할 줄 모른다. 나는 스스로 그런 나를 ‘길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여성의 전유물 같은 뜨개질은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인간에겐 퇴보적이고 고립적 방어체계라고 생각하는 내 사유의 단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여럿이 모여서 하게 되는 뜨개질에는 여자들의 ‘수다’가 있다.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던 ‘뜨개질’과 ‘수다’가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거쳐 완벽하진 않지만 자신에게 꼭 필요한 옷을 만들어 낸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과정이 이 책엔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여성의 연대’가 있다.
페미니즘의 기준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페미니즘을 논하고자 했다면 뜨개질이라는 소재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본다. 남성의 아류나 짝퉁이 되기를 강조하기보다 여성이 갖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가부장적 사회에 오롯이 여성의 이름으로 서는 느낌. 너무 강한 페미니즘은 같은 여자인 나에게도 때론 반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혼돈 속에 있는 감정선을 촌철살인의 언어로 정리해줬다면 좀 지나친 과장인가? 그럼에도 나는 나를 알아가는 그 과정이 책속에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의 심취 멤버는 여덟 명 정도 되겠다. 워커 모녀수예점의 경영주이며 이 모임의 리더인 조지아, 그리고 조지아의 후견인이면서 대모격인 애니타, 뜨개질 보다는 수다를 더 좋아하는 K.C, 방송국 프로듀서이면서 이 모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루시, 여성사를 공부하는 다윈(다윈은 순전히 집단 속의 여성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자 이 클럽을 방문했다), 조지아의 고교친구였으나 대학입학 약속을 배신하여 절별 했던 캣, 조지아의 딸 다코타, 수예점의 아르바이트생 폐리의 이야기이다.
조지아에게는 훤칠하고 잘 생긴 흑인 남자 친구인 제임스가 있었다. ‘뉴욕의 공기’속에 충만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사랑을 나누었지만 다코타를 임신시키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파리로 떠나버린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뜨개질을 하며 센트럴파크에서 절망적 눈물을 흘릴 때 미망인인 애니타를 만나게 되고 애니타는 그녀의 첫 고객이자 삶의 지원자가 된다. 다윈은 페미니스트이다. 여성학 논문을 위해 수예점을 취재한다. 그녀의 상처는 부모로부터 길들여졌다는데 있다. 똑똑하고 개성강한 그녀를 보편적 여성으로 키우고 싶어 하셨던 부모의 길들임은 반항만을 키웠을 뿐이다. 루시 또한 부모로부터 길들여졌다는 점은 비슷하나 그녀는 자아보다는 역할(언니, 동생, 딸, 여자친구)들 사이에서만 존재가치가 있었던 여자였다. K.C는 열정을 바쳤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에 이른 마흔을 넘긴 노처녀이다. 그녀의 오랜 꿈이었던 변호사가 되려고 로스쿨입학을 위해 늦은 공부에 도전한다. 캣은 돈 많은 남자의 허영 속 장식품으로 살다가 조지아와 뜨개질클럽을 통해 이혼을 감행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제2의 성장을 시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안에는 지금도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많은 여성들의 힘겨운 세상과의 싸움을 엿볼 수 있다. 혼자였다면 더 힘들었을 일들을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이끌어주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삶을 창조해 나간다.
그 창조의 과정을 뜨개질이라는 여성적 전유물에서 발견해 내는 과정도 흥미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털실을 고르는 일이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최고의 털실을 고르라고 말한다. 최고의 작품을 원한다면 그 기본에 가장 충실하게 투자하라는 말이다. 『무형의 에너지들을 끌어 모아 우리의 영혼에 깃들인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그것이 뜨개질 속의 인생이다.
두 번째는 첫 코 뜨기이다. 첫 코를 뜨는 데는 수십 가지의 방법이 존재하고 그 방법은 뜨는 사람의 기술 혹은 옷의 디자인에 따라 다르다. 어떤 시도를 하든지 간에 그 작품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게이지내기이다. 작품을 자신의 몸에 맞게 설계하는 작업이다. 이 또한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둔다. 뜨개질을 할수록 코의 형태는 변형되는데 두 사람이 똑같은 사이즈와 똑같은 타입의 바늘을 써도 코의 크기와 밀도가 다르고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의 작품이 각자에게 모두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겉뜨기와 안뜨기인데 겉뜨기는 매끈하고, 안뜨기는 울퉁불퉁한 것처럼 겉뜨기는 당신이 세상에 내보이는 쪽이고, 안뜨기는 우리의 내면일 수 있으나 모든 매듭은 안뜨기를 통해 마무리 된다. 아름다운 겉뜨기를 보이기 위해 내면의 고통을 감수했을 때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복잡한 스티지를 마스터해야 하는데 이 또한 순탄치만은 않은 우리인생의 안뜨기의 과정이 아닐까? 잘못된 부분을 풀어내기도 하는 것처럼 진정한 삶은 용서를 통해 다시 재회할 수 있음도 말해준다. 살다보면 그냥 놓아버리고 싶은 경우도 많은데 힘든 순간 놓아버린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 ‘다시 시작’해보자. “미완성 작품을 계속 붙들고 있게 만드는 건 은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잘 마무리 하려면 풀리지 않게 코막음을 해야 할 것이며 각자 뜬 판들을 잘 이어 붙여야 하고 스스로를 사랑으로 에워싸듯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옷을 입어보는 일이다.
부모나 사회, 남자에 의해 종속되었던 삶을 사는 여자들은 서로 연대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고 꿈을 이룬다. 나는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로 살고 있다. 매일 밥상을 차려야하고 빨래를 해야 하고 똑 같은 식구들을 보는 것이 지겨울 때가 있다. 의외로 그런 날은 참으로 많다. 밥이 지겹고 밥을 위한 벌이가 지겹다. 나는 없어지고 부엌데기만 남아 있는 듯한 절망감도 수시로 느낀다. 그러나 그 일들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처럼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떤 이는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했지만 허기진 배도 그리 유쾌하진 않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지만 새로운 최고의 털실을 고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격려했던 도전과 맹세들을 생각해본다. 분명 쉽지 않은 일들이 있겠지만 이겨내는 힘도 나에게서 찾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되는 일’이리라.
조지아는 암으로 죽어가면서 딸인 다코타가 “착한 사람이 될게요.” 라고 할 때 힘겹게 말한다. “아니야. 그냥 너 자신이 되면 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