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읽기 세창명저산책 103
곽영직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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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사랑하는 하느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 과학자들 몇 명이 모여서 며칠간 토론을 하던 도중에 양자 역할을 부정하며 한 이야기입니다. 보어가 그 말에 대한 반박으로 “우리는 하느님에게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한다고 지시할 수 없다.”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아인슈타인이 없을 때에 어떤 물리학자가 문제 제기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툭하면 사랑하는 하느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과학자가 종교적인 전통에 기대어도 되는 것이냐구요. 그 질문에 또 다른 물리학자는 과학자가 종교이야기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인슈타인보다 플랑크가 더 심하다고 합니다. 그 말에 하이젠베르트가 계속 답을 이어나갑니다. 플랑크가 종교와 과학이 전혀 다른 영역에 관여하기 때문에 조화를 이룰수 있다고 생각한다구요. 자연과학은 객관적인 물질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맞냐 틀리냐가 문제가 되지만, 종교는 가치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선이냐 악이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과학자 파울리가 동의하고, 디랙이 터무니 없는 소리들을 한다고, 신은 없다라고 주장을 하는 와중에 파울리가 농담을 합니다. 드디어 디랙이 종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은 없다.” 라는 종교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서 모여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양자역학을 연구하던 물리학자들의 에피소드를 살짝 소개한 것인데요, 이 짧은 내용만으로도 우리가 과학자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과학자들이 실험만 하지 않고, 토론을 굉장히 많이 하는구나. 그리고 종교와도 관련을 지어 이야기를 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고대에는 수학자가 철학자고 정치가였지요. 그게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20세기 초중반까지도 그런 분위기가 어느정도 이어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과학을 철학적인 문제에 기반을 두고 서로 토론을 하며 결론을 얻어내려고 노력했던 반면, 미국의 실용주의가 힘을 얻게 되면서 우리가 생각하듯 과학이 결과 중심으로 그 형태가 달리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들은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에만 치중하는데 반해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는 양자역학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의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도 가지게 되어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양자역학에 대한 책읽기를 세창 명저산책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읽기를 통해 입문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명저산책들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을 전공한 교수님께서 중고생 일반인들이 읽어도 무리가 없게 만들어주신 고전 해설서입니다.

책 제목이 왜 부분과 전체일까요? 부분과 전체 원본에는 딱히 언급이 없습니다. 세창미디어의 «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읽기 »에서 부분은 개개의 과학적 사실이고, 전체는 부분의 연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개인주의과 구조조의를 염두에 두고 책을 봤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도 2차 대전 이후 요즘 미국 젊은이들은 개별적인 일에만 신경쓴다며 끝을 맺는 것을 보며 그런 의미가 아닌가 생각했지요. 그러면 이 책이 과학책인가, 사회학 책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구요. 시험 치는것도 아니고, 각자 이해하는 만큼 받아들이는거라 내 나름의 이야기를 풀고 싶어서 양자역학에 대해 주위에 물어보고 알아보았습니다. 뉴턴의 지동설처럼 우주와 지구, 거시 세계를 연구하는 고전물리학과는 달리 현대물리학은 원자와 전자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을 이야기하는 미시 물리학임을 빚대어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합니다.

제가 자화상自花像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에 사진집도 만들고 개인전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 하고자 했던 이야기와 저는 연결이 되었습니다. 개개인이 다 다른 역사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무심하게 겉만 대충 보고 ‘~겠거니, ~카더라’ 식의 판단을 함부로 하지 말아주세요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을 벗어나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하고자 식물의 세계를 미시적 시선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또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식물의 모습과는 달리 그 속에 품고 있는 새로운 세상이 보이거든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가 물리학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아주 작은 단위인 원자와 전자- 쿼크의 세계를 이야기 하고자 했다면, 겉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성을 들여다보자고 했던 내 사진 이야기로도 이 책을 풀 수 있는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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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읽기 세창명저산책 103
곽영직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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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할아버지~
사랑하는 하느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시던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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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신과의 만남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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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톨릭 출판사 캐스리더스 11월의 도서는 아드리엔 폰 슈타이어의 『사랑, 신과의 만남』입니다. 아드리엔 폰 슈타이어는 캐스리더스 9월 도서에서 읽어 본 『기도의 세계』 저자입니다. 『기도의 세계』에서는 성부와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책 『사랑, 신과의 만남』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일체에 대한 통찰과 성삼위께서 우리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어떻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슈파이어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순간부터 이미 삼위일체로 존재하셨다고 합니다. 창조주로서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좋은 것만을 지어내기로 마음 먹었으니, 좋은 것에서 아예 벗어나는 창조는 있을 수 없고, 좋은 것 만을 당신의 의중과 판단 안에 두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어 하늘에 계신 원형과 멀어지게 됩니다. 성자께서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창조때의 인간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려 애쓰시고, 그로 인해 우리는 다시금 성부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성부를 닮아 무한으로 만들어 졌지만 죄로 인해 유한으로 변했습니다. 성자께서는 인간의 유한성을 지니고 나타나셨지만 인간을 위해 목숨을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고, 성자는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영역인 무한의 세계로 들어가셨습니다.
처음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불러 대화를 하시는데 그것이 기도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계속 대화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유한한 삶으로 떨어진 인간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 성자에 대한 기억, 성령의 부르심,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허기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한 허기짐은 미사를 통해 영하는 성체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앙인들은 삼위일체를 통찰하기 위하여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서 시선을 돌리는 것을 〝관상〞이라고 합니다. 관상은 성부의 세상 창조 및 그 분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성자께서는 인성을 취하여 성부께서 만드신 인간이 좋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성자께서 온전히 사람으로 사시는 한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에서는 신적인 것을 구분하기 어렵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성자께서 마련하신 표지 안에서 작동하시지만 성자와는 달리 인간적인 형태가 아니라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과 닮은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처럼 성령의 오직 영으로 존재하심은 성자의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킬 뿐 아니라 성자의 사람되심에만 편중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합니다. 신앙인은 성사를 통해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자께서 오직 성부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셨던 것처럼 인간도 성부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개별적이고 저마다의 다른 인격들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가다듬어져서 하나로 모입니다. 죄를 저지른 인간은 죄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성자께서 하느님의 언어인 선의 언어로 통역해 성부께로 전달해드립니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이신 하느님의 마음에 들때까지 하느님께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 중에 각 개별 신앙인의 유한성과 하느님의 무한성 사이에서 생기는 틈을 하느님께서는 눈감아 주십니다. 그렇게 인간은 교회를 통해 자신의 유한한 한계를 뛰어넘게 됩니다. 주님께 내맡겨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려고 비틀거리며 나아가고자 애쓰는 사람은 헛발질 할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붙잡아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께서 나아가게 해주시는 〝문〞이자 〝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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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 예수를 읽다 발타사르 신학 시리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신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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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캐스리더스 10월의 도서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리뷰입니다. 저자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는 20세기 위대한 신학자로 세계의 심장에서 하느님을 학문적인 시선보다 사랑의 시선으로 만날 때에 온전히 그 분을 만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고, 이번 책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발타사르는 계몽주의에 배경을 둔 신학이 예수님에 대한 신비를 벗어나 진정한 예수다움을 못 보고 예수님에 대한 연구 및 성경 주석이 예수님에 대한 지식적인 면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을 염려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여러 위인들이 인간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이야기 했지만 그들이 각각 통찰한 인간을 바라본 시선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한꺼번에 놓고 봤을 때 그건 인간의 모습이 아닌 스핑크스 같은 형태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내려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데요, 그 높은데서 내려오는 빛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예수께서 인간을 어떻게 간파하시는지 성경 구절들을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우리 인간은 예수님을 어떻게 아는 것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배경으로는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체험하고 고통을 겪음을 통해 아시고, 하느님, 예수님, 성령의 일치하에 예수님께서 인간을 아는 그대로를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세상이 받아야 할 심판을 성부와 아드님의 관계 안으로(물론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함께 작용하십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지고하신 삼위일체적 사랑의 활동입니다. p.52

 

인간은 지식으로는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인간에게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불어넣음으로써 예수님을 알게 됨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책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참되게 여기고, 실천을 수용하며,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것으로 바로 알 때에 우리는 비로소 삼위일체의 영원한 삶 안으로 인도되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성령에 힘 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1코린 12,3) p.150

 


예수님과 신앙인 사이에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 10,14) 이 상호적인 앎은 상호적인 개방으로서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고, 안을 들여다보도록 허용합니다. 이것은 어떤 임의의 삶이 아니라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 17,3)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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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세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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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

9월 가톨릭 북 캐스 리더스 리뷰 도서는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가 쓴 기도의 세계입니다. 처음 책을 받자마자 엄청난 두께에 기도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구나 직관적으로 알았더랍니다. ^^ 특히 책 초반부 2장 1절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 부분은 이 책의 핵심이자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지만 다행히 그 부분 이후로는 무난하게 읽혔습니다.

리뷰는 이 책의 핵심내용을 담고 있는 2장 기도의 원천을 중심으로 해보겠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삶이자, 그분의 현존하심에, 그분의 신적이고 삼위일체적인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합니다. 간략하게 다시 이야기하면 기도는 믿음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원죄를 지은 이후로 하느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 시작,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기도라고 부르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시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반성하는 회개가 우선이 되어야만 하는데요, 이는 하느님께 깨끗한 마음을 보여드려야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슈파이어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기도의 원천에서 으뜸으로 이야기합니다. 기도는 삼위일체의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원리 안에 기도의 내적 근원이 있는데, 삼위일체 대화의 모든 말씀은 서로에 대한 흠숭이자 결속입니다. 성삼위의 대화인 기도에서, 바라봄은 관상의 핵심이자 서로 기대하며 청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생각하시고 이야기하시는 모든 것은 언제나 성자안에서 이해되고 파악됩니다. 성부의 말씀은 기도이며 그 말씀은 동시에 성부와 성자의 대화입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창세 1,26) 창조 활동을 하시는 동안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에게 대화를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창조 활동에 스스로 흡족하시어 “보시니 참 좋았다” 말씀 하셨던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들의 대화이자 이 또한 일종의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을 인간이 갈구하게끔 되고, 인간은 기도를 통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 속에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안에 청원기도의 근원이 있습니다. 성부께서는 성자께 청하고 성자께서는 성부의 의도를 받아들이십니다. 인간이 바치는 모든 기도안에는 하느님의 결정이 들어있으며, 인간이 내리는 결정은 언제나 이미 하느님의 결정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인간의 뜻과는 전혀 다를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대로만 기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청원기도이든 염경기도이든 관상기도이든 어떤 기도를 할 때라도 기도의 가장 기본이고 완벽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함께 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바치는 기도는 공동체의 기도에 흡수되어 더 큰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기도 즉, 미사 참석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 외에 책에는 어릴때부터 엄마가 기도를 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기도를 익히게 되고, 엄마가 외출하여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엄마의 존재를 알고 있듯이 하느님이 눈에 안보여도 하느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아이는 저절로 알게된다는 이야기,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 해야지 내 이야기를 쏟아놓기만 하면 안되다는 이야기 등 기도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을 알려줍니다. 평소 자주 들어서 아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머리로 아는것과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하여 내면으로 스며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요.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느끼지 않으면 우리는 늘 하던대로 계속 실수를 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성찰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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