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월 2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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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기를 기다려 인월 2를 만났다. 1편에서 헤어진 사람들이 하나의 끈으로 얽혀 하나 둘,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조인수의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얼마전에 종영한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의 홍길현과 겹친다. 3편에서 이어질 내용들이 궁금하지만 또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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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 1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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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 시리즈 이후 오랜만에 만난 김혜린의 만화다. 불의 검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드는 내용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진 인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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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 대한민국 최초의 부채 세대, 빚 지지 않을 권리를 말하다
천주희 지음 / 사이행성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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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대학에 가는 줄 안다는 것. 나이가 몇이냐가 아닌 '몇 학번이냐?'를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대학 재학 중 휴학 한 번씩은 당연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 쯤이면 대학원 진학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교는 잠시 들렀다가 무단 조퇴를 감행하며 아르바이트를 가던 학생도 고3이 되면 당연히 대학에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성적과는 관계없이 이름있고, 인기있는 학과에 게다가 취직도 잘 되는 것이면 좋고, 지역은 서울 근교인 대학을 추천해 달라는 사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는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소개되긴 하지만, 그들이 소개된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희소성을 의미하는 것.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에서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을 짊어지고 시작하는 스무 살 청년들의 현실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으면 되지 뭐하러 아르바이트를 하느냐고 하겠지만, 사람이 숨만 쉰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건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일 뿐이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 공과금 10여만원, 식비 및 교통비 20여만원, 책값과 그 이외로 들어가는 학습비를 알파비로 든다면 한 달에 90만원 정도를 생활비로 써야 한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는 날은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열아홉 살에 이미 완벽한 인간이 된 것처럼, 자신의 모든 진로를 정하고 앞으로 그 길만을 향해 갈 것 같은 학생임을 증명하는 자소서(자소설)와 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는데,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꿈은 온데간데 없고 '돈'이라는 것에 얽매이게 되는 현실.

'개천에는 이제 용이 없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 사회 가치관의 문제가 우리의 아름다운 청년들이 결코 아름답지 못한 청년기를 보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공대로 직업을 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점수 맞춰 취직 잘 되는 과로 입학하라.'

모순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 내내 진학하고 싶은 학과에 맞추어 활동내용을 만들어갔는데, 정작 대학에 입학하니 소용이 없다?

대학은 이미 진리를 탐구하던 기능은 상실한 채 취업사관학교가 된 지 오래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곳.

어느날 갑자기 과는 통폐합되어 사라지고, 후배도 없고, 군대에 갔다왔더니 다니던 학교가 사라지고.

여기저기 '평가'라는 이름으로 얼룩진 사회.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평가를 한다는 말인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뭐하러?

그러나 이런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사회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나 또한 고졸과 대졸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었고, 대학진학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의 말에 동조는 했으나 완전한 동조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문대학이라도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고등학교까지는 공부가 아닌 학습이다. 대학에 가서 원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다.' 라면서.

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알면서도 바꾸려 하지 않았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사회를 비판한다. 그런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라고. 그러니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사회가 바뀌려면 사회를 이루는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함에도 말이다. 나는 나와 사회를 별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빚을 권장하는 사회이나 그 사회를 만들어간 사회의 일원이 나임을 인정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하고, 고등학생을 지나면 대학생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로 인해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이 이 사회 구조적 가치관을 바꾸어가는 주역이 되기를 욕심내 본다. 당신들세대에서 만큼은 대학이란 것이 필수가 아니 선택인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달라고. 나처럼 사회 구조적 문제를 알면서도 동의하지는 말아 달라고 말이다.

대학등록금이 어느 수준까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의 금액으로 낮아지기를 바라본다. 스무 살 어른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살기에, 갓 새내기가 즐겁게 자신의 진로를 향해 공부라는 것에 매진하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말이다.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대학에서 전공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더 많이, 더 깊이 배우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면 모두가 대학에 목을 메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대학에 왜 가는가?'란 질문에 남의 생각을 이유로 들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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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 대한민국 최초의 부채 세대, 빚 지지 않을 권리를 말하다
천주희 지음 / 사이행성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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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삶은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사회구조적 문제는 분석했으나, 이를 심화시키는 젊은이들의 ‘선택‘은 부재하는 내용이다. 대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임을 주장하면서도 사회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대학에 간다면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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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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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팔당호를 끼고 돌다보면 다산유적지에 다다른다. 넓고 깨끗하게 가꾸어진 공원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의 이야기로 만들어 간다. 다산유적지를 끼고 돌다 작은 샛길로 접어 들어가면 기와 고운 작은 성당이 있다. 마재성지다.

십자가에서 한 손을 내려 인간의 손을 맞잡아 주는 예수그리스도가 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한 손을 내린 그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시간을 부탁하곤 한다. 나도 그랬다. 마재성지를 돌아 나와 이제는 관광지가 된 능내역에서 아이스케키통이며 우체통을 감상하며 다리 힘을 비축한 다음 다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어쩌면 죽어라 밟다보면 두물머리에 도착한다.

다리 건너 세미원에 연꽃이 필 때도 좋고, 스산한 바람에 따뜻한 햇살이 물드는 가을도 좋다. 핫도그 하나를 우물거리면서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걷다보면 강물이 만나는, 그야말로 두물머리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잠시 흐르는 물이 정말 만나고 있는지를 살피다가 저 멀리 보이는 수종사를 바라보고 다시 왔던 길을 기우는 시간과 함께 돌아온다.

두물머리는 흑산의 주요 배경 중 하나다. 마재 성지도, 정약용 생가가 있는 다산 유적지도 그렇다. 흑산을 읽으면서 내게 익숙한 곳이 등장하니 내용 하나하나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과 황사영은 이곳에서 자신의 선택하고 걸어가야 할 길을 닦았다. 흑산은 천주교 세례를 받고 사학죄인(邪學罪人)이 되어 쫓기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흑산에는 정약전의 흑산 유배기와 사학죄인으로 쫓기고 죽임당하는 민초들의 이야기가 얽혀있지만, 나는 정약전이 아닌 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수없이 외웠을 기도문에서 찾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주여, 우리를 매 맞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을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무도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 죄를 묻지 마옵시고 다만 사하여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p.58-59)

 

그들은 매 맞아 죽었다. 노비라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에 목말라서.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진 것 보다 많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빼앗아가는 위정자들과 그들에게 기생하는 자들로 인해 굶어 죽었다.

그들은 어미 아비 자식이 뿔뿔이 헤어져 살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고 팔렸다. 어미는 제 자식을 두고 남의 집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살다 죽었다. 오라비는 살기 위해, 오래 전에 헤어진 누이를 만났다는 기쁨을 두려움과 바꿔 누이를 죽였다.

그들은 살고 싶었다. 하늘나라에서 얻는 평온보다 현실에서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으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들의 바람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절실함을 이용해 서로를 배반하게 만들었고 죽던가, 죽은 것처럼 살던가, 죽은 것보다 비참하게 살던가를 선택하게 했다. 어느 한 쪽도 기울어짐 없는 참혹함이 묻어있는 선택이었다. ‘흑산(黑山)’이나 자산(玆山)’이나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그들은 배반한 사람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했다. 어떤 선택도 그들의 죄만은 아니기에. 다만 주님께서 사하여 주시기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누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죽었고, 누구는 배신으로 삶을 이어갔다. 죽은 이는 성인(聖人)이 되고 산 이는 배신자로 기록되었거나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 모두 자신의 길을 살았으니 무게를 잴 수 없는 그들의 모든 삶은 같은 것이다. 그들 모두 그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도 누구를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닌 것을.

그렇다. 모두가 성인(聖人)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성인(聖人)이 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하니까그래야 이어갈 수 있으니까

나에게 국가의 이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천주교를 버리지 않으면 죽음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

그러면 나는

차라리 죽음을 달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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