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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The Story of P.C. ㅣ K-픽션 19
구병모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10월
평점 :
아주 얇은 82쪽짜리 책, 그나마 한 쪽은 한글, 한 쪽은 영어인
'피씨주의자'라... 무슨 의미일까? 영문 제목은 『The Story of P.C』다.
굳이 이 책을 내 책방에 들여놓아야하는지는 의문이었으나, 맘 좋은 동료가 건네 준 것이니 일단 읽고 보자.
P.C는 주인공이자 서술자(마지막에 밝혀지지만)이다. 피씨. P.C는 무엇일까?
피씨주의자니까 피씨를 중심으로 피씨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니
personal computer?
개인적이면서도 공공의 의사소통 공간인 SNS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personal communication / public communication?
P.C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부여되는 사회적 의미와 인권 보호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것이니까
protect the character?
자신이 쓴 소설로 인한 대중들의 비판과 함께 개인적인 삶에서 이겨내야 하는 고통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이니까
pain control?
나의 짧은 영어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내용은 간단하다. '현실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p.68)'인 피씨가 대중들의 질타와 요구에 타협하는 소설을 쓰다가 결국 글을 접는다는 이야기.
피씨가 어떤 식으로든 노력했으나 대중은 또 어떤 식으로든 그의 소설을 비판했다.
현대의 SNS가 지니는 민낯이 드러났다.
서술자 '나'는 피씨와 SNS에 글을 쓰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의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오래지 않은 SNS 경험에 따르면 그곳의 말들은 전기포트 속 물방울이었다. 포르르 끓다가 부서지는 거품이 수면에 다시 합류했다. 일부는 증발하여 공기 중을 떠돌았다. 그대로 두자 물은 식었다. 때를 보아 스위치를 넣으면 다시 끓어 방울진 거품을 피워 올렸다. 그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며 거품의 토대가 되는 수면의 높이만큼은 어느새 눈에 띄게 낮아진다는 사실이.... 저마다 입에 칼을 물고 손에 도끼를 들었는데도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전기적 신호의 공간에서 최상의 포지션은 구경꾼이었다.'(p.44)
적절하고도 놀라운 비유였다. '그곳의 말들은 전기포트 속 물방울이었다. 때를 보아 스위치를 넣으면 다시 끓어...' 라니.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포지션은 구경꾼이다. 가장 안전한 포지션. 피씨는 그렇게 구경꾼의 포지션을 선택했다. 자신이 올린 몇 줄의 해명이 다시 ON스위치가 되어 방울진 거품이 다시 피워 오르는 것을 보면서 눈에 띄게 낮아진 수위를 확인하며, 다시는 끓어오르지 않을 것을 기대하면서 내 놓은 소설들은 의도와는 다르게 전기포트 속 물을 팔팔 끓였다.
그리고 피씨는 자신의 현실로 돌아간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흘러가는 말들을 포착하여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 물방울의 표면에 새겨나가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은 원래의 가장 올바른 자리로 돌아가기에, 그리고 말의 죽음을 맞이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일 뿐이다.(p.78)'
원래의 가장 올바른 자리, 말들은 이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의 자리로 돌아간다. 부서지지 않을, 살아있는 말로 돌아간다. 말의 죽음을 맞이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 피씨로 활동하던 서술자 '나'가 오롯이 '나'로 돌아가기에 적절한 시간. 그것은 스스로 모든 것으로부터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아닐까?
짧지만 강결했고, 현대의 SNS 문화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피씨가 '나'임이 드러나는 순간의 담백한 반전까지 서비스로 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