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의 사전편집부에서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기까지 15년이란 시간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배를 엮는다는 제목이어서 그냥 지나치다가 '배'가 아닌 '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표지에서 발견하고 - 전공은 또 이런 것에도 작용하는구나 하며 - 대출. 일하는 틈틈이, 퇴근 후에 놓지 않고 읽었다. 여전히 종이 사전을 찾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껏 사전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사전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감탄만 했을 뿐.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많은 단어의 의미를 정의할 수 있지?'
이 소설을 읽으며 사전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 쏟는 사람들의 열정과 사전에 사용되는 종이에 쏟는 노력까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p.36)
내용은 간단하다. 23만여개의 단어를 담은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기를 계획하고 완성하기까지의 15년 세월 동안 사전 편찬을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이야기. 긴 세월동안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질투와 이해, 배려와 사랑, 존중과 존경을 통해 공동체가 되어가는 이야기.
늘 부스스한 외모에 말을 잘 하지 않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름 언어학 전공에 대학원까지 졸업한 인재라고 했지만-영업부 신입사원 27살의 마시메 미쓰야. 이름만큼 성실한(마시메-성실하다) 마시메가 외부 편집자인 아라키의 눈에 띄어 사전편집부로 들어가게 된 후 용례채집가인 감수자 마쓰모토, 편집자 사사키, 마시메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진심을 알아가는 니시오카가 만나 말의 항해가 시작된다.
마시메가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뭘까? 그는 언어학을 전공했고, 수많은 책을 읽었다. 아라키가 질문하는 단어에 대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용례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말이 없었고,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말들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를 만든다는 설정은 꽤나 흥미로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마시메도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가장 인간적으로 공감된 것은 니시오카다. 왠지 가벼워 보이는 사람, 뺀질이 이미지를 지닌 그는 마시메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고, 그때문에 내적인 갈등을 겪었으며 처음부터 자신이 참여했던 편집부를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편집부와 마시메를 진심으로 걱정했고 도왔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는 고민했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좋은 아빠가 된 모습이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에 괜히 반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어찌보면 이 소설은『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직장인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고 봐도 될 것이다. 다만 『미생』엔 없었던 러브라인이 있다는 것이 차이. 마시메는 자신이 하숙하던 집 다케 할머니의 손녀인 가구야와 사랑하고 결혼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 마시메가 보잘 것없다고 생각하던 마시메가 지닌 재능을 발견하고 질투하면서도 인정하고 마시메를 걱정하며 돕는 니시오카도 오래 알고 지낸-그래서 소중함을 잘 몰랐던, 그러나 늘 돌아가고 싶은-래미와 그만의 방법으로 사랑하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다소 늦게 합류한 기시베는 제시 영업사원인 미야모토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어찌되었든 이들은 사전 편찬을 위해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재능과 성격까지 깨달아가며 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나 《대도해》의 출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니시오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시메를 도울 방법을 만든 후 사전 편집실을 떠나 선전광고부로 가게되고, 사전 출간을 위한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다른 사전 편찬 작업을 병행하며 결국 15년이나 흘러 패션편집실에서 온 기시베까지 합세한 가운데 사전이 완성된다. 그 사이 마쓰모토는 사전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병으로 별세한다.
모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열정을 품고 일한 만큼 사전은 완성도를 높였고, 사전은 무사히 출판된다.
사전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는 파티장, 아라키는 마지메에게 "내일부터 바로 《대도해》개정 작업을 시작하자고."라고 말한다.
"아무리 말을 모으고 뜻풀이를 하고 정의를 내려도 사전에 진정한 의미의 완성은 없다. 한 권의 사전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한 순간, 말은 다시 꿈틀거리며 빠져나가서 형태를 바꿔 버린다. 사전 만들기에 참여한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가볍게 비웃으며, 한 번 더 잡아 보시지 하고 도발하듯이."(p.92)
매일매일 새로운 말들이 만들어진다. 청소년들이 만들어내는 줄임말, 사회풍토를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넘쳐나는 말의 바다에서 허우적댈 때가 많다. 대화에서 소외되고 때론 왜곡된 의미로 잘못 이해해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때론 너무 말이 없어 힘들기도 하다. 누군가와 말 한 마디 나눌 수 없는 혹은 정말 내가 필요한 말을 나눌 수 없는 상황도 있다. 늘 말을 사용하지만 말의 소중함은 몰랐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말'에 대해 잠시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부디 좋은 배를 만들어 주게. 아라키는 간절히 바라며 눈을 감았다. 많은 사람이 오래 안심하고 탈 수 있는 배를. 외로움에 사무칠 것 같은 여행의 날들에도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배를. 자네라면 분명히 할 수 있어."(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