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확하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뭐 그당시까지는... 지금은... 글쎄?라는 물음표를 붙여본다.)라고 생각한 미국에 집이 없어 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때가 있었다. 빈곤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자리에서 쫓겨나 집세를 못 내는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먹고 자고, 동네 공중화장실에서 씻고, 봉사단체에서 나눠주는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도 없이 지낸다는 것, 대한민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설마 미국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바바라 오코너)』에는 딱 그런 처지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25센트 동전 꾸러미 세 개와 꾸깃꾸깃한 1달러짜리 지폐만 가득 들어있는 마요네즈통만 남겨두고 갑자기 가족을 떠나버린 아버지.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하며 고군분투하며 지쳐가는 엄마, 그리고 더이상 학교가는 버스를 타지 못하는 조지아와 토비. 이들의 삶은 마요네즈통 속의 지폐처럼 꾸깃꾸깃해졌다. 가장 친한 친구인 루엔과도 멀어지고 차 안에서 식은 음식(음식이라고도 할 수 없는)을 먹고 동네 주유소 화장실에서 대충 씻어 점점 지저분해지는 자신의 외모와 학교생활에도 지쳐가는 조지아의 소원은 단 하나, 집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던 그때 우연히 발견한 개를 찾는다는 전단지, 그리고 사례금 500달러. 500달러라니...
조지아는 그때부터 개를 훔칠 생각을 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다. 노트에 한 자 한 자 개를 훔칠 방법을 적어가는 조지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친구들이 영화 본 이야기를 할 때, 친구들이 그럴듯하게 과제를 만들어 오고 발표할 때, 발레학원 가방을 메고 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뒤돌아서 자신에 대해 수근거리는 친구들을 대했을 때... 조지아는 반드시 개를 훔칠 것이고, 사례를 받아 집을 구할 것이라는 다짐을 또 하고 또 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개를 훔치고, 개를 숨기고, 그 개를 찾아주는 척하며 사례금을 받겠다는 조지아의 계획이 너무나 치졸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지아는 절박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잘못 중에 가장 잘못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아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집에 대한 간절함. 그것은 깨져가고 있는 관계를 어떻게든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삶의 방향을 전혀 다른 곳으로 바꿔놓듯이 조지아의 계획도 무키 아저씨의 등장으로 얽혀버린다.
무키아저씨... 키다리 아저씨처럼 부자도 아니고 미남도 아닌 손가락이 세 개뿐인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무키아저씨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유일하게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녔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배려하고 도와주는 사람. 조지아가 윌리를 훔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으며 조지아가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고장난 엄마의 자동차 앞을 그냥 지나쳤던 그는 그들이 모르는 사이 자동차를 고쳐준다.
"때로는 말이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고-."(p.210)
잘못을 알았을때 멈추지 않으면 더 많은 잘못을 하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조지아에게 경고하는 말일지 모른다. 조지아에게 더 늦기 전에 윌리를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개를 훔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조지아... 무키아저씨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자동차까지 고쳐주었다는 것을 짐작한 조지아는 윌리를 카멜라 아주머니 집에 돌려 놓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 조지아는 자신의 잘못을 사실대로 고백한다. 마요네즈 통을 채운 지폐들 이야기부터 무키아저씨의 이야기까지... 아주머니는 조지아에게 윌리의 산책을 부탁한다. 그녀 나름의 용서방법이었을 것이다. 조지아는 무키아저씨가 한 말을 되새긴다.
"살면서 뒤에 남겨놓은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조지아는 절박하다는 이유로 윌리를 훔치고 카멜라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준다면서 사례금을 받으려했다. 그러나 그런 완벅한 계획을 뒤로 하고 자신의 잘못을 되돌렸다. 조지아가 개를 훔쳤다는 사실은 남았지만, 또한 잘못을 뉘우쳤다는 것도 남았다. 그리고 개를 훔치기 전의 조지아보다 잘못을 인식하고 '절대로 개를 훔치면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조지아는 더 한층 성숙해졌을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무리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