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분마다 기억이 끊겨 모든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박사, 미혼모가 되어 아들을 키우며 씩씩하게 사는 가정부인 나, 그리고 나이보다 마음이 깊고 타이거스팀의 열렬한 팬인 아들-박사는 나의 아들에게 루트라는 별칭을 지어준다. 이 책은 이 세 사람의 우정과 사랑이 수학이란 아름다운 학문에서 시작되고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기억해야 할 내용들을 적어 클립으로 덕지덕지 붙여 놓은 박사는 사고로 인해 머리를 다친 후 80분 간격으로 기억이 리셋 되게 되었고, 작은 별채에서 숫자와만 대화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박사의 가정부로 들어간 나는 박사를 이해하고 박사가 말하는 수식과 소수 등에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대하고, 박사는 나의 어린 아들이 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어린 아들을 걱정하며 하교 후 자신의 집에서 엄마의 퇴근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박사는 아이에게 '루트'라를 별칭을 붙이고 나의 아들에 대해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따뜻함과 배려를 보여준다.
박사는 루트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고 흥미로운 수학의 세계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의 연구에만 집중하던 시간을 내서 루트의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해 주고 격려하며 새로운 것을 가르쳐준다. 루트도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호기심을 갖고 열심이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날 루트가 손가락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박사는 평소의 힘없는 노인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루트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가고 루트를 걱정한다. 외출을 전혀 하지 않는 박사와 함께 야구 경기를 보고 온 날 박사가 아파서 나는 아들과 함께 함께 박사의 집에 머물며 박사를 간호하고, 이 때문에 박사를 돌봐주는 박사의 형수- 박사가 사랑한 여인-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나는 박사의 메모를 늘 가지고 다니며 힘들 때마다 보면서 힘을 얻는다. 어느 날 형수는 나를 다시 불렀고, 박사는 형수에게 ⟪eπi+1=0⟫라는 수식을 보여준다. 형수는 그 수식을 본 후 다시 나를 채용한다.
박사가 쓴 수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고 불리는 '오일러의 공식'이다. 책에서는 '나'가 이 공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에서 수학 관련 책을 찾아보며 이 공식이 오일러의 공식임을 알게 되고 수학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는 장면이 나올 뿐, 이 공식에 대한 다른 부연 설명은 없다. 이 수식을 본 형수는 왜 아무 말 없이 나와 루트를 허가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고, 이 공식이 가지는 무게감을 느끼는 만큼 답답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반납하던 날 도서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잡지코너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과학 잡지 N지의 표지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 eiπ+1=0’이라고 적혀있었다. 와우!
오일러의 공식 전체를 이해하기는 불가하였지만,
‘오일러의 등식에 등장하는 원주율 π, 허수단위 i, 네이피어 수 e는 수학계의 3대 선수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수학의 여러 장면에 등장한다. 오일러의 등식이 가진 아름다움을 실감하려면 이 π와 i와 e의 태생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는 설명에서 나는 이 공식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태생이 전혀 다른 박사, 나, 루트가 이루어내는 조합. 그들 사이에 만들어진 ‘情’을 더하면 가장 완전한 수 ‘0’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0’은 시작이고 끝이며, 끝이고 시작이니까...
그 이후로 이어진 박사와 나, 루트의 따뜻한 동행은 박사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고, 추억은 나와 루트의 마음에 남아 삶의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살면서 누군가와 이토록 따뜻했던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축복이리라.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가 서술자이긴 하지만, 박사와 루트가 서로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 기억을 이어주기 위해 애쓰던 어린 루트가 참 대견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통한다. 그 기억이 80분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80분이 이어지고 이어져 기억 저편에 머물렀을 기억조차 따뜻함으로 남을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