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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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깥은 여름' 이후 다시 김애란 소설을 읽었다. 

우리 삶이 가장 버거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건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아닐까?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행복동이 우리 삶의 전부였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난장이였다면 괜찮았을까?

<안녕이라 그랬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머니가 많은 사람들 사이,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각자의 삶을 어떻든 살아내고 있었다. 내 삶을 자기들 마음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사람들 앞에서 적당히 자신을 숨기며, 적당히 타협하며, 또 적당히 불행하게 느끼며...그럼에도 현재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자존심을 지키며 그렇게 버티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p.24)


사람들은 자기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타인의 불행에 조언이란 걸 한다. 그 불행의 한 조각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뱉는 말 속엔 자신의 우월감에 만족하는 미묘한 미소가 들어있다. 어차피 그 시간이 끝나면 불행은 온전히 타인의 몫이 되므로.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 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p.142)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상실은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상실보다 크다. 나는 가능성이 충분한 인간인데, 그 가능성을 보일 기회가 없다는 것.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내가 될 수 있는 것을 결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될 수 있는 것보다 가질 수 있는 것에 더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남의 불행에 '나만 아니면....'이라 생각하며. 

고대 철학부터 지금까지 '공정'에 대해 한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결국 모두에게 '공정'한 세상을 바란다는 것이 주머니 없는 난장이들에겐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으로만 다가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이어져야 하고, 짧은 행복과 긴 불행을 반복하면서, 누군가에겐 되지 못했지만, 또 누군가에겐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오대표의 목소리를 듣자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학교에서 배운 서사 이론 하나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라는 법칙이었다."(p.43)


"평소에도 여러 번 들은,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내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p.86)


삶에서는 등가교환이 균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화가 나고, 가끔은 절망하고, 또 가끔은 믿지 못할 행운에 얼떨떨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건 아마도 이제 내가 받은 것들을 기꺼이 빼앗기겠다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아닐까?


책을 덮고, 내겐 킴 딜과 로버트 폴러드가 부른 '러브 허츠(Love Hurts)'보다 익숙한 나자레스의 노래를 듣는다. 영어 가사를 들리는 대로 한글로 옮겨 적던 오래전 그 시절, 'I'm young'을 '안녕'이라 들으며 친구들과 큭큭대던 시간이 소환되고, 웃을 일 없던 오늘, 한 줌의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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