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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무디 -상 신앙인물 시리즈
윌리엄 R. 무디 지음, 이상준 옮김 / 두란노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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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디의 설교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있다면, 그것은 동일한 설교인데도 최고 지식인들을 완전히 매료시키는 동시에 어린아이들까지도 넋을 잃고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가 무디가 무엇을 전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무디의 메시지는 어린아이에게도 명백했을 뿐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설득력을 발휘했다.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를 동시에 납득시킬 수 있는 기예를 통달한 설교가는 무디외에는 없었다. 무디가 쓰는 언어의 단순함을 놀라울 정도였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그의 강한 개성이 배어 나왔다. 무디의 강인하고 아름다운 성품이 그의 사역 가운데 빛을 발했다.' (본문 하권, 225-226쪽)

위의 글은 무디의 평생 동역자이자 찬양 사역자이였던 생키씨가 무디를 그리며 회고했던 글이다. 오늘날까지 당대 최고의 복음 전도자 중 하나로 우리는 주저없이 무디를 꼽는다. 그의 하나님 앞에서의 열정은 수 많은 일화들 속에서도 나타나는 바이며, 청년 시절 주일학교 사역으로부터 노년에 신학교 건립에 정열을 솟을 때까지 그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였다.

그의 설교를 인해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은 무려 1억여명.- 나는 과연 이 나이 이 때까지 몇에게나 진실한 복음을 전하였던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나의 열정이다.- 그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얼마나 많은 집회를 열었는지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이미 그의 열정앞에선 이런 통계 숫자따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쓸데없어 보인다. 그가 보여준 하나님앞에서의 열정과 순수성.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는 복음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당대 최고의 복음 전도자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17세의 나이로 삼촌의 가게인 구두수선점에서 일을 하게 된 무디는 구원의 확신도 없이 어릴 적부터 습관처럼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곤 하였다. 그러나, 요한복음서가 구약인지 신약인지 조차 모르는 무디에게 당시 청년 성경공부반 교사이였던 킴볼씨가 오랫동안의 기도로 무디를 회심시킬 기회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킴볼씨는 누구나 그렇지만 복음을 전할 때 무디가 비아냥거리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였다고 한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마침내 가게로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다. 당시에는 너무나 미숙한 표현으로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너를 사랑하시며 그분은 너의 사랑도 받기를 원한다는 아주 짧은 복음을 전하였다고 한다. 이 한마디에 당대 최고의 복음 전도자 무디가 회심한 것인다. 구두수선점 한 켠에서 전한 예수의 복음씨앗이 1억명에 달하는 사람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풍성한 열매가 되었다는 것은 진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무디의 행적을 아주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여 무디가 사역을 하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으며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그의 고난, 그의 시련, 그의 핍박의 무게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술집에서든 거리에서든 성지순례동안 이스라엘에서든 그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쉼이 없었다는 것은 가히 그의 핍박도 그가 이룬 사역의 결과만큼 엄청났을 것으로 짐작이 되어 진다.

나는 오늘도 핍박과 멸시가 두려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망설인다. 무디를 변화시키 전의 킴볼 선생처럼 내가 전하는 서투른 복음씨앗이 어떻게 받아질까 두려워 뿌리지 못할 때도 많이 있다. 그래서 기도한다. 나의 미약한 복음씨앗이 풍성한 열매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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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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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유태인이다. 어떤 작가는 그래서 그를 크리스챤이라는 무식한(?) 말도 한다. 크리스챤이라는 말은 예수를 믿고, 예수의 생애처럼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일켰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유태인이라고 해서 크리스챤은 아니고, 마르크스가 유태인이라고 해서 또한 하나님을 인식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지극히 신앙적이고, 또한 복음 주의가 충만하였던 프로이드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전혀 그것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그가 일생에 있어 가장 운이 좋았던 일은 죽을 때 까지 그를 밀어주고, 아낌없는 물질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 앵겔스를 만난 점이고,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그를 사랑했던 아내 애니를 만난 점이다. 마르크스가 대단한 것인지, 두 사람이 대단한 것인지 알 수가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위대한 공상가 마르크스가 꿈 꾸었던 현실은 일정한 일만 하면 생필품을 걱정하지도 않는 사회. (평생 마르크스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 여러 나라를 전전해야만 하였다)
주어진 시간에 노동을 하고, 나머지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회. (그는 언제나 낙천적이였고, 술을 입에다 달고 살았다)
신분의 차이와 직업의 차이가 없는 사회 (학문을 연구하는 일외에 그가 할 수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를 꿈꾸었던 것 같다.

평생 이런 꿈을 꾸었던 그는 그 유명한 사회주의 사상의 기초가 되는 이론을 탄생시켰다. 그는 위대한 공상가이였지만, 레닌과 스탈린을 걸치면서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사람들을 죽이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 허황된 꿈을 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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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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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구입할 때 맨 앞 페이지에 책을 구입한 날짜와 책을 읽기 시작한 날짜와 다 읽은 날짜를 꼭 기입한다. 이 책은 이틀만에 다 읽은 걸로 적혀있다. 물론, 완전한 정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만큼 관심을 가지고 푹 빠져서 읽었다는 증거이다. 자연과학에서 철학에 이르기 까지 다치바나 다카시의 놀라운 독서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지만, 진화론에 거의 모든 이론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아무리 종교서적을 읽어서도 영생에 대한 깨달음은 없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지식은 많되 결국 쓸모없는 지식으로 가득하다면 그 지식은 결국 소용이 없다. 우리 주위에는 영생으로 이끌어 갈 소중한 책들이 참으로 많다. 성경은 두 말할 것도 없지만, 이러한 책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여 어두운 서점의 창고에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있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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