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내남없이 그렇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쓸모를 세뇌당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쓸모의 척도는 물론 화폐다.
내 삶이 내 삶이 교환가치가 있는가. 잉여가치를 낳는가. 제도교육은남보다 교환가치가 있는 인간, 곧 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육 과정이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의 부품으로 맞춰지면서 본성은 찌그러지고 감각은 조야해진다. 이성복 시인의 시구대로 "모두가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는 상태로 일상이 굴러간다. 그런데 유용하지 않아서 억압하지도 않는 시. 이 시대에 쓸모없다고 취급받는시. 언어들의 낯선 조합으로 정신을 교란시키는 시. 가장 간소한 물성을 가진 시를 통과하며 학인들은 자신에게 가해진 억압을 자각한다.
- P95
. 글쓰기는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와 감정에 일종의 질서를 투여함으로써 ‘주제‘를 부각하는 행위다. 단계가 있다. 마음에 걸라는 것 일단 쓰기. 어지러운 생각들을 자유롭게 마구잡이로 풀어놓는다. 그리고 편집하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해서 덜어내고 보완한다. 행동 표정 대화를 떠올리고 그대로 묘사하여 글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런 식으로 차분히 앉아서 하나씩 써나가는 거다. 내가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이고 교훈적인 정의를 내리기. 가령 여자에게 커피 심부름 시키지 맙시다가 아니라 ‘나에게 그 화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나의 경험의 의미는 미리주어지지 않는다. 글쓰는 과정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 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