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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독서 - 바람구두 인생 서평
전성원 지음 / 뜨란 / 2018년 1월
평점 :
내가 계간지 ‘황해문화‘를 알게 된 것은 2015년 가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릴 때였다.
인천에서 발간되는 잡지라는 이유만으로 주문했다. 내 고향이 인천은 아니지만 어린시절의 많은 추억이 그곳에 남아있다.
‘황해문화‘는 좋은 생각과 글들에 목말라 있던 나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읽고 공감했던 많은 특집들은 지난 몇 년간 내 사고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길 위의 독서‘는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으로 있는 전성원 선생이 쓴 책인데 ‘황해문화‘에 대한 고마움과 의리에서 사보았다.
게다가 전성원 편집장이 관리하던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는 오래전에 내가 자주 들어가 보던 웹사이트이기도 했다.
목차에 나온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책은 무엇이었고 독서란 무엇이었는가 생각해봤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세계문학 전집류를 읽거나 친구들과 겨우 ‘사랑의 체험수기‘를 돌려보는게 고작이었다. 의식적으로 책을 사서 모으고 읽기 시작했던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였는데 중국고대문학, 중국근대문학, 중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회사에 들어가서 읽고 사모은 책들은 대부분 피터드러커나 무역, 경영학, 자기개발 분야의 책들이었고 그 외에 중국소설들과 미술관련 서적들이었다. 지난 십년간은 미술작가들의 전기와 미술이론, 미학에 대한 책들이 약간 있고 대부분 철학과 관련된 책들을 사고 읽고 모으고 있다. 각 십년 주기의 세 단계로 돌이켜보면 대학 때 중문대학원 진학의 소망이 좌절되어 직장에 들어가 일하며 회사를 잘 경영하는 사장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직장 때려치고 귀국해서 그림하겠다고 연고도 없는 경남으로 내려와 살다가 병이 나서 직장도 그만두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결국 철학에 흥미를 두게 된 격이다. 단지 흥미가 추동되어 읽고 공부하는 것이지만 아직도 사고에는 깊이가 없고 견디기 힘든 난해한 수면제 무더기 속에서 오리무중을 해메이고 있다.
개인의 서재가 주인의 특성을 말해주는 신뢰할 만한 증인이라한다면 내 책들은 내 욕망이 추구했던 것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나는 여전히 좋은 작가가 되고 싶고 매일 많은 시간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세상에 좋은 것을 남겨줄 수 있는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고 세상과 나와의 관계, 시대와 내 작품간의 관계를 연결시키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순수미를 추구한다는 이들의 자폐적이고 유아독존적인 아집과 세상의 고통에 대한 표독스러울 정도의 무지에 질려버린 나로서는 그 반대의 길을 탐색해봐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병에 시달리다 직장까지 그만두니 시간이 많이 남아서 미술의 시대적 역할이 뭘까 나는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할까 생각하다보니 철학이 나를 불렀고 나는 그런 책들을 읽고 사모으고 그렇게 3년을 지냈다. 생계를 등한시하게 된것은 패착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길 위의 독서‘는 저자가 책을 악보 삼아 ‘나‘란 존재를 울림통 삼아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담아낸, 자기 삶과 시대와의 연관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내용과 분량을 봐서는 하루이틀 정도면 완독할 수 있는 책이지만 두달에 걸쳐 매일 한편, 두편씩 음미하며 천천히 읽었다.
밑줄을 여러군데 많이 쳤는데 내가 공감하고 기억하고 싶었던 내용들이다. 책 내용과의 맥락에 구애받지 않고 적어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진짜 눈물‘이라는 아픔, 홀로 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중략) 삶의 막막함과 쓸쓸함을 견디지 않으면,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바로 서지 못한다면 우리 앞의 생은 결국 진짜가 될 수 없다. 눈물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는 법이다.(31page)
삶의 막막함과 쓸쓸함을 견뎌온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자부했지만 어른답게 행동하며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 왔다는 확신은 없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인연과 계기를 통해 주체적인 삶은 시간이 지나며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라 변화와 떠남과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된 사람도 없다는 사실도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마루야마 겐지의 글에서 강조하는 ‘자립한 젊음‘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고 홀로 서는 사람만이 자기를 긍정함으로써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통 없이 성장이 없다는 것은 관념의 말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그것을 실제로 겪어나가며 체험하고 성장하는 계기는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통과 변화를 견디는 내성이 약해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타인을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자아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여력이 없다. (중략)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이요, 사람을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고. 이를 알게 되기까지 나에겐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도 나는 희망도, 기대도 없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34~37page)
정말 공감하게된 구절이다. 타인을 사랑하려면 자아의 무게를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는 말. 사람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는 말.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면 희망도, 기대도 없이 사랑한 것일텐데 나는 그런 사랑을 해봤나. 그저 주는 것만으로 기쁘게 만족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해봤나 돌이켜보면 그렇지 못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시 내 마음을 내어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다시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싶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 (47page)
좋은 작품도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내게 있어 그 대상은 경험, 기억, 일상과 연관이 많은 것 같다.
‘거느릴 솔‘은 ‘경솔하다, 신중하지 못하다, 대강, 대체로, 보기좋다‘의 뜻도 지니고 있다. 솔직하다는 표현에서 어쩐지 다변의 인상을 받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솔직하다는 것은 누가 묻지 않았으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정직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요구받았을 때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속내를 드러내 말하는 것이다. 솔직하기는 쉬워도 정직하기란 어렵다. ‘왜‘라는 질문은 그래서 늘 정직함을 요구한다.(중략) ‘왜?‘라는 질문은 ‘어떻게?‘보다 어렵다. ‘왜‘라는 질문은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정직해야만 한다.(중략) 마지막 부분에 가서 나는 ˝글쓰기란 세상 모든 것에 절망하면서도 결국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정의하면서 글을 끝냈다.(중략)스스로에게 정직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글쓰기란 이처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구하는 행위이다. 자의식을 자의식으로 냉정하게 관찰하는 일이다.(중략) 글쟁이와 무대에 오르는 연극배우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모든 글쟁이는 글을 쓰는 동안의 자아와 글쓰기를 마친 뒤 그 글을 읽고 있는 자아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게 된다. (중략) 결국 글이란 하나의 무대이고, 그 무대 위에 나를 올려 보낸 사람은 무대 위의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글을 쓰는 행위는 남에게 내보이지 않고 혼자 보는 글조차도 이미 하나의 비평이자 성찰이 된다. 만약 글쓰기에 어떤 치유의 의미가 있다면 그와 같은 효능 덕분이다.(82~88page)
솔직은 감정의 거친 배설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정직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까지 혹은 홀로 있더라도 자기 자신을 절대 속이지 않는 것이다. 몇 년동안 아침에 일어나 노트 3~4페이지 정도의 글을 쓰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혼자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사실 99%이상의 글은 감정을 배설하는 화장실처럼 이용되고 있다. 사실 자의식을 관찰하며 스스로에게 ‘왜?‘를 묻고 그 답을 구하는 행위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런 글을 쓰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데도 기진맥진하게 된다. 자기 의식에 떠오르는 관념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심문하는 것처럼 힘들다. 글을 쓰는 동안의 자아와 글쓰기를 마친 뒤 그 글을 읽고 있는 자아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며 얼굴이 붉어지고 양심의 등짝을 때리며 이 글은 절대 세상에 나가선 안된다고 당황스러워 하는 자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자기 성찰을 위한 정직한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깊은 수렁에서 건져준다.
개인적으로 그림은 글보다 더 적나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남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큰 착각이다.
직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잠재의식의 기저를 건드리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반응도 즉시적인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데 자신이 없거나 경쟁과 비교를 견디기 힘든 사람들은 그림을 그려도 불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남이 속아줄 거라고 생각하거나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작품을 해서는 안된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가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이상을 품었을 때만 예술가일 수 있다. (97page)
예술가라는 허명은 필요없고 좋은 것(goodness)을 세상에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 세상을 변화시키는 매제가 되고 싶다는 마음, 이런 마음에 녹이 슬었을때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남과 자기를 비교하며 좌절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보편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패거리로 뭉쳐다니거나 비교와 드러나는 도둑질을 하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자기 개성과 독창성만을 믿고 스스로 고립하여 보편성을 포기한채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작가들을 모두 부러워 하지만 세속적으로 성공한 작가의 작품이 가치있고 훌륭한 것이 아님을 알게되면 ‘성공‘이라는 것에 대해 재정의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고 삶속에서 새로운 계기를 연결해내야 한다.
우리가 존재했던 세상과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은 채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면 인생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110page)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심지어 나 자신 마저도 항상 의심하며 산다. 선배들, 사장, 멘토, 스승이 시키는 대로만 살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맹종하기만 해서는 자기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가며 겪는 삶의 역동과 변화에 대한 적응에서 느끼는 자신의 생명력은 깨달을 수 없다. 자기의 일천한 경험을 개똥철학으로 버무려 인생의 좌우명처럼 삼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경험도 변화하는 상황에 적용가능할지 경우마다 회의하고 의심해야 한다.
책 속의 진리처럼 보여지는 명제들도 그 시대의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언제나 생각보다 행동이 번개처럼 빨랐는데 사실 그래야 무슨 성과라도 이룰줄 알아서 그랬던 거지만 그를 통해 빚은 낭비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험도 가급적이면 좋은 경험을 해야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의심없이 맹목적으로 복종하고 따랐던 지난 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생각을 하면서 행동해야겠다. 스스로 숙고하는데 드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자.
사회적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공범이 되는 길이다.(122page)
지난 십여년간 사회적 불의에 무관심했던 것은 모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결국 내 삶의 터전에까지 깊은 타격을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에 무관심 했었는데 지난 십년간의 삶속에서 모든 상황이 예전보다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의에 침묵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과는 관계를 정리할 수 밖에 없다.
나를 대신하여 싸우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불의에 짓밟히는 사람들을 연대하고 지원하며 함께 싸우는 수 많은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침묵하고 방관하는 공범자로 살지 않겠다.
불의한 권력이 오늘을 차지하면 그들은 과거마저 장악한다. 조작된 기억과 망각을 통해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고, 그 힘을 통해 내일도 독점한다. 정의 없는 권력, 사과 없는 용서, 기억이 아닌 망각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번복될 수 있다.(128page)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자들이 이 나라에 안겨준 불의의 씨앗이 참 많은데, 그러한 역사를 미화하고 조작하고 진실을 외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시민들의 기억속에서 불의한 역사를 망각시키는 방식으로 우리의 내일을 도둑질 하는 일을 국정원 같은 국가 기구와 조선일보 같은 언론들, 일베, 수구기독교, 전경련, 뉴라이트전국연합,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고엽제전우회, 박사모 등의 수많은 관변단체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어 해온 것이 지난 십년간의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좀비가 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그들은 죽지 않았다. 기회가 생기면 언제라도 다시 일어나 그 짓을 다시 할 것이다.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만나는 한국인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남성 노동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하층 노동을 담당하는 계층이기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중략)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있었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대한 것은 아닐까.(중략) 이런 경험과 사건들을 통해서 나는 한국사회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 시각에서 이제는 부디 벗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중략) 우리가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약자일 가능성이 높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 노동조건, 생활여건을 끌어올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과 복지의 최저점을 높이는 것과 서로 통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보편적이고 인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이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호할 때 우리들 자신의 생존권과 인권도 함께 보장될 수 있다. 결국 변해야 하는 것은 뒤늦게 한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에 먼저 와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인식과 시선이다.(148~150page)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는 시간이 갈수록 소멸되어 갈 것이다. 나는 20여년을 중국인, 한국인 여성들과 일해왔다. 그들과 일하면서 나는 남성과 여성의 사고능력이나 책임감과 업무수행 능력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급여차이가 엄청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조직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여성들에 대한 대우는 몹시 형편 없었다. 나는 함께 일하던 여성들의 유연한 사고와 공감능력, 정의감에 크게 놀라고 감동한 경험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고와 편견의 흔적은 이렇게 내가 좋아했고 공감했던 여성들에 대한 관점을 크게 흐리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살아 오면서 그녀들에게 실수도 많이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미안하고 부끄럽기 그지 없다. 2016년, 2017년, 2018년을 거쳐오면서 그동안 억눌려도 참고 지냈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맘을 가지고 있지만 삶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것은 또다른 고민이다. 성별에 차이없이 같은 사람으로 보고 대한다는 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저자의 관점에 완전히 동의한다. 어제도 조선족 동포의 호구부를 번역해 주면서 한국에서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절차들에서 너무나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 고충을 듣게 되었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들은 이미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이지만 그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관심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일로 여기게 되는게 현실이고 우리나라 사람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그들까지 챙겨야 하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인권과 노동조건, 생활여건을 끌어 올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인권과 복지에 직결되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마음과 말로만 관심을 표현하는 것 말고 삶속에서 어떤 구체적인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사회의 한쪽에선 한 해 평균1만여 명의 사람들이 해외로 원정 진료를 떠나 1조원 이상을 지출하고, 다른 한쪽에선 건강보험 지역가입 체납가구 수가 약170만 세대에 이른다. 한 세대의 구성원 수를 3~4인으로 보면, 무려 700만에 이르는 사람들(2005년8월11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층은 71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한다.) 이 기초 사회복지인 건강보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손가락 하나 정도가 아니라 몸통이 썩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와 지배계급, 아니 당신과 나는, ‘복지나 분배는 시장을 먼저 살려놓고 나서 그때 돌아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친밀한 적대 관계이다.(189page)
대한민국은 이미 공고한 신분계층으로 구조화 된 신분제 사회이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꽤나 절망적인 심정이고 우리 사회가 철저한 계급사회, 신분제 사회인데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서 도저히 상상력이 펼쳐지지 않는다.
시장 만능주의가 가져온 온갖 폐해를 겪어 보고도 사람들은 ‘기업이 잘 되어야 개인이 잘 되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개인이 잘 되면 기업도 따라 잘 되는 구조는 없는 걸까. 건물 한 채라도 가지고 있으면 온갖 갑질을 해대는 건물주들과 자기 아파트 값이 오르기만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큰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그게 인간의 본성인가 싶기도 하고 재산권이 어떻게 천부인권에 버금가는 수준의 권리로 여겨지는지 의문도 생긴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가 되려면 어디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상상력을 펼칠 수 있을까.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해 유지되어야만 하는 애도라는 ‘공통감각‘조차 사라진 사회, 애도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통합을 위한 상호 이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중략)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 앞에 선 우리의 원죄이다. 우리의 양심은 결코 성스럽지 않으며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른다. 누군가 착한 대표선수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세상의 타락과 불의에 대해 부단히 시비 걸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반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284page)
그래, 반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후에 얼마나 변했을까. 세월호 사건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때 나는 기존의 오브제에 흑백사진 300여장 잘라내어 콜라주해서 세월호와 한국현대사 간의 고리를 연결지으려 했다. 작품을 하면서 촛불집회 이후에 억지로 가라앉힌 분노와 슬픔이 되살아나서 속병까지 앓아가며 2017년의 여름을 보냈다. 관변단체와 언론을 동원하여 유가족들이 애도하지도 못하게 하며 격리시키고 방해했던 그 분했던 2014년을 떠올리며 수많은 담배를 태웠다. 하지만 결국 이런 못된 세상을 만든 것도 우리 자신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를 혐오하고 무관심했던 죄, 우선 나만 잘되면 된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갔던 죄,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방관한 죄,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 원칙과 양심에 눈 감은 죄, 싸워야 할 때 나가 싸우지 않은 죄, 폭압에 스러져 가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보내지 않은 죄, 조직의 불의에 눈 감은 죄,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을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랐던 죄, 나는 원죄를 안고 있다.
나는 먼저 한 인간이고 두 번째로 음악가 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동료 인류의 행복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신이 내게 주신 수단인 음악을 통해 이 의무에 봉사하려 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신성하다고 여기는 이념에 바칠 것입니다.-파블로 카잘스 (중략)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재능을 무엇에대 사용하는가 하는 용도에 관한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너희가 어쩌다가 재능을 가졌다고 해서 우쭐대지 말거라. 그것은 너희들의 공이 아니다. 너희가 해낸 일이 아니란 말이다. 중요한 건 그 재능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야. 그 재능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너희들이 부여받은 것을 허비하거나 쓸모없게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라. 꾸준히 노력해서 재능이 자라나도록 해라.˝ 물론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선물이란 삶 그 자체이겠지요. 우리가 하는 일은 곧 생명에 대한 경배여야 할 것입니다. (중략) 첼리스트로 성공한 이후 카잘스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청중 대부분이 여유 있고 잘사는 사람들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노동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했고, 첫 회에만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음악회장에 모였다. 또한 노동자음악협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자들도 클래식을 감상하고, 직접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도록 격려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부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재산을 향유하지 못하고 지내야 합니까?˝(중략) 파블로 카잘스는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라고 말했는데, 그는 정말 평생을 쉬지 않고 연습했다. 노동과 예술 그리고 교양은 결코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람들은 ‘교양‘이란 말을 쉽게 하지만, 교양은 자유로운 사람들의 몫일 뿐, 부모가 강제로 보낸 학원이나 돈으로 쌓은 경험, 남들 앞에서 약간의 지식을 들이대며 우쭐거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양이란 한 인간을 세상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진정한 소유는 이 세계 속에 나만의 고유한 자리를 갖는 것이요, 자신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소유하는 것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교양)을 바탕으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세상을 소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자들에게 정당한 대가와 그에 따른 시간적 여유가 허용된다면,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303~314page)
카잘스나 기돈크레머 같은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이 후배 예술가들에게 해주는 조언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분야가 달라도 모두 통하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의 미술과 음악은 과연 어떠한가. 전시와 공연이 우리들만의 잔치, 우리들만의 리그는 아닌가. 작가조차도 돈을 쏟아 부어야만 경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그렇다면 결국 예술은 특정 계급들만 배우고 창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예술을 후원하고 안목을 가지고 추동한 것은 부르주아 계급임에 확실하지만 예술가가 반드시 부르주아 계급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성공을 가볍고 쉽게 말하고 그것을 목표로 두게 하고 모두들 그 실현을 위해 달려들고 집착하는 제도권 안밖의 모습을 보면서 예술 본연의 정신은 저런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하고 의문을 가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욕망이 창조를 추동한다는 것은 이해하는 바이지만 거기에 개입하는 권력구조가 생각보다 후진적이어서 충격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람사는 사회는 다 똑같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그런 의문과 회의에 시달릴 때마다 거장들의 전기를 읽거나 그들이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들을 자세히 살피는데 거기엔 공통된 이야기가 꼭 들어가 있다.
예술가는 동료인 인류의 행복을 위한 막중한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예술가 개인의 작업과 정신수행을 위한 조언들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우리의 재능은 우리 개인의 것이 아니며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의 재능과 성과로 누린 것과 이룬 것을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빚을 갚듯이 반드시 공동체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이는 모든 예술의 장르를 막론하고 각 분야의 거장들이 후배 예술가들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고 그렇게 될 것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세상을 소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자들에게 정당한 대가와 그에 따른 시간적 여유가 허용된다면,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란 마지막 단락의 글을 읽고 주말 알바거리를 찾고 있는 내 모습과 회사에서 물품박스를 쌓다가 목과 허리를 다쳐 사직서를 낼 때의 기억, 이게 무슨 그림이냐고 황당해하던 직장 동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씁슬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 하는 노동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세상과 계속 소통할 것이다.
여러 좋은 책들을 읽고 그것을 지침삼아 세상과 공명하며 삶을 묵묵하게 지켜온 저자 전성원 편집장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