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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다 - F.스콧 피츠제럴드의 ㅣ 원문과 함께 읽는 고전 작품 해설 3
김욱동 지음 / 이숲에올빼미 / 2013년 5월
평점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책을 읽는 즐거움은 저자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을 찾게되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래서 난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것보다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읽다‘ 가 더 재미있었다.
그 때는 1920년,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소비붐이 늘고 공산품생산이 들어나 전기를 동력하는 가전제품이 등장하고 대중매체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로인해 도시인구와 농촌인구의 차이가 급격히 커졌으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골은 깊어졌다. 덕분에 갑자기 떼돈을 벌게된 개츠비와 같은 신흥부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피츠제럴드는 미국은 기회와 가난한 이도 부자가 될수있다는 꿈을 갖게 해준 평등한 나라라는 믿음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습부자들은 신흥부자의 부를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했고 그 시대에는 겉보기엔 전체적인 성장으로 보였으나 전쟁이 끝난 뒤 방황했던 상황으로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있었다. 즉 상당히 우아하고 고상해 보였지만 속은 탐욕과 이기심, 정신적인 공허함과 금주법과 같은 도덕적 불감증이 자리잡고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와 동시에 여성의 사고변화로 인해 참정권과 같은 여권이 약간 꿈틀거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성격의 여성은 조던베이커가 가장 가까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아 9년뒤에 대공황이 오면서 거품처럼 가라앉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츠비 이야기가 꽤나 아름다웠보였던 이유는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가위로 잘라 다른부분과 이어붙이듯 번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미 지나간 과거(시간적개념)를 읽어버린 물건(공간적개념)과 같이 바꾸어 생각하고 표현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에 로망이었고 이상으로만 느껴진다. 그 이상은 데이지 였다.
“과거를 반복할수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큰 소리로 말했다.(p69)
하지만 그러한 꿈들이 만들어낸 결말은 죽음이었다. 인간의 불행은 시간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반짝하고 아름다웠던 그때라서 더 슬프고 진실을 마주하기엔 세상이 너무나도 어두워 질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장에 별을 붙이며 그별이 아름답다고 믿는 개츠비가 위대해 보이는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