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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평점 :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은 것은...
한동안 서사보다는 묘사에 치중한 소설들을 주로 읽어왔는데 동아시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거대 서사를 다룬 소설을 읽다보니 디테일한 일상의 묘사와는 또다른 재미가 느껴졌다. 이 소설은 제 7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으로, 심사위원 만장 일치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사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선입견+편견+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서 읽기에 부담스러워 손이 선뜻 가지는 않았는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놀라운 흡인력에 빨려들었다.
패망 직전 만주를 배경으로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중국인 요리사 '첸', 조선인 여인 '길순'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장면이 그려진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편 개봉되었는데, 그 영화 속 장면들이 눈 앞에 보이는 듯 생생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개성있고 흥미로운데,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소설의 매력은 스토리를 끌고나가는 '힘'인 것 같다. 이런 글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글인 것 같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끄러우면서도 박력있는 글솜씨. 기성작가에게 '글솜씨'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 독자로서 느끼는 순수한 감상이다.
소설 속에서 '칼과 혀'라는 제목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굳이 소설 속으로 국한하지 않더라도 칼의 쓰임과 혀의 쓰임을 생각해보자면...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이 두가지와 함께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한중일 삼국의 대립과 갈등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한국의 혼을 일깨우는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며 제정한 '혼불 문학상'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수상작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