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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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라는 작가의 전작을 읽으면서 나는 왜인지 작가가 남성일거라 생각했다.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왠지 남성 작가가 쓴 글 같았다. 어쩌면 이름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추측은 나만의 추측이었는지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에 놀란 것은 나뿐인 듯 하다. ^^;
나도 (이왕이면)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기에 손원평 작가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있었고, 아동/청소년 문학에 속했던 전작 '아몬드'를 읽은지 한참이 지난 후 나온 이 책을 기대했다. 이 책은 '1988년생'이라는 제목으로 '제 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서른의 반격'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어쩌면 82년생 김지영 씨 때문에?)

이 책은 투명하다. 구체적이고 깨끗하고 명료하다.
내가 읽었던 작가의 전작이 아동/청소년 도서여서일까? 이 책도 그렇게 분류되어도 될 법하다. 서른이라는 것이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너무 먼 얘기이려나? 하지만 나는 초등 고학년인 딸아이에게 이 책을 읽히고싶고, 아마도 몇몇 부분에 멈칫할지언정 메시지를 이해하는데에 무리가 없을것 같다.

이 책의 주요 인물은 김지혜(어쩐지 김지영 씨를 다시 연상케되는 이름인데, 이 소설을 읽으며 80년대 생의 정서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을만큼 김지영 씨와 김지혜 씨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많은 것 같다), 무인, 규옥 등이다. 사회에서 그들의 포지션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큰 범주에서 보자면 '서민'이고, 각자의 차이는 더 억울하냐/덜 억울하냐의 정도인 것 같다. 쓰면서도 씁쓸하지만(이 정도 씁쓸함은 달콤한 수준아닌가) 사실 이 소설에 극단적인 사건이나 갈등이나 감정은 거의 없다. 등장인물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않은 일상을 살고있고, 지극히 평범한 비애 속에서 숨쉬고있다. 당장 내 하루를, 이틀을 기록해도 이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씁쓸함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감정인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당한 수준의 정의감과 의협심, 그리고 마땅한 욕망을 갖고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이 사회의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그러하지않을까? 경쟁과 욕망에 들끓는만큼 연대와 공감에 이끌리고, 그렇기에 혼돈을 겪고 갈등을 한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타협'이나 '체념'을 선택하면서 씁쓸함이라는 감정을 스쳐간다. 씁쓸함은 지나가는 감정이다. 내가 덜 괴롭기 위해서는 흑과 백 중에 하나를 택하는 편이 낫다. 흑에도 백에도 동의하지않더라도 회색지대에 계속 머무는 일은 피곤하니까. 어떤식으로든 선택해버리면 그 실체는 순응하는 자아일지언정 주체적 자아라는 착각 속에서 덜 피로하게 살 수 있다. 그렇기에 선택을 해야하는데 어느 쪽의 선택이든 용기가 필요하긴 마찬가지이다. 나는 욕망에 무릎꿇기를 선택하는데에도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가치에 대한 관점을 욕망에 두겠다고 선언하는 일에는 수치가 동반되기 때문에, 정확히 그 반대를 선택할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용기(그것이 사피엔스 종에 바람직한 용기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옆길로 빠진 것 같아 다시 소설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소설 속에서 지혜는 타협 속에 사는 평범한 성인이다. 내면의 갈등이 행동으로 옮겨지는데에는 감히 '가치의 전복'을 논하는 규옥의 등장이 결정적일 것이다. 규옥은 누구나 가진 내면의 정의감에 불을 붙이는 발화점이자 연대를 시작하게하는 인물이다. 그로인해 밀알같은 작은 존재들이 모여 꿈틀거리게되는데, 그 과정이 전혀 극적이거나 비장하지않다. 그들이 모여서 하는 행동, 가치의 전복을 위해 기껏해서 낸 용기로 하는 일들은 그야말로 지렁이의 꿈틀거리는 움직임 - 꿈틀거리는데에 소리가 나는지 의문이지만 난다면 그들의 외침은 고작 그 정도의 소란일 것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작은 짱돌이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가 된 것이 아니라 '유명세는 사십 시간 정도 지속됐다. 곧 다른 커다란 뉴스가 터졌기때문에 이틀이 채 지나지않아, 우리는 이미 한물간 반짝 스타처렁 메인에서 비껴나있었다.(p208)' 뻔하게 별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이기에.

이 소설을 살아낸 등장인물들의 삶이 대단히 변화되었냐하면 그런 것은 없다. 세상에 통쾌한 반격을 했냐면 그렇지도 못하다. 등장인물들이 소설을 관통해 살아낸 후에도 세상은 똑같다. 변한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독자들로하여금 '그러므로 무기력해지게' 만들지않는다. 어찌보면 '~ 소동'이라는 제목의 동화같은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의 매력은 내가 가상하게 낸 용기를 폄하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짱돌은 짱돌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그것은 절대 무의미일 수 없으며 또한 그 자체가 거대한 의미일 수도 없다  -라는 현실의 지점을 있는그대로 보여주는데, 새삼스러울 것이 있는가? 없다.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베테랑의 서도철만큼의 정의감은 없고, 아트박스 사장만큼의 용기는 가지지 못했지만 '이건 잘못된 일'이라 판단해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해 증거를 남길만큼의 양심과 관심과 분노를 가진 평범한 서민들.

소설을 읽으면서 단순함과 유쾌함에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서른'이라는 나이의 무게감과 요즘 청년들의 현실이 이 소설의 톤과 어쩐지 어울리지않는 것 같아서이다. 나는 서른을 (매우 다행스럽고 운이 좋게도) 무사히 지나온 한 사람으로서 요즘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 부채감을 갖고있다. 그래봐야 이 소설의 여러 인물들처럼 타협하는 성인으로서의, 고작 그 정도의 부채감일테지만.
먹고살기 힘든 현실을 사는 누구에게도 '저항하는 패기'를 기대하거나 요구할 수 없기에, 결국 세상은 바뀌지않으리라는 서글픈 예측을 하게되는 오늘... 이 책은 가볍고 경쾌한 방식으로의 '가치의 전복'을 꿈꾸게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수준의 대단한 결단, 솟구치는 분노와 패기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할 수 있는 저항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큼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쉽게 읽히는 문장, 암울한 현실임에도 침잠하지 않게하는 장조의 스토리(그저 내 느낌이다)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와 극단으로 몰고가는 갈등, 새로운 감정의 발견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바로 그런 소설이기에 이 책이 여러 세대에게 부담없이 쉽게 읽혀 더 많은 서른들이 가볍고 유쾌하게 할 수 있는 저항을 하며 세상을 바꿔나가기를 기대해봄직한, 그런 희망을 갖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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