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주한책 서평단 오디오클립 로사입니다.>

벌써 일주일 이상 붙들고있는 책이다.
제목이 심플하기에 부제가 '물리학 여행'일지라도 아주 심플하게 설명, 요약된 대중서일거라 짐작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연구자로서 대중서인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기까지의 과정을 다정하게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말'을 읽다보면, 조금의 뭉클함을 느끼게 될 정도로 이 책의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이 책을 '인류가 해온 가장 눈부신 여행 가운데 하나를 기록한 여행기'라고 표현한다.
물리, 화학을 아주 좋아했고 이공계 전공에 여전히 관련 분야의 공부를 어느정도는 하고있기에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게되었다. 사실, 어렵거나 지루할거라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대중서'라는 표현때문에 겉핥기 식으로 가볍게 다루지않을까 싶은(그래서 시시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관련 주제와 이론들을 쉽게 설명하면서도 굉장히 심도깊게 다루고 있었다.

너무나도 매혹적인 '들어가는 말'에 이어 '기원을 찾아서'라는 본문이 시작되면서 시간은 기원전 450년을 향한다. 아이디어의 뿌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고대의 과학자에서 아인슈타인에 닿기까지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있는데 아주 흥미진진하다.

하나의 광대한 시각이 모습을 갖춥니다. 천 년이 지난 뒤 하늘과 지구 사이에 있던 구분이 갑자기 살아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했던 사물의 '본성적 자리'는 없습니다. 세계의 중심도 없습니다. 자유롭게 놓인 사물들은 본성적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직선으로 움직입니다.
뉴턴은 작은 달의 간단한 계산에서 중력의 힘이 거리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추론해내고, 그 힘의 크기를 구합니다. 여기서 '중력'을 뜻하는 문자 'G'는 오늘날 우리가 '뉴턴 상수'라 부릅니다. 이 힘은 지구상에서는 물체들을 낙하하게 만듭니닺 하늘에서는 행성과 위성들을 제 궤도에 붙들어놓습니다. 둘 다 똑같은 힘이죠. - p53
갈릴레오의 낙하 실험이 뉴턴 상수의 발견으로 이어지며 중세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순간! 뉴턴의 막대한 유산은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자기력으로 이어진다. (우와~~!)
교과서에 등장하던 이론들이 묘하게 교차되며 감탄을 자아낸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과학의 세계! 읽다가 몇번쯤은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뉴턴은 자신의 발견의 한계를 알았고, 뉴턴이 남긴 문제를 푼 독자는 패러데이였으며 이후 아인슈타인은 패러데이의 해결책을 뉴턴의 중력이론에 적용하게된다.
페러데이의 아이디어에서 맥스월, 하인리히 헤르츠, 굴리엘모 마르코니...
공간 속의 입자들과 장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발견하는 물리학의 매력에 홀려 따라가다보면 마치 거대 서사의 한가운데를 걷고있는 기분마저 든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1장에 불과하고 2장 '혁명의 시작'에 이르러 아인슈타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익히 알 정도로 수많은 분야로 확장되어 인용되고있는 이론이다. EBS 다큐멘터리 '빛과 물리학' 시리즈에서 이 이론에 대해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으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초등 고학년도 이해할 수준의 교육용 자료이다.)
이 이론에 대해 대강의 이해를 하고있지만, 이를 뉴턴과 맥스웰과 이어 설명하고 있는 책 속 내용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맥스웰 방정식과 뉴턴 물리학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아인슈타인의 기발하면서도 극도로 우아한 해법과 이후 이어지는 '물리학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이론이자 양자중력의 첫째 기둥'인 일반 상대성 이론... 저자가 20세기 물리학의 진짜 마법이 시작된다고 표현한 이 지점에 이르면 기대와 설레임에 심장이 두근댄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진짜 이야기.
아직 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앞서 일주일도 넘게 이 책을 붙들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너무 어렵거나 지루해서 몇장도 채 읽지못하고 덮게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이어서 읽다보면 엄청 몰입하게 된다.(왠만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몰입해서 보게 된다.) 시공간을 떠나 완전히 다른 세계로 빠져들면서 현실을 잠시 잊게되는데 그 느낌은 마치 공부를 한참 열심히 하던 시절, 플로우의 경지와 유사하다. 나이 들면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세상만사에 시들해져 가고있었는데, 너무나 짜릿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책을 만난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내 일상에 이 기분을 누릴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않기에, 자꾸 흐름이 끊겨 진도가 더디다는 것이다. 요근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숙면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기 위해 다시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아주 오랜만에 숙면을 포기하고 새벽에 눈을 뜰 만큼, 유혹적인 모험을 선사하는 정말 멋진 책이다.

(중간중간 남발한 느낌표를 찾아 지우고 올린다.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추천사의 표현을 빌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적 흥분' 그 자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