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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평점 :
<한주한책 서평단 오디오클립 로사입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금이라도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고싶어 여러가지 연습을 하고있는 나에게 참 단비와 같은(뻔한 표현이지만 진짜 딱 그 느낌이다) 책이 나왔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고, 내 머릿속에는 직간접으로 접한 책들을 범주화시켜 꽂아놓는 각종 편견으로 둘러싸인 가상의 책장이 있는데... 이 책이 속한 카테고리는 사실 내게 심드렁한 느낌을 주기에 저만치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이런 류의 책에는 그다지 기대감이 없다. 글쓰기 책에 흥미가 없다는건 아니다. 글쓰기 책은 열심히 찾아 읽는다. 다만 일본 문학을 좋아함에도 '일본인이 어떤 주제에 대해 챕터를 나눠 설명한 에세이'만은 싫어하고, 구어체 글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이기에... (이 책은 내게 그런 카테고리에 속한다.^^;) 이 책에 썩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글에 대한 책이어서 읽으려했을 뿐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정말 너무나 애정하는 책이 되었다.
이렇게 심도깊게 '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의 한달간 읽고 또 읽으며 수없이 반복해 펼쳤던 것 같다.
이 책은 저자 우치다 다쓰루의 퇴임 전 마지막 강의를 엮은 것이다. 저자는 그 수업을 '그때까지 언어와 문학에 대해 사유해온 것을 모조리 쏟아부은 야심찬 수업'이라고 표현하니, 이 책은 언어와 문학에 대한 우치다 다쓰루 사유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강을 읽었는데도 흥미가 당기지않는다면 다시 책꽂이에 꽂아도 좋다는 서문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듯, 1강을 읽으면 2강을 안읽을 수 없다. 3강, 4강... 마찬가지이다. 점점 심도깊어지는 강의에 홀리듯 빠져들게 되고 정말 많은 방향으로 생각이 확장된다.
오늘날의 일본을 바라보면 '타인과 다르지 않도록 표준적으로 행동하면 안전하다'는 생존 전략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귀속집단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 반드시 그 집단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일본처럼 지각 변동 같은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는 도리어 최대 규모의 집단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토록 심각한 사회 변동이 일어날 리 없으니까요. '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다수가 일탈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가 삐걱거리고 시스템 이곳저곳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수가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감에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무쪼록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를 몸에 꼭 부착하기 바랍니다.
그런 센서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극히 중요한 훈련이 '글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3
사실 1장에서 '내가 이제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덜렁거리는 사람'이라는 숙제를 따라해볼 때만 해도 이 책을 읽으며 에크리튀르, 아비투스, 문화자본과 살아남기 위한 리터러시....에 대해 숙고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매 챕터, 한 장 한 장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지고... 짜릿하다. 책을 읽으며 짜릿한 환희를 느낀 것이 얼마만인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자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몇 번쯤은 물음표가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런 의아함은 일부였고,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내게 영감이 되어주었고 '살아남는 글'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고 치열하게 사유하게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두고두고 읽고싶은 책이고, 책을 덮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고싶을만큼 행복한 사유의 시간을 선물해준 책이다.
실은 독서는
'지금 읽고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작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