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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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책의 초반 부분을 읽을 땐 시간과 공간,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얽히고설키고, 마치 주인공과 그의 친구를 보는 것만 같은 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의 이야기가 액자 구조처럼 전개되고, 이야기는 예상치 못 한 곳으로 흘러간다.




주인공 '준'은 아홉살 때 교통사고로 온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 후유증으로 현재 불안장애를 가지고 살고 있다. (라고 정확하게 책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당사자로서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익숙지 않은 소리가 나면 본인이 어떤 사건, 사고의 목격자가 되어 증언을 할지 모르니 항상 시간부터 확인한다.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 소유하는 것도 싫은 그에게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있을 수밖에 없는 '친구'라는 존재는 오로지 '진' 뿐이고, 그의 소유물 중 중요한 것이라곤 프란츠 카프카의 <성>과, 실레의 화집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진이 선물한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어쩌면 진인지도 모른다.




의대생인 진과 준은 우연히 한 여인과 만나게 된다. 사고로 가족과 남자친구를 잃었다는 이 여인은,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가엾게도 일생 단 한 사람밖에 마음에 두지 못하는" 사람이다. 온 가족이 당한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상처에 시달리는 준은 자취를 감춘 그녀를 수소문하고 다닐 만큼 끌리지만, 끝에는 늘 그냥 도망쳐 버린다. 가족과 갑자기 이별한 상처가 깊어서 인가 싶기도 하고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인가 싶기도 하고. 




여자를 만나며 그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피곤하게 하는 것은 있었어도 아프게 하는 것은 별로 없었던", 딱히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마음을 주지 않던 그는 어느 순간 환자를 '환부'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한다.





130쪽

지금까지 나는 단지 환부를 상대했다. 그런데 점점 그것만이 아니게 되었다. 환부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보았고 그에 따라 감정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쉽게 지쳤다.





"언제나 혼자였고 조용했던" 그는, 별 이유도 없이 현관에 도어락도 달고 집에 햄스터를 들이고 시디플레이어를 사들인다. 그러나 본인의 이런 모습이 낯설다. 결국 햄스터는 죽고, 시디플레이어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배달이 지연된다.

돌연 일을 그만두고 프라하로 가기로 한다. 떠나기 전 진과 만나 '우리가 왜 친하게 지냈을까?' 생각하며 어색한 농담을 하다 헤어진다.



막상 떠난 여행에서 그는 딱히 할 일을 찾아내지 못하고 기껏 날아간 프라하의 호텔에서 꽃 냄새가 나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누워만 있다. 그리고 비행기에서부터 만난 한국 여자들 '미아'와 '미나'를 만나며 이야기는 또 다른 모퉁이를 돈다. 이 둘은 진이 만난 또 다른 '진과 준' 이었을까.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모르게 흘러간다.

여행에서 돌아온 준은 진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이성에게 마음을 주고 본인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그는 치유를 멈추고 이번에는 진의 인생을 살기로 작정한 듯하다. 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진의 약혼녀와 결혼한다. 아들도 하나 낳고 신도시에 집을 짓고 젊은 부부의 표상인 듯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준은 그런 사람이니까.





128쪽

제한된 삶 속에서 인간이란 죽을 때까지 전체를 다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텐데, 하나를 전체로 알고 사는 편이 여러 개를 알고난 뒤 나머지에 대한 갈급 때문에 조급해하며 살아가는 쪽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185쪽

그런데 죽은 다음에도 나는 계속 나야......끝나지 않는다는 거야......너무 지겨운 일 아니냐구.




예전에 <새의 선물>을 볼 때는 추천자들의 극찬에 비해 사실 별로 와 닿는 게 없었는데 이 작품을 읽다 보니 작가님 필력이 장난 없다. 곱씹어 볼 대목도 많고. 그런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너무 모호해서 뭐가 진짜이고 뭐가 환상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게 작가님이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책 제목처럼 "꿈이었을까" 싶은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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