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12쪽에 있는 내용이다. 물질이 역사의 흐름을 이끌기도 한다며 철의 공로를 이야기한다.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 철이 공헌을 했다. 기원전 6C에 예루살렘의 파괴되고 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됐다.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가 바빌론을 포위하게 되자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사건은 가마의 온도를 더 높이는 기술 개발의 촉매가 되었다”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랑 가마의 온도를 높이는 기술이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아무튼 높아진 가마의 온도 덕분에 유리 불기 기술이 등장해 유리병이 일상용품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곧이어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창문이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물질과 관련해서는 “항상 각 물질의 특성에서 시작해 다시 그 주제로 되돌아온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딱딱했나 보다. 물론 중간중간 재미난 얘기가 없는 건 아니다. 라부아지에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아주 흥미로웠다.
라부아지에에게 호기심을 지핀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 겸 성직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이다. 그는 산소를 처음으로 분리해 낸 사람이다. 프리스틀리의 실험 소식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바다 건너 프랑스에 있는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부아지에, 그는 샐리던트였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평일에는 왕실 세무사로 일했던 라부아지에의 삶은 저녁과 주말에 불타올랐다. 개인 연구실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했다. 라부아지에의 실험은 아주 의미가 있었다. 재료에 플로지톤이라는 가연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그동안의 연소 이론을 잠재웠다. 화학을 새로운 과학 분야의 토대가 되도록 한 입지전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밤이 늦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실험을 했을 라부아지에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굴곡진 삶이 따라오게 마련이었다. 개인적인 명성은 쌓았지만 왕실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참수되는 비운을 겪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프랑스 공포정치는 그가 죽은 지 불과 몇 달 지나 끝이 나고 말았다. 오죽하면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프랑스 수학자인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과학자였다고 평했을까.
맺음말의 말미에 있는 글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