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중퇴전문 >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네 멋대로 써라 - 글쓰기.읽기.혁명
데릭 젠슨 지음,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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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쓴 리뷰에 글이 어렵다는 리플이 달렸다.  아차 싶었다.  리뷰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난무하는 한자어들.  죽죽 늘어지는 만연체.  글은 의사 전달을 위한 것이지만, 모든 이들에게 다 이해가 될 순 없다.  그러나 좀 더 쉽고 간명하게 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 또한 없다.  오히려 늘 고민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순히 글의 외양만이 아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쉽고도 분명하게 쓸 수 있다.     

리뷰를 개인사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책이 다루고 있는 글의 중요한 본질과 관련해서이다.  교육이 계급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고, 읽기와 쓰기가 입시를 위하여 강조되는 시대다.  그러나 모든 지식이 결국엔 인간과 세계를 다루고 있고, 모든 글 역시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면!  입시 도구 같은 것이 될지언정, 인간의 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하여 더욱 확장된다.  인간으로서의 삶에도 타인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물론 활자 외에도 음악과 그림과 음주가무와 고스톱과 기타 많은 수단들이 있지만, 보편적인 것은 역시 글이다. 

결국 글은 인간의 것이고, 인간을 위한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인간의 것이고, 살아있는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다.  죽은 자의 글이 산 자에게 읽히고, 산 자의 글이 다른 산 자에게 읽혀져도, 죽은 자의 글이 죽은 자에게 읽혀지진 않는다.  인류가 지상에 존재하는 그 순간까지, 인간의 언어 역시 시퍼렇게 살아있을 것이다.

젠슨의 책엔 '산 자를 죽은 자처럼 취급하는 죽은 언어' 에 대한 분노와 야유가 곳곳에 서려 있다.  근대-교육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충분히 공감되는 메시지.  '글쓰기' 는 원래 주인인 '살아있는 모든 인간' 에게 돌아가야 한다.  글이 가졌던 치유와 반성과 소통과 이해라는 본래의 기능과 목적 역시 회복되어야 한다.  글은 결코 인간을 억압하는 수단이 아니다.  본디 주인인 인간에게 오히려 외면당하고 오해를 사는 대상일 수도 없고, 그 내용과 형식을 통제하는 권위 또한 있을 수 없다.  살아있다면 오직 쓰고 읽고 말하고 들으라.  그 모든 표현과 소통을 통하여 더욱 '자기 자신' 이 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더욱 넓은 세계를 경험하라.  책이 던지고 있는 함의는 단순한 글쓰기의 차원을 넘어서지만,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온전한 쓰기와 읽기를 회복하는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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