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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쓰는 마음 - 어떤 우울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이윤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나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불안증 속에서 살았다. 삶 전반이 안개로 자욱했다. 안개는 때때로 물러갔고 때때로 더 짙은 안개가 되어 돌아왔다. 그럴 때면 어디가 출구인지 (그야말로 삶으로 향하는 출구) 알 수 없어 괴로웠다.
《고쳐 쓰는 마음》의 저자 이윤주 씨는 이 책에서 자신의 우울증을 검은 개라고 부른다. 이는 처칠이 자신의 우울증을 블랙 독이라고 부른 것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내가 부르는 삶의 안개와 검은 개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안다. 우울증은 삶을 지독하게 뒤덮고, 우리를 뒤흔들고, 종종 멈춰 서게 하지만 그것이 삶 자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 이윤주 씨는 우울증을 삶과 떼어내 따로 명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삶은 추상적이거나 원대한 어떤 관념이 아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자꾸 찢어지던 마음을 그만큼 또 기워 낸 과정이다. 이 책은 그렇게 갈무리한 마음이 어떻게 일상에서 작동하는지 기록한 것이다. 우울이 삶을 뒤덮고, 영영 딛고 일어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을 겪어본 이윤주 씨는 우울만이 우리 삶인 것은 아니라고 이 책을 통해 말한다.
나는 이 책을 따라 읽으면서 자주 멈췄다. 적확한 문장으로 맺힌 그의 목소리가 내가 겪었던 삶의 어느 장면을 정확하게 겨냥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랬고, 그가 인용한 작품들이 흥미로울 때마다 그랬다. 두 가지 모두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책의 매력이었다. 같은 기질의 친구와 경험담을 나눌 때의 편안함, 즐거움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는데.” “그때 이 작품이 생각났는데 말이야…….”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주 끄덕이며 책을 읽었다.
책등에 삽입된 문장이 있다. “어떤 우울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이 그 문장이다. 보들레르는 현대성과 현대적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회복기의 환자”를 이야기했다. 보들레르는 병을 겪고 삶으로 돌아왔을 때 더욱 예민한 감각으로, 마치 “어린 시절로의 회귀”처럼 사소한 것에도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육체적인 병과 회복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나는 그것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름을 몰라야 사탕인 경우〉에서 아이가 아직 기호의 세계에 기입되지 않아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이야기가 호출된 이유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가 깜박 생을 잊는 동안〉. 생을 잊고 삶에서 잠시 이탈한, 잠든 남편을 바라보는 이윤주 씨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산문을 나는 흥미롭게 읽었다.
나는 두 편의 산문을 우울증으로 인해 세계에서 밀려난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세계에 아직 기입되지 않은 존재를 비추고, 세계에서 잠시 이탈한 존재를 애틋하게 여기는 산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계에서 밀려난 것처럼 느끼는 사람은 이 두 존재와 포개지는 면이 있다.
내가 경험한 우울증은, 특히 중증 우울증은 일상, 혹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삶에서 사람을 이탈하게 만든다. 그 시기 나는 허공에 떠서 길가의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누군가 놓쳐버린 풍선이 된 듯한 기분을 강하게 느끼곤 했다. 그런 시기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 책의 산문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산문처럼 보여도) 우울증이 남긴 어떤 깨달음이 산재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탈에서 돌아온 사람의 시선은 본인이 느끼든 느끼지 않든 그것이 좋은 것이든 설사 좋지 않은 것이든 일상에서 일상 이상의 것을 짚어내기 마련이다.
이윤주 씨는 그러한 지점을 “어떤 우울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로 대한다. 우울이 가르쳐 주었으니 그것을 다시 나누고 싶다는 선한 마음으로 이 책은 빚어졌다. 마음을 깁는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마음일까? 아무런 변화도 희망도 없을 거라는 절망 속을 헤쳐나와서 그 경험 덕에 얻어진 (기어코 얻어낸) 것들을 책으로 꾸려 같이 나누는 것은, 우울증이 심했을 때, 과거를 회의로 빠뜨리는 우울증의 속성으로 인해 이전에 썼던 책 두 권을 미워했음에도 다시 책을 펴내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일종의 집념을, 집념이라기에는 괴팍한 데가 없고 아름다운 그 마음을, 마음을 깁는 사람의 마음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