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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히구치 유코 지음, 김숙 옮김 / 퍼머넌트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서평단으로 선발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해 다루고 있다. 사랑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잘 담아냈지만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거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이미 익숙한 사랑 이야기를 아름다운 히구치 유코의 그림으로 한 번 더 읽어본다고 설명하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그림책은 텍스트보다 그림으로 말하는 게 더 큰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텍스트의 힘이 그림의 힘 못지않게 센 것 같다. 텍스트로 확정적으로 전부 다 말해 텍스트에 더 시선이 간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그림에서 읽어낼 수 있는 디테일이 발견된다.
책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악어와 소녀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소녀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악어를 사랑하는 소녀가 악어를 궁금해하고 악어도 나를 궁금해하기를 기대하며 서로의 사랑이 진행되는 그러한 이야기다. 소녀의 상징은 바이올린과 꽃이고, 악어의 상징은 꼬리와 모자이다. 그 상징들이 서로에게 옮겨가는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출판사에 서평에서 미리 확인해 볼 수 있듯이 진회색의 배경이 일순간 밝아진다. 소녀와 악어가 닿는 순간이다. 소녀의 바이올린 연주가 풀과 꽃이 가득한 풍경을 불러오고 배경을 환하게 만든다.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장면에서 “떨어져 있어도 네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며 소녀는 진녹색 커튼이 둘러싸인 곳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그러자 새가 소녀의 상징인 꽃을 휘날리며 한편의 창으로 날아간다. 다음 장에서, 새의 동선은 꽃으로 표현되고 새가 착지한 곳은 악어의 주둥이 위다. 악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소녀의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새가 닿은 주둥이가 소녀가 있던 곳의 커튼처럼 진녹색으로 변한다. 그 다음 장에서 소녀는 악어의 주둥이를 끌어안고 있고 악어는 살며시 눈 뜨고 있다. 진녹색은 소녀가 닿은 면적만큼 넓어진다. 이러한 디테일이 책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히구치 유코 특유의 화풍과 아름다운 그림을 소장해 계속 들여다볼 수 있고, 그 안에 있는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그림책의 매력이자 강점이다.
이 책의 표지는 검은색 배경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다. 책을 펼치면 볼 수 있는 면지는 진녹색이다. 검은색과 빨간색, 녹색의 조합이 차분하게 어울리면서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도 하고,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도 전에 이 책의 미감을 먼저 느낄 수 있게 했다.
책을 활짝 펼쳐 앞표지와 뒤표지를 이어지게 하고 보면 악어와 소녀가 한 풍경에 있는 것으로 그림을 이해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뚜렷한 서사가 있는 책이라기보다 목소리가 있는 책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에 좋은 책이다. 빨간색과 초록색의 조합, 예쁜 그림 스타일, 표지 전면의 검은색의 묵직함과 차분함, 재료의 질감과 펜의 결이 하나하나 느껴지는 장면들, 사랑을 이야기하는 내용까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