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련함’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여행자들의 기념 촬영 배경이 되어, 그들과 함께 그들의 고향으로 날아가겠지.
지난 3년의 시간을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에 집중하여 ‘성공적인 방역‘이라고만 기억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러한 방식의기억은 지난 3년 동안 각자의 사회적 자리에서 팬데믹을 차별적으로 경험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고,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위험을가장 먼저 자신의 몸으로 감당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드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이주민들에게 K-방역이란 정보에서 소외되었다는 측면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고, 방역물품과 재난지원에서 배제됐다는 측면에서 차별이었으며, 전수검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인권침해였을 뿐이었다. 이주민들이 기대야 했던 것은 K-방역이 아니라 체류할 수는 있지만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던 나홀로 방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