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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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리뷰글을 쓰고 싶어 읽는 내내 근질거리고 설렜던,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 여덟 작을 모은 소설집.

(항상 그렇듯, 책을 만난 계기와 개인적인 감상 위주의 리뷰글입니다)

 

 

재수, 삼수를 했던 친구가 나는 이 책이 정말 좋았다며,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작품을 꼽아 자기의 한때와 너무 닮았다며,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하고 추천을 했었다. 그 친구가 이제는 아마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일테니, 그 추천에 힘입었다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 싶다. 그래도 그때의 추천을 잊은 것은 아니기에, 책을 손에 든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말할 수 있지.

 

 

그렇다고 해도 사실, 내가 김애란 작가를 처음 만났던 건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서였다. (앗!)

항상 『침이 고인다』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면서 왜 『두근두근 내 인생』이 먼저였니 묻는다면 딱히 기억나는 것도, 그래서 이렇다 할 것도 없지만, 그랬다. 아마 책에서 발췌되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떤 글의 조각에 반했었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두근두근 내 인생, 하면 아직도 아, 하게 되는 뭔가가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고, 트위터에 썼었는데. 지하철에서 책을 참 조심스레, 한 장 한 장 넘기던 생각이 나네.

 

 

딱 이만큼의 온도. 3월에 썼던 그 표현이 지금도 딱 적당하다.

딱 이만큼, '쓰고 싶은' 글을 이번 소설집에서도 만났다. 순서상 세 번째 작품으로 수록된, 「성탄특선」이 그것.

왜, 라고 묻는다면 나는 또 두루뭉술한 나의 감상만을 풀어 놓으며, 혹은 제대로 풀지도 못하며 답답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냥, 뭐랄까. 참으로 무력한 듯한 일상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지금 머릿속에서 안개 너머 갇힌 어휘와 표현들이 맴맴 도는데) 그 힘없음이 불쌍함의 영역까지 가지는 않지만 답답함은 존재하고, 또 그런 대로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글. 역시 너무 추상적인가 싶어도, 그런 이야기. 더 가라앉지도, 더 무력하지도 않은 딱 여기까지의 글.

 

 

 

개인적으로 읽기의 한 호흡이 길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단편 읽기를 좋아하지만, 한 편이 끝나고 나면 그 여운 때문에, 새로운 제목 한 장을 넘겨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단편소설집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시간은 한 번에 쭉 달리는 장편소설에 비해 오히려 더 소모되기도 한다.

 

 

『침이 고인다』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비슷한 정서를 축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각 작품의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주인공의 모습도, 그의 가족도, 어딘가 서로 많이 닮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을 다 읽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까지의 텀이 더 길었던 것 같다. 하루에 한 편 꼴로, 많으면 두 편, 그렇게 읽은 셈이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하게 되는 작가라니.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다시 일으켜주는 작가라니. 나에게 이보다 더한 위로가 있을까. 계속해서 읽지 않을 수, 그녀를 좇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다섯 음에 적응해갔다. 피아노는 건반 자체가 아닌 자기 내부의 어떤 것을 '때려서' 음을 만든다는 것도 이해했다. 높은 음일수록 빨리 사라진다는 것도, 음마다 자기 시간을 따로 갖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니 각 음이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건, 여러 개의 시간이 만나 벌어지는 어떤 일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아홉 살이었고, 내겐 연주를 할 시간보다 말썽을 피울 시간이 많았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거나 언니의 비명이 들릴 때마다, 엄마는 만두피를 빚다 말고 잽싸게 달려와 우리를 두들겨 팬 뒤, 다시 쏜살같이 달려가 만두를 쪘다. 엄마는 늘 바빴다.

- 「도도한 생활」

 

 

 

어쨌든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그녀는 그날 밤, 후배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어쩌면 그 한마디 때문에 후배와 살게 된 건지도 몰랐다. 후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싶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는 말이에요. 껌 반쪽을 강요당한 그녀가 힘없이 대꾸했다. 응.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면 말이에요. 응. 후배가 한없이 투명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도 입에 침이 고여요."

- 「침이 고인다」

 

 

 

밥장사를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있지만, 어머니가 기억하는 일은 그렇게 사소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손님이라는 것도 별 특징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사내가 들어와 국수 두 개를 시켰다. 손님이 방을 원해서 어머니는 안방에 상을 봐줬다. 국수와 고추 다대기,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다. 사내는 빈 그릇을 하나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왜 그런가 싶어 사내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는 자기 맞은편 국수 위에 빈 그릇을 엎어놓았다. 혹여 국수가 식을까봐 그러는 거였다. 곧이어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방긋 웃은 뒤 그릇을 걷고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조용하고 친밀하게 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일상적인 배려랄까,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한 '여자의 눈'으로 손님을 대하던 순간이었다. 밥 잘하고 일 잘하고 상말 잘하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가 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때가 그 순간이었을 거다.

- 「칼자국」

 

 

 

그해에는 혼란스러운 것이 많았다. 신학기의 낯선 질문 앞에서 당황하거나, 뭔가 고백하고 해명하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조바심 낸다거나 하는 일들로 말이다. 우리가 하는 말은 대부분 할 말이 없어서이거나 침묵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는 우리가 언제 어떤 말을 하며 살아왔는지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그 말들 안에서 자주 달뜨고, 아프고, 우왕좌왕했다.

- 「네모난 자리들」

 

 

수록된 단편 여덟 :^)

「도도한 생활」「침이 고인다」「성탄특선」「자오선을 지나갈 때」「칼자국」「기도」「네모난 자리들」「플라이데이터리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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