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마주치다 -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고요한 꽃길을 걸어가는 듯한 책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 마다 한발 한발 그 길로 나아간다.

 

철쭉, 앵두, 등나무, 봉숭아, 장미, 맨드라미, 나팔꽃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꽃들인데 새삼 그 아름다움과 향에 놀라게 된다.

길에 피는 풀꽃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참으로 곱다.

그 꽃에 담긴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듣다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겠다.

 

나는 작약을 참으로 좋아한다.

화려하고 선명한 색. 그 풍성한 아름다움에 꽃말은 다소 아이러니한 부끄러움, 수줍음이다.

그래서 결혼식날 신부들이 선호한다는 작약부케는 나도 꼭 들고 싶은 꽃이다.

그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가장 수줍고 부끄러운 신부. 참으로 작약과 닮지 않았는가?

 

이 책은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꽃 사진은 물론이거니와

선조들의 그림, 그 꽃문양이 새겨진 도자기며 생활소품들,

그 꽃을 읊은 시들까지    

 

작약은 흔히 흰꽃과 붉은 꽃이 피는데 수줍은 흰꽃도 결코 수수하지 않다.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예부터 사랑 받아온 꽃답게 그림속에서도 이렇게 변치 않고 아름답게 피어있다. 


 

작약은 4500년 전 삼대시대에 이미 재배되었다고 한다.

‘시경’과 ‘초사’에 등장할 정도로 인류 문화와 인연이 깊다는 것에 놀랐다.

작약이 화왕인 모란과 더불어 꽃의 재상, 화상으로 불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약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되고,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몰랐다. 

화왕과 화상. 작약이 나오면 모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작약과 모란은 그 꽃이 너무 비슷하여 분간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연유로 처음에 모란은 작약의 이름을 빌려 ‘목작약’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름도 없이 불과 1000여년 전에 등장한 모란이

4500년의 역사를 가진 작약 보다 한 수 위인 ‘화왕’으로 불리고 있으니

작약으로서는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약을 서시의 후신으로 본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중국의 4대 미인이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게 만드는 ‘침어’의 아름다움 가진 서시.

이규보의 ‘홍작약’, ‘취서시 작약’ 시에서 서시와 작약을 읊는다.

‘취서시’라는 송나라 작약 품종도 있었다고 하니 그 아름다움이 가히 상상이 간다.

이렇게 작약을 읊은 시 중에는 오나라를 멸망시킨 서시를 꾸짖는 시도 있는데

한나라의 흥망성쇠를 한 여인의 탓으로만 몰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그녀를 옹호하는 시도 있다.

당나라 나은의 시가 그렇다.

 


 

작약의 낙화를 ‘채색구름으로 변하여 날아간다’ 고 표현한 시도 있다.

낙화조차 아름다운 작약.

책을 읽으며 작약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그 그윽한 향기에 취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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