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시라는 것은 나에게 시험문제 혹은 지루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정재찬 교수의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아래 머리말을 옮겨보겠다.
이제 감히, 대학 입시 떄문에 지금도 억지로 시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든, 시를 향유하는 자리에서 소외된 노동하는 청년이든,
심야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시를 읊곤 하던 한때의 문학소녀든,
시라면 짐짓 모르쇠요 겉으로는 내 나이가 어떠냐 하면서도
속으로는 눈물 훔치는 중년의 어버이든, 아니 시라고는 당최
가까이 해 본 적 없는 그 누군든, 시를 잊은 이 땅의 모든 그대와
함께 나누고파 이렇게 책으로 펴냅니다.
맞다 맞다.
내 얘기다.
정재찬 교수의 목적은 명확하다.
위에 나열된 그 누구도 쉬이 읽을 수 있는 한 권.
교과서에서 본 詩 혹은 시인에 대한 이야기 한보따리.
사연을 읽고 난 후에 다시 본 詩는 더 이상 교과서 안에 있는
죽어있는 시가 아니라 내 감정으로 재해석된 詩가 되어 있었다.
시를 읽고 내 안의 감정이 폭풍우가 되어 요동치는데 놀랐다.
인상 깊었던 시는 신경림 <갈대>로 아래와 같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학생 때처럼 부리나케 찾았던 상징이고 나발이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詩
시를 잊어버린 것인지,
내 감수성을 잃어버렸었던 건지,
공감하고 감탄하고 후련했다.
감정을 이렇게 간략하고 울림있게 글로 만들 수 있는지.
왜 시를 잊고 지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감수성을 찾은 느낌이다.
다시 詩를 찾았고, 앞으로도 더 詩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