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자란다. 일 년 내내 자라긴 하지만 주로 봄에 자란다.
나무는 봄에 많이 자라고 여름부터는 잘 자라지 않는다.
식물은 가만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지만, 쭉쭉 자라는 새순의 모습은 동물에 비해도 전혀 정적靜的이지 않다.
나무는 대부분 가을에 잎을 떨어뜨리고 겨우내 조용히 쉬다가 봄이 되면 깨어나는데, 씨앗에서 발아한 시점과 겨울눈에서 싹이 나오는 시점이 거의 같다.
잊고 있던 밤나무 가지에서 새순이 돋았다. 잊고 있던 통장에서 잔고를 발견한 느낌.
저마다 다르겠지만 4월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나무가 가장 바쁠 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변화가 클 때다. 겨울눈에서 싹을 내는가 싶다가 어느새 쭉 늘어나서 자라더니 잎도 내고 꽃도 내고 정신이 없다.
이때는 일주일만 못 보아도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
이미 많이 자라버린 가지와 막 자라고 있는 가지를 비교하며 관찰하는 것도 재밌다.
봄에 나무가 싹을 내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 생각보다 빠른 성장 속도에 놀랄 것이다. ‘나무처럼 자란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자연관찰을 잘하는 방법이 있다. 천천히 걸어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멈춰라. 멈춰서 오래 보라.
관찰 그리기를 할 때는 하나를 더 추가한다. 여러 날을 보라.
오늘 보고 다음날에도 보고 그 다음 주에도 보고…. 적어도 일 년은 꾸준히 관찰해야 그 식물의 모습을 잘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멋진 꽃을 찾아 낯선 곳에 가기보다는, 익숙한 곳에 자주 가서 보고 그리기를 추천한다.
그림은 입체를 평면으로 옮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눈앞의 대상은 입체이고 그것을 평면인 종이에 옮긴다. 입체를 평면에 그리려면 먼저 그 대상을 선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사물을 선으로 인식해 그리는 작업을 ‘윤곽선(외곽선) 따서 그리기contour drawing’, 간단히는 ‘선 따기’라고 부른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결국 ‘잘 본다’는 것인데, 내가 눈으로 잘 본 것을 그대로 손이 쫓아가면서 종이에 옮겨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연습을 하는 데 적당한 대상으로 평범한 사물들보다는 자연물이 좋다.
추운 겨울을 맨 몸으로 견뎌내 누구보다 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으려는 로제트식물의 전략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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