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관찰하고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꽃을 기다리다, 꽃봉오리 맺히는 모양도 지켜보고 그 꽃에 날아오는 새와 곤충들도 만났습니다.
그 모든 자연의 변화를 쫓아다니다가 결국 꽃을 보게 된 것일지도.
처음부터 두 권의 책으로 기획되었습니다. 2015년 가을에 펴낸 《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가 첫 번째이고, 《꽃을 기다리다》가 두 번째입니다.
꽃보다 열매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관찰-그리기’를 시작하고 훈련하는 데는 그쪽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자연물을 주워 집에 가져와서 관찰하다가 익숙해질 때까지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기보다 식물 관찰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꽃을 기다리다》를 먼저 읽기를 권합니다.
겨울눈에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기까지 나무의 온 과정을 기록합니다
냉이와 봄동처럼 잎을 달고 겨울을 나는 로제트식물과 다양한 풀꽃들이 앞 다투어 꽃을 피우는 전략도 살펴봅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봄이 오면 왠지 따듯한 봄 햇살과 살랑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쐬러 밖에 나가고 싶어진다.
꼭 봄이 아니어도 계절이 바뀔 때면 한번쯤 바깥에 나가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싶어진다.
꽃은 예쁘다. 또한 신비롭다. 다양한 빛깔, 향기, 형태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홀린다.
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만 훔치고는 그 존재의 이유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그 꽃이 왜 피었는지, 하필이면 왜 그 시기에 그 자리에 피어났는지, 왜 그런 모양과 색깔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번 책에 그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식물의 모든 단계에도 구체적인 이유와 스토리가 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식물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해의 성장을 부지런히 마친 식물은 마지막으로 씨앗을 남기기 위해 꽃을 피운다. 말하자면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꽃을 관찰할 때는 화려한 색깔과 향기에만 현혹될 것이 아니라, 암술과 수술을 비롯한 꽃의 내밀한 기관들을 잘 살피고 거기에 담긴 생존전략까지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한 삶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끈질긴 탐구정신, 그리고 일말의 상상력까지 요구된다 하겠다.
꽃은 식물의 중요한 기관이기는 하지만 식물의 생애에서 그저 한 단계일 뿐이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식물들은 추운 겨울에도 씨앗에 에너지를 끌어 모으고, 싹을 틔우고, 땅속 깊숙이 모세혈관 같은 뿌리를 뻗어 내리고, 그 뿌리로 물과 양분을 모아 새잎과 줄기를 만들고, 찾아오는 천적들을 막기 위해 갖가지 작전을 펴가며 안간힘을 쓴다.
저 혼자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이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과정의 치열함을 알아야 꽃의 진짜 아름다움을 보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꽃을 보고, 기다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식물의 온 생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더 잘 관찰하기’ 위해서다.
그림을 그리면서는 열 번도 백 번도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자꾸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고 더 탐구하게 된다. 그것은 생에 대한 더 깊은 관심으로 이어진다.
10년 넘게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는 습관을 가져왔지만, 막상 책을 내려고 하니 미처 그리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서 1년 더, 1년 더 하며 꽃을 기다리고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또 다시 발견하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모쪼록 이 책이 꽃을 좋아하지만 그 삶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를 기대한다.
좀 더 세심한 관찰과 다르게 보기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끌림 이상의 ‘생명 발견’의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와 다른 녹색을 띠고 있을 뿐, 이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처럼 매일매일 햇살과 빗물과 바람을 느끼고, 동료와 대화도 나누고,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줄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생장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가지 끝에 생장점을 만들었다. 그것이 겨울눈이다.
나무의 첫출발점은 씨앗이었다 해도 이후 해마다 이어가는 재출발점은 겨울눈인 것이다.
겨울눈은 나무의 또 다른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추운 벌판에서 재출발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겨울눈을 살펴보면 그 작은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모여 꿈틀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이런 감성은 갖고 살아야 삶이 풍요롭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겨울이 되면 마치 나무가 죽은 듯 보이지만 가만히 쉬고 있다. 쉬면서 새 출발을 준비한다.
겨울눈을 볼 때는 서로 마주나는지 어긋나는지도 관찰해 보자.
겨울에 나무를 알아보는 방법은 겨울눈 외에도 많다.
일반적으로 눈(芽, bud)은 생장점을 말한다
겨울눈은 나무에만 있다. 풀은 겨울이 되면 줄기가 말라죽고 다음해에는 씨앗이나 뿌리에서 다른 생명이 싹 터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무를 관찰할 때 꽃과 잎, 줄기를 보면서 구분하지만 겨울눈도 저마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나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꽃, 열매, 잎 등은 나무에 붙어있는 시간이 정해진 반면 겨울눈은 사시사철 매달려 있기 때문에 언제나 관찰 가능하다.
겨울눈을 잘 알고 있으면 언제라도 나무를 보고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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