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기쁨
EBS 특집 <놀이의 기쁨> 제작진 지음 / 그린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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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BS 특집다큐 <놀이의 기쁨>이 책으로 나왔다.

작년 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이 다큐의 일부분인 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본 적이 있다.

극히 일부분이었지만 그 내용은 머리에서 떠나질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 다큐가 방영되기 두어달 전에 우리 동네 놀이터 모래사장이 우레탄 바닥으로 대체되었었다.

좁디 좁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던 그 모래사장은 바닥공사를 위해 파헤쳐졌고, 모래사장을 특히나 좋아했던 몇몇 아이들이 우두커니 서서 공사현장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직도 눈 앞에 선하다.

그 인상적인 장면들이 겹쳐지면서 이 다큐는 언젠가 내가 꼭 보아야할 프로그램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다큐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

오랜만에 남편에게 장시간 혼자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진심으로 목빠지게 기다렸던 <놀이의 기쁨>

그리 두껍지도 않을 뿐더러 내겐 다소 뒷통수 맞는 느낌의 내용들이 있어서 단숨에 읽어졌다.

곱씹어 읽고 싶은데 단숨에 읽어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주로 다큐의 내용을 담았고 그에 관련된 근거이론이나 질의응답, 전문가 인터뷰 등이 적절한 부분에 배치되어 읽기가 편했다.

책의 시작 부터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처음 등장하는 분은 놀이 고수 아빠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위해 육아휴직을 낼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사실 나는 이 분을 보며 참 대단하다, 배워야겠다, 세상에 이런 아빠도 있구나!'하고 감탄을 금치못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평을 보고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것은 놀이가 아니라 학습이라는 평.

왜 일반인의 눈에는 베테랑 놀이 육아 아빠임이 분명한데, 전문가의 시각에선 호평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이건 아무래도 나의 서평 피드 보다는 다큐나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 나을 것 같다.


진정한 놀이는 의도도, 목적도, 결과물도 필요하지 않다.

그 대목에서 나와 아이가 함께한 시간이 휙휙 지나갔다.

나의 착각으로 아이를 괴롭게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으로 더 늦지 않게 이 책을 접해 다행스러웠다.



놀이 고수 아빠에 뒤이어 아이의 놀이를 걱정해오던 다른 한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티슈를 빼내는 등의 단순행위만 반복하고 엄마가 사주는 장난감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엄마의 우려가 소개되었다.

전문가는 이러한 행위가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놀이방법임을 알려주었다.

이러한 조언 뒤에는 성장시기별 놀이가 소개되어 있어 다른 연령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호기심 또한 해소하도록 하였다.

우리 아이는 이미 60개월을 바라보고 있기에 우리 아이의 유아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엄마로서 나는 그 발달과정을 이해하고 기다려주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놀이의 필요성 또한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처음 아이가 걸음마를 하고 바깥세상에 나갔을 때 바닥에 떨어진 지푸라기도 줍지 못하게 한 적이 있었다.

계단 오르는 것 조차 겁이 나서 오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마라, 하지마라"고 했더니 불현듯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후로는 '하지마라'는 말의 횟수를 많이 줄이게 되었다.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려면 넘어져봐야'한다는 말은 여기저기서 들은 적이 있다.

무언가 해내려면 실패를 경험해 보아야한다.

지금 우리아이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어디일까?

그게 바로 놀이이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 수능공부를 할 때, 주입식교육이 문제라며 어른들은 우리 머리에 집어넣기만 하려고 한다며 비난하곤 했다.

부모가 된 지금은 신랄하게 어른들을 비난했던 과거는 잊고 과거 기억속에 어른들 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나도 내 아이 머릿속에 정보만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을 아닐까?

말로만 실패해도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다고 떠드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택하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이 책의 글처럼 우리 아이들의 세계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새로 일어서는 법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는 회복탄력성 이외에 놀이의 긍정적인 기능이 추가적으로 더 설명되어있다.

유아, 초등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이 책을 꼭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속에서 눈에 띄던 한 아이! 아니다! '단연 눈에 띄는 엄마'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아이가 시장놀이가 하고 싶다는 말 한 마디에 박스를 들고 진짜 물건을 팔러 놀이터로 나간 엄마!

진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 시킨다는 엄마들 보다 내 눈엔 더 열정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자식을 키워보니 한 걸음 물러나서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이 엄마는 한 걸음 물러나 기다려줄 때는 꿋꿋하게 기다려주고, 필요할 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을 읽고 남편에게 조잘댈 때, 건성건성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남편이 이 부분을 이야기하자 고개를 훽 돌리며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다큐에 소개된 저 엄마분이야 말로 진정한 열정맘인 것 같다.



세상 멋진 아빠들도 등장한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고픈 마음에 "골목 놀이의 날"을 준비하는 아빠 모임.

세상에 이런 아빠들도 있다!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퇴근하면 휴대폰 게임하고 TV 리모콘을 휘어잡고 있으신 아버님들이 꼭 보아야 한다.

골목 놀이의 날을 준비하는 아빠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도시밖에 놀이터를 직접 만들어주는 아빠들도 소개되었다.

신나서 상기된 아이들의 표정은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과 전문가의 관찰평, 우리 부모들이 흔히 갖고 있던 오해들, 아이들의 바깥활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들.

이러한 내용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중간중간 놀이상담실도 한 꼭지씩 자리하고 있어 평소 갖고 있던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또 하나의 슬픈 부분 등장.

우리나라 어린이의 실외 활동 시간이 미국과 캐나다에 비해 얼마나 적은지 보여주는 막대그래프.

절반도 못 미치는 시간이다.


이 표와 '바깥 놀이와 스트레스' 부분을 읽은 후 실제로 아이와 바깥활동시간을 늘렸다.

코로나로 놀이터도 못 나가고 집에서 티격태격하며 보냈던 아이와 나.

실외 활동 부족은 비단 아이에게만 스트레스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후 최소 이틀에 한 번은 아이와 인근 낮은 산에 다녀왔다.

거의 두 시간 이상 바깥활동을 했다.

아이의 짜증도 줄었지만 나 또한 많이 유순해졌음을 느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책상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이 실제로 맘껏 놀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대학교 가면 또 취업준비, 취업하면 일에 치이고, 결혼하면 집안행사와 육아에 치이고...

나도 조기교육 시키지 않는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공부 시킨다.

이것이 팩트!

하지만 공부 시킬 때 시키더라도 맘 껏 놀아주고 시키자!

이것도 인생공부니까!!!

나처럼 다소 조급한 엄마라면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꼭 읽어보시길...

놀이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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