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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되어 줄게 ㅣ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출간 소개글에서부터 흥미로운 주제였다. 타임슬립에 관한 많은 책들, 그림책부터 성인 소설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여행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시간을 돌린다면’ 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지. 엄마와 딸이 30년의 시간 차이 속에 바뀐 이야기, 「네가 되어 줄게」 를 소개한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청소년 소설이라고 굳이 제한하지 않아서 더 좋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와 어딘지 닮았다. 마음을 묘사해서 그런 것일까. 나는 그 영화에서도 이 책에서도 엄마가 더 많이 보인다. 엄마, 엄마의 마음, 잘하고 싶은데 잘 하고 있는 건지 늘 궁금한 엄마의 마음.
이 책을 읽다가 작가의 전작인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읽었다. 김지영씨를 읽었을 때 나는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뭐 이리 극단적으로... 82년생이면 나보다 어린데 왜 나도 겪지 못한 일들을 이렇게 종합세트로 겪고 있는 건지... 그깟 말들 툭툭 털어버리지... “왜 그래 지영 씨.. 기운 좀 내봐요..” 그랬었다.
그런데 엄마 최수일씨를 만나보니, 김지영씨가 더 생각이 났다. ‘지영씨 이제 괜찮아진 거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김지영 씨를 다시 찾았는데 엄마 최수일 씨는 김지영 씨보다 두 살이 많았다. 어쨌든 작가의 주인공이 지영 씨에서 최수일 씨로 바뀌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면 너무 나간 걸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딸을 키우는 최수일 씨와 나는 닮은 부분이 많다. 처음에는 우리 집 예쁜 고양이와 이름이 같은 망고, 그리고 이상은의 음악이 그랬고 내 마음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한 싸움의 기술(?)에 대한 묘사가 그랬다.
싸움의 주제가 바뀌었다는 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빨래 문제는 문 쾅,으로 다시 평소 생활 태도와 식습관으로 튀었다. 결국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항상 자기가 져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아니다. 내가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내 나쁜 버릇들, 예전 실수들을 끝도 없이 끄집어 낸다.
너는 말대꾸라고 생각 안 했는데 말대꾸가 돼버릴 수 있어, 엄마한테는 말대꾸의 범위가 너무 광활하거든.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라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면 대답하지 마. 물어보는 거 아니고 혼내는 거니까
네가 되어 줄게 중에서
어떻게 알았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먼. 작가는 인터뷰를 많이 했나, 경험을 많이 했나.. 신기했다.
객관적인 나를 보게 된다.
‘아 나도 저런데... 아이는 다 알고 있구나. 나는 아이를 이기려고 했고, 아이는 어이없어하며 져 준 거였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래, 엄마. 윤슬이는 이렇게 씩씩한데 엄마가 더 난리네. 어휴, 눈물 자국 좀 봐. 가서 세수도 하고 시원한 바람도 쐬고 들어와요. 나랑 윤슬이랑 여기 있을게.
네가 되어 줄게 중에서
엄마가 더 난리... 얼마나 엄마들이 난리인지, 책 속의 모녀인 두 엄마들이 분주하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난리인데 사랑인데 그걸 말하지 않는다. 사랑인데 보이는 건 난리이다.
그 속에 나도 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난리를 쳤다. 땀띠 나면 따가울까 시원하게 키웠다.
내 키만큼 자란 아이에게 “여름이 덥지 추워?” 하며 이제 와 지구를 생각하자며 에어컨을 참으라고 한다.난리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난리다. 내 새끼만이 아닌 지구의 엄마가 되기도 하고, 애달픈 사연을 가진 남의 아이의 보호자가 되기도 한다. 난리 법석 엄마다.
나는 윤슬이에게 사랑을 주려 애쓰고, 동시에 엄마의 사랑을 받는 윤슬이를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내 노력을 멈추지 못했다. 사랑받는 일이 당연한 윤슬이가 부럽고 궁금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이상한 마음이 이 이상한 상황을 초래한 것 같다.
네가 되어 줄게 중에서
그러면서 또 엄마인 내 탓이 되어버린다. 책 속의 많은 순간에 내가 살아있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기보다 그냥 내 속에서 나온 또 다른 나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어느 순간 아이의 시간에서 내가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보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못 살겠다가 너 없어도 못 살겠다는 책 속의 윤슬이 엄마의 고백에 입이 실룩거린다. 치유의 순간이다.
“괜찮아요 윤슬이 엄마, 다 지나가요.” 아님 “이제 시작이에요 벌써부터 진 빼지 말아요.”라고 말해주려다 참는다. ‘우리 같이 힘을 내요.’라고 동지가 된다.
어쩌면 30년 전의 나를 만남으로 오늘의 나를 칭찬하고 싶은 최수일의 마음이 이 일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누리고 싶어서. 아이는 ‘엄마의 영혼’은 어디에 갔을까 생각했고 엄마는 ‘아이의 마음’은 어디에 갔을까 생각했다.
아이에게 엄마는 생명이다. 엄마에게 아이는 나 자신이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흘러가고 있다는 책 속의 말에 공감이 간다. 아이와 나는 영혼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위로와 공감을 준다. 산후우울증이든 육아 우울증이든 어떤 마음 아픔을 잘 이겨낸 김지영을 만나는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상쾌하다.
아주 오래전의 다큐 「아이의 사생활」을 봤을 때의 감동이랄까 은혜로움이랄까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나만의 느낌일지 모르지만 문체도 따뜻하다. 표지 그림도 재미있다. 이 중 누가 엄마 수일 씨이고 누가 딸 윤슬이 일지 찾는 재미가 있다. 확신한다. 엄마 수일 씨는 맨 앞에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 단화에 양말을 곱게 신은 아이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표정이 보인다.
추천한다.
-내가 갱년기이고 아이가 사춘기인 것 같은 엄마에게.
-오늘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엄마에게.
-그리고 조남주 작가의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떤 이에게.
마음에 들었던 한 줄,
-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게 나아, 나쁘기도 좋기도 한 게 나아?
서평단 신청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