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리 풍경
이종근 지음 / 채륜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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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가장 큰 선물은 새로움과 추억이다. 다양한 피조물에 대한 의미부여는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맨홀 뚜껑 하나를 보더라도 '으레 있는 맨홀 뚜껑이구나' 보다는 '지역색을 따라 맨홀 뚜껑이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느낄 수 있으면 조금 더 남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리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띄워준다. 길을 건너게 해주는 구조물에서, 과거를 느낄 수 있는 구조물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가교.

다리는 그 역할이 갖는 특성상 다양한 스토리를 내재하고 있다. 예컨대, 정몽주의 선죽교, 한국전쟁 때의 한강철교, 소나기의 징검다리가 대표적이다. 다리는 세월을 잇기도 하고, 사람을 잇기도 하며, 문화를 잇기도 한다. 수 많은 다리 중 저자는 스물 다섯 곳의 다리를 가져와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는 다리를 보는 눈을 높여준다.


목차

평창 봉평의 다리/ 양평의 소나기 징검다리/ 수원의 화홍교/ 안양의 만안교/ 청계천의 다리/ 무섬의 외나무다리/ 주남돌다리/ 진천 농다리/ 논산 명재고택의 다리/ 광한루의 오작교/ 정읍 군자정의 다리/ 금산사의 무지개 다리/ 태인의 대각교/ 새창이다리/ 보길도 판석보/ 천은사 수홍루/ 진도 남박다리/ 태안사 능파각/화순 보안교/ 낙안읍성 평석교


여행을 통해 무심코 지나간 다리들도 있고, 내가 사는 지역의 다리도 있다. 이 책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눈에 담아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목차다.



p.27(수원의 화홍교)

「성곽이란 적의 침입에 대비해 효과적인 방어를 하기 위한 시설물로서 이에 유리한 지형에 구조물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산꼭대기에 성벽을 두른 퇴뫼형이 주로 축조되다가 차츰 규모도 커지면서 계곡을 포함한 포곡형 산성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성곽의 다리는 윗부분의 연결 기능 말고도 성벽을 주변과 같이 쌓아 올려야 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다리보다 튼튼한 구조여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다리의 형태는 대부분 홍예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홍문'이 이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다리에 관한 개인적 감상만을 담고 있지 않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지식들이 함께 제시가 되고 있어, 학술적 가치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작년여름, 영주로 여행을 갔다. 그 때는 이렇게 중요한 곳인지 몰랐던 무섬마을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다큐멘터리로 보니 무섬마을을 둘러싼 강이 내성천이라 하더라. 그 때 모르고 볼 때도 물이 유난히도 맑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세계에서 내성천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길게 연결된 외나무 다리를 장난스럽게 건너갔다 건너왔는데, 그 다리가 그 유명한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였다.


p.55

외나무다리가 없는 여름에는 바지를 홀딱 벗은 후 머리에 이고 건넜지. 강둑을 높이기 전에는 대청마루에 앉아 강을 건너는 사람의 엉덩이만 봐도 누군지 다 알아. 젊은이들은 소 꼬랑지를 잡고 헤엄쳐서 건너기도 했어. 핵교 가기 싫어 일부러 물에 빠지는 아이들도 많았지.




일제 수탈의 상징 부잔교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공출하기 위해 1899년 군산항이 개항되었다. 이러한 수탈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는 건축물 하나를 꼽으라 하면, 서슴없이 부잔교를 꼽겠다. 천안에서 출발한 자전거를 타고 군산에 가 부잔교 앞에서 쉬었던 기억이 난다.


군산의 부잔교에가면, 부잔교에 관한 설명이 새겨져있다. "부잔교(일명 뜬다리)는 서해안의 특징인 조수간만의 차로 인한 부두기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제작되었다. 작동형태는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배를 정박하는 부두인근에 갯벌(5~10m)이 드러나 배가 부두에 정박할 수 없는 점을 보완하고자 물에 뜰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정박시설을 건설하고 부두에서 정박시설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밀물과 썰물시 상하로 움직이며 선착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부잔교는 일제가 전라도 곡창지역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소울하기 위해 건설한 항만시설로 제3차 축항공사기간(1926-1933)에 부잔교 3기를 설치하여 3천 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 3기가 추가되어 6기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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