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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제국 - 인류의 육식문화를 다시 생각하다
티머스 패키릿 지음, 이지훈 옮김 / 애플북스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2012년에 『12초 마다 한 마리씩』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1월 27일에 개정판 초판이 나왔으니, 시쳇말로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개정판을 내면서 책 제목을 『육식제국』으로 변경하였는데, 탁월한 선택이다. 요새 Trump를 보면, 실제 투표는 아니더라도 지지율에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먹히는 듯하다. 표지도 아주 깔끔하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디자인 좋은 책이 이해하기에도 좋다.
저자는 육식에 관한한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고 있다. 육식자체를 거부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육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소, 닭은 어디에서부터 어떠한 경로로 왔는지, 그리고 왜 그것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도 무지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p.28
이 책에는 도덕적, 물리적으로 혐오스런 것들에 대한 묘사도 담겨있다. 그러나 거부감이 들어 페이지를 건너뛰고 싶다면, 당신은 도축장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 애쓰는 저들과 똑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치느님에 열광하면서 닭이 도축되는 과정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원산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풍요로운 낙원일 지라도 육류는 도축장으로 귀결된다. 단지 식문화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닭과 소를 먹으면서 원형을 잊어도 되게 되었다. 문명은 이렇게 은폐로부터 유지된다.
p.84
킬 플로어의 위층과 아래층 구분은 노동 분업에 의한 격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래층으로 출근하는 박스실 노동자는 종일 위층 킬 플로어에 올라가지 않는다. 온종일 박스를 접어 컨베이어에 올려놓는 일만 반복하다 보니 소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가 없다. 갈고리 씻는 노동자 역시 갈고리에 묻은 기름덩어리와 핏자국, 그리고 갈고리들이 부딪치는 소리만 보고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권두에는 벤담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파놉티콘의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파놉티콘을 상상한 것은 벤담이지만 그것을 철학적 소산으로 탄생시킨 것은 푸코다. 푸코의 사상에 따르면 도축장. 아니 ‘소 해체 공장’은 완벽한 파놉티콘의 전형을 보인다. 각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기 때문에 ‘소 공장’에서 일하지만 소가 어떻게 생긴지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죽을 벗기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가죽만, 머리를 도륙하는 사람은 머리만. 신장, 창자, 허파, 눈, 코, 귀. 모두 전문적인 손길에 의해 해체된다.
이 완벽한 분업은 100년도 더 전에 자본주의의 수립과 함께 뒤르켐이나 베버에 의해 공론화 되었던 사안이다. 완벽한 분업은 합리적이지만 탈인간적이다. 결국 도축장에는 소도 없으며 인간도 없다. 그리고 이 참상을 우리 내 식탁에 올릴 수 없기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은폐를 당하고, 이를 알면서도 침묵을 지킨다. 오직 썰어놓은 스테이크를 섭취할 때만 입을 벌린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꺼내면서도 책이 쉽게 잘 읽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론에 반영된 현장, 현장에 반영된 이론이 있어서 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일정한 행동양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도 않으며, 뜬 구름 잡는 원론적인 이야기로 거리감을 형성하지도 않는다.
p.91
도축장 근처를 몇 바퀴 돌고 사진을 찍은 다음,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고 전화를 걸어 경험이 없는데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자리는 많아요. 면접 보러 오세요.” 업체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나는 도축장 이직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 심지어 1년 평균 이직류이 100퍼센트라는 통계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치학 교수인 저자는 본 저를 위하여 도축공장에 위장취업을 감행한다. 그가 들어간 곳의 정확한 사명(社名)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당시 미국에서 10대 규모의 도축장이라고는 설명이 되어 있다. 현장에만 있던 사람은 조망하고 정리하는데 서툼을 보이는 반면, 책상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은 현실괴리적인 탁상공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정치학 교수로 도축장에 실제로 위장취업을 했다. 따라서 이책은 현장르포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의 완성된 문헌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갤럭시노트는 어떤 공정을 거쳐 생산하며, 판매합니까? 라는 질문을 공장장한테 물어야 하나, 마부장한테 물어야 하나.
도축장은 울타리에 쌓여있으며, 법적 테두리로 부터도 보호를 받고 있다. 모든 음향장치 및 영상기기는 반입과 접근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업자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의 목적을 가지고 취업을 한 경우에도 법적 처벌을 받는다. 즉, 볼 수도 없는 데다가 경험담을 들을 수도 없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면, 아마도 우리가 살면서 이 책 이외에는 달리 내부 사정에 대해 알 길은 닫혀있을지 모른다.
권 두에서 경고한 대로 도축과정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표현 앞에는 도축장의 도해를 제시해 주어 이해가 십분 용이하였다. 하지만, 이해가 용이한 건 한 거고 적나라 한 건 별개의 문제다. 비유가 약하더라도 참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p.64
(소를 옴짝달싹 못하게 고정시켜 놓은 뒤)방아쇠를 당기면 길이 약 10cm, 지름 2.5cm의 볼트가 발사된다. 볼트는 소의 두개골을 관통한 뒤 재빨리 원위치로 돌아온다. 볼트가 발사되어 소머리에 부딪힐 때 ‘프흐트 프흐트’하는 작은 소리가 난다. 구멍 난 소의 두개골에서는 회색빛 뇌수가 뿜어져 나온다. 노커의 옷과 팔과 얼굴에 튈 정도다. 잠시 후 구멍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쳐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흐르다가 산화되어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