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
고석규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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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흐름 속에 관통하는 진리,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64


방금 시간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로 ‘공기와도 같다’는 표현을 쓰려다가 멈칫했다.
어떠한 물질도 없이 비어있는 진공 상태처럼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시간을 흥미로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시간을 흥미롭게 생각하는 동시에 가끔은 미워하기도 하는데, 하루에 수십 번씩 시간을 확인하며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 때나 시간이 흐르는 것이 너무 아까워 붙잡고 싶을 때는 시간이 미워진다.
내가 시간을 미워할 때는 대부분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할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은 시계를 볼 줄 몰랐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전에도 시계를 볼 줄 아는 어른들에게 시간을 물으며 시간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내가 시계를 보는 방법을 배운 것은 학교에 다니는 게 슬슬 익숙했졌을 즈음,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다.
그렇게 시간을 인식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된 그 때부터 시간은 내 생활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때로는 유용하게 때로는 마치 족쇄처럼 영향을 미쳤다.

개인만 해도 이러한데 그렇다면 인류가 시간을 인식하고 시간을 측정한 역사는 어떠하며 또 그러한 것들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는 먼저 시간의 개념과 다양한 시간관을 소개하며 차근차근 시간의 역사를 전개해나가는데, 서양(서구)의 시간과 시계를 다루는 1부를 읽으면서는 해의 운행을 보고 만든 역법인 태양력의 기원이 되는 고대 이집트부터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을 거쳐 현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역법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해시계와 물시계처럼 자연현상을 활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시계가 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1280~1300년 사이에 처음 제작되었을 거라고 추정되는기계시계는 톱니바퀴와 추를 이용해서 처음에는 다루기 힘들 정도로 컸지만 태엽을 이용하면서 시계 크기가 작아지며 회중시계를 거쳐 손목시계에 이르게 되었고, 이전의 기계시계들에 비해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높은 진자시계가 17세기에 탄생한 뒤 시계는 자유추시계와 수정시계를 거쳐 세슘원자시계까지 이르며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였다.
이후로도 기술이 발전해서 오차 없는 절대 시계로 향하고 있다고 하니 이쪽 방면 기술 발전도 어마어마하다.

3만 년에 1초의 오차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도 높은 세슘원자시계는 전세계에 50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정동진 시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니, 정동진에 가면 해돋이만 보고 올 게 아니라 시간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또 지금 우리가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역법은 서양의 역법에서 비롯되어서인지 1부에서는 국제표준시 GMT(Greenwich Mean Time)와 협정세계시 UTC(Universal Time Coordinated)와 함께 시간의 사회사도 다루는데, 특히 4부 시간의 사회사는 현대인들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내용이라 읽으면서 한번 환기가 되는 듯했고, 세포의 노화를 측정하는 생체시계 텔로미어와 노화의 비밀, 그리고 2000년 밀레니엄에 대한 글은 더욱 흥미로웠다.

2부에서는 조선의 역서와 시계를 중심으로 조선의 역법을 다루는데, 2부 내용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저자 소개를 해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모두 마치고 타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탄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은 2부가 저자의 전문분야에 더 가깝다는 것이고, 안 그래도 요즘 조선시대에 관심이 가던 차였기 때문에 2부는 더욱 기대하며 읽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추산하여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왕이 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자 왕에게만 허락되었다.
이 일이 중요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당연히 농업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는 하늘이 현상으로 인간세계 일을 알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후자의 믿음 때문에 해와 달이 잡아먹히는 일식과 월식 예보는 국가 차원에서 중시되며 천체 관측과 천문 역법 발달에 힘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법은 달력을 만드는 역서와 시각을 알려주는 보시 기능으로 구분되기에 2부에서 조선의 시간은 역서와 시계로 나뉘어 소개된다.
처음에는 역서가 책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달력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달력이 역서나 책력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 역서를 다른 나라의 것을 받아들여 사용한 시절도 있었지만 지리상의 차이 때문에 우리와 맞지 않아 우리 실정에 맞는 역서의 필요성을 느꼈던 데다가 자주적인 사고가 더해져 본국력을 만들게 되었고, 교정에 교정을 거쳐 독자적인 역법의 본국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는 달력은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일까?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양력은 1부에서 보았던 그레고리력으로, 고종 재위 시절인 1896년 1월 1일부터 사용했다.
사실 음력(태음태양력)의 정확성이 높아서 일상에서 사용하는데 부족함은 없었기 때문에 양력 사용은 단지 서양 근대문물 수용과정일 뿐이었다.
전통 역서의 단절은 역시나 일제의 식민지 침략에 의해 발생했고, 지금 나와 여러분의 책상 위에 있는 달력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달력은 어떤 디자인으로 만들어지든간에 국립천문대인 한국천문연구원 배포 역서 내용대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조선의 역법과 역서를 다룬 장을 지나면 해시계 앙부일구, 물시계 자격루, 천문시계 혼천의와 혼천시계처럼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봐서 이름만은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린 시계부터 배웠지만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안 배운 건지 이름도 낯선 흠경각 옥루와 같은 시계까지 조선의 여러 시계를 만날 수 있다.
과연 이 장에서는 세종의 이름이 진하게 묻어나는데, 19세기 천문학의 한계까지 이야기한 것이 좋았다.

시간과 역사는 모두 내가 흥미로워하는 주제인만큼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조선의 역서와 시계를 통해 우리 시간의 역사를 알게 되니 음력에 대한 내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도 명절이나 생일 등 음력이 쓰이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 나는 음력으로 기념일을 챙기는 경우를 번거롭다고만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음력을 사용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내 생일도 음력으로 챙기고 싶은 마음가지 생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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