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나의 생존과 용서, 배움에 관한 기록
리즈 머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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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배움의 발견>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난 소녀가 배움을 통해서 인생을 바꾸었다는 저자의 실화를 담은 에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에 읽어서 이제 머릿속에는 굵직한 줄거리와 몇몇 인상적인 장면만이 남아 있는 그 책의 제목은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로, 이번에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으로 새단장을 했다는 소식을 보면서 옛 친구를 만난듯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은 책 표지뿐만 아니라 내지 디자인도 붉은색 계열로 표지에 맞춰 바뀌었다.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를 읽은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번에 다시 저자 리즈 머리의 이야기를 읽을 생각하니 책을 손에 들었을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은 친구 집을 전전하며 떠돌아 다니던 시절의 리즈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엄마와의 공통점을 찾는 에필로그로 시작을 하고, 엄마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본문으로 넘어간다.
리즈의 엄마는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와 학대를방관하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열세 살부터 친구 집을 전전했고, 그런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인지 일찍부터 마약에 손을 대서 약물 중독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리즈는 정부에서 주는 복지 수당을 5일만에 다 써버리고 딸이 모아둔 돈을 훔쳐 코카인을 사는 약물중독자 부모 밑에서 먹을 것이 없어 언니와 치약이나 체리맛 챕스틱을 나눠 먹기도 했을 정도로 배고프고 악취를 풍기는 집에서 자랐는데, 이런 환경이 리즈를 학교와 집 밖으로 내몰았다.


우리는 아직 젊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잠을 자건, 북쪽으로 향하는 지하철 D선의 꾸준한 흔들림 속에 머리를 기대거나 별빛 아래서 공원 도로 벤치의 단단한 판자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을 때, 내가 간직해야 할 것은 나의 가족과 집이라는 개념뿐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다녀야 할 짐은 베드퍼드 파크에 도착해 서맨사의 따뜻하고 뚱한 목소리를 듣기 전부터 항상 가지고 다녔던, 이제는 익숙해서 가볍게 느껴지는 단출한 보따리뿐이라는 사실을.

p.291


책을 읽다보면 슬프게도 초반에는 리즈의 엄마와 리즈의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즈도 열다섯 살에 결국 엄마와 마찬가지로 집을 나와 친구 집을 전전하거나 밖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생활한다지만 미성년자가, 그것도 여자 아이가 그런 생활을 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리즈를 보면서 절벽 위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를 보는 듯한 심정이 되었다.


삶은 늘 그런 식이다. 한순간 모든 것이 이치에 닿다가도, 다음 순간 상황이 바뀐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가족들이 헤어지고, 친구들이 문전박대를 한다.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 내가 경험한 급작스러운 경험들이 떠올랐지만, 내 마음 속에 솟아난 감정은 슬픔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그 자리에 다른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인생이 최악으로 변할 수 있다면, 어쩌면 어쩌면 좋은 쪽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고, 심지어 전 과목 A를 받은 것도 가능했다. 물론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비추어 보면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을 가능성은 있었다.

p.383


하지만 리즈의 엄마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되는데, 죽을 때까지 약물 중독자의 삶을 산 리즈의 엄마와 달리 리즈는 부모를 반면교사 삼았으며 마음을 다잡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에 매진하여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리즈가 자신의 엄마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리즈의 부모가 약물 중독자로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니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어려서부터 착하고 영민한 모습을 보여 준 리즈의 성품 때문에?


그러나 해결하기 훨씬 더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내 입에서 “다 관두자”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런 상황은 아침 6시 20분에 자명종이 울리고 내가 피에프의 집 또는 부모님이 안 계신 다른 집, 즉 규칙도 없고 잠잘 수 있는 시간의 제약도 없는 곳에서 깨어났을 때 일어났다. 열 명 이상이 바닥에 있는 남루한 쿠션과 매트리스 위에서 아무렇게나 자고 있고, 해는 이제 막 떠오르고 있고, 아파트 벽에는 낙서가 도배되어 있고, 맥주병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곳. 모두들 밤새 파티를 하고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곳. 밤 시간 동안 나는 층층계에서 숙제를 했고 ㅡ성적표를 정신 집중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여ㅡ 담배 냄새와 파티를 파티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떠들썩하고 산만한 유혹을 피하기 위해 나 자신을 분리시켰다. 그러다 밤에 상황이 잠잠해지면 친구의 아파트로 들어가 찾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두어 시간 뒤에 자명종이 울리면, 나는 눈을 뜨고 그곳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그럴 때면 담요를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자고 싶은 유혹이 너무도 강렬했다. 그 순간 그 유혹은 내 의지를 약화시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p.430-431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리즈는 외부 환경 그리고 자기 자신과 싸우는 삶을 살아왔고, 그녀의 삶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다는 것은 변함 없다.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를 처음 읽었을 때 약물중독자를 부모로 둔 리즈의 이야기는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거리에서 방황하는 리즈를 보면서는 내가 가출했던 때가 떠올라 공감도 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삶을 살아내고 도전하는 리즈를 응원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도 여전히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리즈 머리의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특히 <배움의 발견>을 인상적으로 읽은 독자라면 같은 결을 한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도 인상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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