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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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전문학, 설국. 그와 관련된 키워드 중에는 도무지 내게 친숙한 단어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많이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나온 10권 중 4권의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를 읽었는데 그 중 가장 좋았다고 하면 모순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설국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배우고 깨닫는 재미가 있었고, 내용을 쓴 작가님이 시인이라 그런지 문학적인 내용이 훨씬 더 감성적으로 다가와서 더 그랬다. 앞으로 나올 클클은 얼마나 더 좋은 내용일지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죽음, 허무와 같은 어두운 단어로 대표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쳤으니 더더욱 그런 느낌이다. 기억조차 하기 힘들 두 살, 세 살 때 차례로 아버지, 어머니를 여의고, 일곱살 때 할머니를, 열다섯 살 때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그. 그렇게 그에게는 그가 말하는 '고아 근성'이 자리 잡았고 그런 생각들을 극복하고자 이즈반도, 에치고유자와 등지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각각 <이즈의 무희>, <설국>의 배경이 되었으니 '여행'이란 단어를 그의 생에 긍정의 의미로 붙여주고 싶다.

그의 일화 중 학교와 관련된 내용이 흥미롭다. 작문 과목 등수가 88명 중 무려 뒤에서 3등인 것. 저자는 아직 그가 작문에 눈 뜨지 못했을 가능성, 중학 과정의 작문 평가 기준과 그의 성향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난 아무래도 후자에 기운다. 글쓰기라는 것이 갑자기 실력이 좋아질 수가 없다. 중학 5학년 때 돌아가신 스승의 영결식 장면을 묘사한 <스승의 관을 어깨에 메고>를 학생 잡지에 발표했는데 이 정도면 그의 문학성은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게 옳아 보인다.

그런 그도 좋은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퇴고를 반복하는 노력가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마치 성경 구절 암송하듯 이 책을 읽고 저절로 외워진 설국의 첫 문장인데, 문학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로 꼽힌다고 한다. 한 순간의 영감으로 탄생한 문장이 아니라고 하니 그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노력에 노력을 더해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려 애썼던 그의 모습에서 겸손함을 느끼고 장인정신을 배운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삶 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웠던 그의 생애라서 그럴까. 가스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이 더 소설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그의 생애를 살펴봤으니 이젠 그의 작품을 만날 차례다. 이렇게 좋은 해설서를 두고서도 <설국>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부족한 내공 탓이리라. 무더운 여름에 눈 내린 그 곳을 떠올리며 시원한 문학 여행 얼른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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