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이…… 두려워요.

본문 201쪽.






집콕 생활 중에 <심판>을 읽게 된 건 행운이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이다. 그의 전작 <타나토노트>와 <기억>을 읽은 독자라면 익숙한 설정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책장을 펼침과 동시에 지금 내가 원형 극장에 앉아 있다고 상상했다. 관객석이 꽉 차있다. 조명이 꺼지고 말소리와 기침소리가 잦아든다. 막이 오른다. 아, 이게 얼마 만의 연극인가.



연극의 등장인물은 4명이다. 천국의 심판대에 오른 남자 아나톨이 주인공이다. 아나톨의 인생을 심판하는 재판에 재판장,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참석했다. 이곳에서 생전에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가장에 좋은 직업인이었다는 아나톨의 주장이 맞는지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관객석에는 재판을 구경하러 온 천사들이 앉아있다.





'심판'하면 엄숙하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읽기 전에는 희곡 <심판>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는 당신은, 신앙이 있나요?


시시각각 변해요. 지상에 있을 때, 샹젤리제 근처에서 주차 자리를 발견하면 신을 믿게 되더군요.


가브리엘이 히쭉 웃는다.

본문 137쪽.



재판장, 검사와 변호사 모두가 한때 인간이었으며, 그때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치며 아나톨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검사 베르트랑은 변호사 카롤린과 한때 부부 사이였다. 이 둘이 티격태격하느라 지금 재판 중인지 부부 싸움 중인지 알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순간도 있다.



천국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하면서도 인간 세상에 대해 무지한 재판장. 로마인이었던 재판장 가브리엘은 텔레비전, 인터넷이나 비행기 같은 게 낯설다고 털어놓는다. 지난 생에 학교 교사였던 검사는 요즘 애들은 노력 없이 학업성취도 시험을 통과한다며 프랑스 교육 제도에 불만을 표한다.



천국의 심판이지만 그 심판을 내리는 자들은 인간다움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어딘가 미완성되고 엉뚱하고 어설픈 것이다. 희곡의 무대가 되는 '천국'또한 완벽한 곳이 아니었고 인간 세상과 많이 닮아있다. 천국에서 보면 세상이 아주 작게 보일 것이다. 떠들썩한 심판 과정 속에 인간사가 축소되어 들어가 있다. 마치 스노볼 속 모형처럼.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결함 있는 등장인물이 주제의식을 전달하며 헛웃음도 자아낸다. 베르나르식 유머인 “타자적 시선을 통한 특유의 비틀기(218쪽)“가 아낌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피고인 아나톨 피숑을 삶의 형에 처합니다.

본문 156쪽.



검사가 지목한 아나톨의 가장 큰 죄는 바로 자기 자신을 배신한 죄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지 않은 죄. 안락함을 추구한 죄.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것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 하는 후회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좋은 부모, 자랑스러운 자식, 멋진 친구, 호감 가는 동료, 사랑스러운 배우자가 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결국 완벽하긴커녕 좋은 사람도 되기 어렵다는 현실에 부딪히기도 한다.




지상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인간이 된다는, 결국 무지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동안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음 생에서도 또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예요.


괜찮아요, 지금부터 당신의 내생을 위한 이상적인 여정을 우리가 함께 고를 거니까요.

본문 162쪽.



과연 아나톨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새 삶을 얻게 될까? 무지한 채로 새 삶을 살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라며 삶의 형을 거부하는 아나톨.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디 쉬운가(92쪽)". 그러나 죽는 것만큼이나 사는 것도 두렵다. 그런 그를 변호사는 어떻게 설득할까? 뒤 내용이 궁금하다면 <심판>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극장 문은 24시간 열려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어 에드워드 - 살아남은 아이, 유일한 생존자이자 신이라 불린 소년에게
앤 나폴리타노 지음, 공경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 소년이 비행기에 앉아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는 채로.

본문 434쪽.




비행기 추락 사고 후에 열두 살 에디의 삶은 정지한다. 이제 에드워드라고 불리는 소년은 비행기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 미국 전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심을 받는다. 이후 묘사된 6년은, 에드워드가 에디로서 맞은 결말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소설 속 시간은 사고 전과 후를 왔다 갔다 한다.

에드워드의 시간은 짧게는 월 단위, 길게는 년 단위로 휙휙 지나가는 반면,

LA 행 2977편 항공기의 시간은 분 단위로 천천히, 예정된 추락으로 날아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생존자인 에드워드다. 하지만 작가는 비행기 탑승객들 중 몇몇 '유명한' 승객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 승객들의 머릿속을 들락날락하며 이들의 과거와 LA를 배경으로 그린 미래를 보여준다. 이들은 자기가 LA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래, 슬프긴하지만 나는 작가가 '거기 꼼작 말고 이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지금 에드워드의 상태는 어떤가’였는데.




기자회견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때, 희생자 유가족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였다. 캄캄한 방에 유일한 창문처럼 모두의 마음이 거기로 향한다. ‘아이의 상태는 어떤가?’

본문 36쪽.



에드워드가 신세를 지게 된 이모와 이모부 이야기, 에드워드가 재활 치료를 받으며 옆집 소녀 쉐이와 사이가 돈독해지는 장면을 읽으며 몰입할라치면 소설의 시점은 다시 비행기 안으로 돌아간다. 이게 반복되니까 짜증스럽기만 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개 방식을 막 쓰면 이야기의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편집부가 트롤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앤 나폴리타노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아니다.




아무것도 진열대에 담기지 않는다. 그다음은 시리얼들이 진열된 긴 선반이었다. 에드워드는 생각한다. 우유만 붓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음색의 형태가 변한다는 생각을 참기 힘들다. 흐물흐물한 걸 견디기 어렵고, 거품이 생기는 것은 다 싫다. 수프, 스튜, 스무디, 청량음료가 거기 속한다. 아이스크림은 녹고, 그것마저도 마음이 불편하다. 가장 단조로운 색깔의 시리얼 상자를 고른다.

“이거면 되겠어요?”

이모에게 묻는다.

본문 89쪽.


“어쩌면 넌 특별한 능력을 가졌어. 그런 사고에서 살아난 걸 보면 틀림없이 넌 마법사일 거야.”

“아냐.”

에드워드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본문 108쪽.






편집이 좀 아쉽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때로 불합리한 짐을 짊어지려고 한다. 남들이 짐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에드워드는 2977편 항공기에 타고 있던 191명 전체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비행기에서 죽은 191명. 그들의 얼굴이 사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그들은 에드워드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왜 너는 생존했고, 난 아니었을까?’

본문 312쪽.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왜 너는 살았고, 난 아닐까?’ 에드워드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온 수천 통의 편지를 읽으며 새로운 질문을 발견한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형 조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형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이거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에디가 아닌 에드워드로 사는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체리》는 성장소설의 맞은편에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은 없다.

그저 하염없이 떨어진다.






2013년 5월.

온라인 뉴스 플랫폼 버즈피드Buzzfeed에 니콜라스 워커라는 남성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한때 이라크에서 250번의 작전을 수행한 참전용사가 연쇄은행강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밀도 있는 글이었다. 기사를 읽은 출판사 관계자가 워커에게 연락을 했고, 수차례의 설득 끝에 그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전적 소설 《체리》가 감옥에서 완성되었다. 



《체리》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스무 살. 충동적으로 입대해 이라크 전쟁에 의료 특기병으로 참전한 주인공 ‘나’는 1년 후 PTSD를 얻어 미국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라크 파병 전에 이미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확산에 노출되어 있었다. 귀국 후 적절한 정신과 진단도, 치료도 받지 못한 ‘나’는 헤로인에 손을 대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 마약을 구하기 위해 수차례 은행을 털며 마약중독자로 생을 이어간다.



※오피오이드 확산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Opioid)는 미국에서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합법적 마약이다. 과다 복용하면 사망할 수 있지만 처방 당시에 소비자에게 위험성 통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헤로인 중독자의 80%는 오피오이드를 통해 마약과 처음 접촉했다. 1999~2017년 사이에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7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got cherry popped'는 동정을 잃었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스무 살 ‘나‘가 이라크에서 보고, 듣고, 한 일들 전부가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헤로인 중독과 트라우마를 얻었다. 어떻게든 평범한 대학생의 삶의 궤도로 돌아가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 절제된 문장 곳곳에 드러난다. 소설 속 ‘나’/니코 워커가 겪어낸 것 중에 내가 진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던 감정은 그 무력감이었다. 그 외의 것들에 대해 나는 희미하게 느낄 수 있을 뿐, 철저하게 외부인이다. 이 책을 선택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도로로 돌아가자 뒤집힌 차량의 불길이 어느 정도 진압된 상태였다. 견인차가 도로에 난 구멍에 박힌 차량을 빼내려 했고, 여러 사람이 트럭 안에 있는 시신을 보기 위해 여전히 길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상사 하나가 견인차를 안내하면서 소리쳤다. "모두 길에서 비키지 못해.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줄 알아?"


설리번과 나도 길 위에 있었다. 헤이워드의 트럭으로 걸어가는데 설리번이 말했다. "시체 봤어? 허옇게 뼈가 다 보이더라."


작전 기지로 돌아오자 모두가 수송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죽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슈에게 가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슈는 내가 예민하게 군다며 비웃었다. 그는 내가 방금 첫 경험을 한 거라고 말했다.

본문 144쪽.




이미 일어난 일, 터진 일, 당한 일, 했던 일을 ‘과거’라고 부른다.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일 테다.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니코 워커 같은 이들에게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인 진실'이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작가는 국가나 단체가 아닌 개인의 경험을 내세운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나’는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독자에 따라 이 책이 다루는 주제와 꾸밈없고 가차없는 문장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걸 넘어선다면 단숨에 읽히는 몰입도 높은 작품이다. 내 경우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읽어내려갔고, 작가의 감사의 말을 읽고 나서야 몰입에서 깨어났다. 폭력, 죽음, 금단증상, 섹스, 술, 마약을 말할 때 쓴 언어와 태도가 내겐 생소하거나 모욕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내겐 '익숙해진' 것들이다. 《체리》 속 문장을 좀처럼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니코 워커가 작품 활동을 계속할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고양이 카페 - 손님은 고양이입니다
다카하시 유타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고양이는 사람이 될 수 있다옹.

둔갑 못 하는 고양이가 훨씬 적다냥.”

놀라운 고백이었다.


“고양이가 둔갑하는 건 보통이야옹.”

그런 건가.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그런 건 정말 몰랐다.

옛날이야기나 동화, 애니메이션, 만화에서는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그것은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믿음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옹.”

본문 87쪽.



가와고에(川越)는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열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도시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작은 에도‘라고 불린다.


이곳에 사람으로 둔갑하는 고양이들이 산다.

그들은 사람처럼 옷을 입고 말을 하지만 독특한 성격과 말투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같이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사람으로 둔갑한 고양이의 피부에 사람의 피부가 닿아서는 안 된다.

이 금기를 어기면 그들은 도로 고양이가 되어버린다.






27살 마시타 구루미는 계약직으로 일하던 출판사에서 정리해고당한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혼자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6개월이 지나버린다. 스마트폰은 정지당하고, 집세 독촉도 점점 심해진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 초 어느 비 오는 날, 히카와 신사로 산책을 나온 구루미는 강물에 빠진 택배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검은 고양이를 구해준다.



히카와 신사의 ‘인연의 신’이 취직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준 것일까. 그 검은 고양이와의 만남은 카페 <커피 구로키>로 이어진다. 구루미가 구해준 검은 고양이가 점장인 그곳은 구루미에게 당장 필요한 일자리 그 이상의 '보금자리'가 된다.





“나 만지지 말라고 했잖냐옹!!”

“그쪽이 내 손등을 쳤잖아.”

“비켜라냥!!”

어이가 없다. 

포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구루미의 이마를 볼록한 발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닿아서는 안 된다고 했잖냥. 학습을 해야 한다옹!!”

소리에 비해서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구루미는 생각했다.

마치 자그마한 고무 공으로 치는 것 같은 감촉이다.

이런 걸 고양이 냥냥 펀치라고 하는 걸까.

본문 131쪽.



작품의 장르는 가볍고 밝은 분위기의 일상 코미디다. 약간의 미스터리도 섞여 있다. 말은 통하지만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행동을 하는 고양이와 그런 고양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한 인간 구루미. 겉은 인간, 속은 고양이들이 엉뚱하고 당황스러운 행동을 하는 웃음 포인트가 다수 등장한다.



구루미는 착해서 손해 보는 성격 때문에 검은 고양이를 구하긴 했지만 딱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고양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쓸모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능력으로 사람과 고양이를 도와주며 세상의 이면을 보게 된다.



카페도 인생도 지금부터 시작이다.

본문 317쪽.



한쪽은 사람 말, 한쪽은 ‘옹’ ‘냥‘거리면서 요란한 일상이 흘러간다. 그것이 구루미가 맞이하게 된 새로운 삶의 모습이다. 지금은 개성 강한 고양이 세 마리에게 휘둘려 화내고, 놀라고, 소리 지르느라 바쁘지만... (쓴웃음)



책 속 문장은 가독성이 뛰어나지만 표현력 면에서 다소 심심했다. 특히 ‘왕자님’과 ‘꽃미남’이라는 단어는 본문에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온다.



이 책은 검은 고양이 왕자의 찻집(黒猫王子の喫茶店) 시리즈 중 한 권이다. 5권까지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멈춰버리기엔 너무 아쉽다. 구루미 말마따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말이다.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검은 고양이 포의 과거도 궁금하고, 카페를 찾아올 다른 고양이들을 만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말의 밥상
박중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농장주가 계사 안을 살펴보더니, 살이 잘 안 붙고 연약해 보이는 약병아리들을 잡아내 시멘트 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이었다.


주인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놈들은 사료 효율이 떨어져서 도움이 안 돼요. 계속 키우면 비용만 축나고 고기는 안 나와 나만 힘들어진다니까요."


주인은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것들 모아놓으면 도사견 업자가 와서 가져가요. 푹 끓여서 개한테 주면 개가 맛있게 먹고 살이 푹푹 찐대요."


본문 63쪽.






박쥐.


과거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지만 건강과 정력을 위해 식도락가들이 찾는 희귀한 동물 중 하나다.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이 과정을 거쳐 생긴 코로나19는 중간 숙주 동물을 거쳐 인간과 접촉해 세계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는 가축화되지 않은 야생동물을 남획하는 것의 위험성을 시사한다.



이쯤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생산성, 안정성, 편의성을 기준으로 인간이 구축해온 식문화는 어떻게 변했는지. 그에 따라 동식물 생태계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인류 시작 이래 최고조에 달한 풍요로운 식탁의 이면에는 모순과 허허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농업과 산업동물 생산 현장의 비윤리적이고 무모한 사육 실태를 조명하고, 물량 및 외형 제일주의에 근거한 밥상이 불러오는 식탁 관련 전염성 및 비전염성 질환을 이야기함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19와 같은 무서운 전염병의 공습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질병 바이러스의 기세가 백신 개발로 꺾인다 해도 다른 변종들이 나와 지구촌에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사태가 그 지경으로 치닫기 전에 인류는 사고와 행동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본문 9쪽.



책에 언급된 생김새와 색깔과 맛이 구구각색인 옥수수, 키다리 보리, 외피가 투박했지만 과육이 연해 인기가 있었던 개구리참외나 사과처럼 동글동글한 사과참외는 이름을 나는 들어본 적도, 먹어 본 적도 없다.



대신 "며칠만 상온에 놔둬도 시들고 물에 씻으면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상추나, 과육이 옹골차지 못하고 솜뭉치처럼 푸석푸석한 딸기(본문 34쪽)"는 자주 먹어봐서 익숙하다. 그것들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잊히거나 사라지는 것들. 내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내가 생존을 위해 소비하는 것들이 다른 생명체가 대신 대가를 치르고 난 결과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아침에 먹는 곡물 시리얼, 점심에 먹는 달걀 프라이나 야식으로 먹는 매콤한 닭꼬치... 이것들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얽힌 경제와 연결되어 있다.





'종말의 밥상'을 '생명의 밥상'으로 바꿔야 할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본문 246쪽.




소비자의 편의와 생산자의 이득에 따라 인간은 인간의 질서를 만들었다. 씨앗 없는 과일, 무정란, 신맛과 쓴맛을 없애고 단맛만을 가진 과일들이 먹거리 시장에 등장했다. 수컷 돼지와 소는 거세되어 야생성을 잊고 얌전하게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그 대가로 우리가 치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조류/돼지 유래 인플루엔자, 심혈관계질환, 비만, 당뇨병, 파괴된 생태계와의 끝없는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된 거라면?



예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가기엔 너무나 멀리 왔다. 저자는 인간의 생존과 탐욕만을 위한 질서가 아닌, 생태학적 '공존'을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가 견고하게 구축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기존의 생산 · 가공 · 유통 및 소비 관행이 한순간에 바뀌진 않으며 한 사람의 힘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신자연주의 밥상은 '도시'에 '자연'을 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이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협중앙회나 전경련 같은 대표성 있는 기관이 사회운동 차원에서 '신자연주의 밥상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운동이 각계각층으로 확산해 큰 물결처럼 번지면 도시인의 건강이 증진되고 국가 보건비용이 크게 절감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본문 22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