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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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다 이렇게 잘 된다면 당신은 곧 앨리스 스프링스 같은 도시를 갖게 될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예요. 이 도시를 앨리스처럼 만드는 거요.”

2권, 250쪽.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은 생존과 개척 그리고 사랑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분량은 540여 쪽이며 총 2권으로 나눠져 출간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엔 일본군의 전쟁 포로로, 전후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새 삶의 터전을 개척하는 주인공 진 패짓의 파란만장한 삶을 단정한 문체와 충실한 묘사로 그려냈다.




"전쟁 때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많은 책을 썼어요. 그들은 수용소에 가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가 어땠는지 짐작도 못 할 거예요."

1권, 105쪽.




질병과 모기, 식량부족과 싸워가며 당장 잠잘 곳도 걱정이었던 말레이의 전쟁 포로들은 마을 사람들과 감시병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싱가포르에 있는 수용소를 향해 행군을 계속했다.



행군 시작 5개월, 거의 800킬로를 걸었을 때쯤, 진은 조 하먼이라는 호주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일본 군대를 위해 트럭을 운전했는데, 호주에선 목동이었다. 조는 여자들을 위해 비누, 약품과 식량을 구해다 주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는다. 조의 죽음은 진의 가슴에 전쟁이 남긴 또 다른 상처로 남았다. 일본 감시병이 열병으로 죽은 후 진과 남은 포로들은 쿠엘라텔랑 마을에 정착하여 3년을 살았다.




"촌장님은 마을 대표로 저와 함께 가셔서 우리가 계속 논에서 일하도록 허락해 주면, 일본군을 위해 더 많을 쌀을 재배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이게 제가 원하는 거예요."

"난 백인 여자들이 논에서 일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우리처럼 강제로 걷다가 죽은 백인 여자들 얘기는 들어보셨나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1권, 178쪽.




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온 진은 어머니와 오빠의 부고를 들었다. "자유는 되찾았지만, 세상에 완전히 혼자 남겨진(p.188)" 그녀는 몇 년 후 자신이 외삼촌 더글러스의 5만 3000파운드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생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진은 가장 먼저 쿠엘라텔랑 마을에 우물을 짓겠다고 결심한다. 바로 그 대목이었다. 내가 진 패짓을 사랑하게 된 순간이.



마을에 우물과 공동 세탁장이 생기고, 진은 죽은 줄만 알았던 호주 남자 조 하먼이 살아있다는 희소식을 듣게 된다.



여기까지가 1권의 간략한 줄거리인데, 이후 진의 여정을 세세한 부분까지 나열할 필요를 못 느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직접 만났을 때를 대비해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 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위험천만한 유적을 탐험하진 않으나, 소설은 마치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처럼 흥미진진하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넘어서기 위해 진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붓는다. 그녀 특유의 신중함, 친화력 그리고 행동력은 주변 사람들의 신뢰와 도움을 끌어온다. 진과 조의 관계는 존중과 신뢰를 토대로 이뤄져 견고하다.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모습은 찬란하게 빛이 난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때 수마트라 전역을 돌아다녔던 여성 포로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작가 네빌 슈트는 생존자를 직접 만나 함께 지냈다. 그렇게 전쟁 속에 폐허가 되어버린 꿈과 고향, 가족의 상실을 딛고 일어섰고, 끝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새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사람들과 그 중심에 있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진 패짓.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명시하는 바, 폐허가 된 마을을 살기 좋은 도시 앨리스 스프링처럼 가꾼다는 것,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느낀 벅찬 감동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말레이에서 사람들이 말라리아와 이질에 걸려 죽어가고, 열병으로 빗속에서 덜덜 떨고 있을 때 옷도 없고 식량도 없고 갈 곳도 없었어요. 아무도 우리를 원치 않았거든요. 그때 저는 무엇보다 사우샘프턴의 아이스링크를 떠올리곤 했어요. 그건 전에 살았던 삶의 상징 같은 거였어요.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런 거요.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사우샘프턴으로 돌아갔어요. (…) 그런데 그곳이 폭격당했더군요."

1권, 60쪽.



도시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일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여기 앉아 런던의 자욱한 안개를 내다보며 이따금 진이 이룩한 일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이루었는지 깨달은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2권,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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