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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나는 미안해하며 눈을 떴다.
소설 《유원》의 첫 문장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담백한 문장이라 마음에 든다.(♥)
12년 전 일어난 아파트 화재 사고.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살아남았으며, 한 명은 불구가 되었다.
한 명은 매일 미안해하며 잠에서 깨며, 한 명은 유성펜 같은 기억이 되어 살아있으며,
한 명은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만약 각자의 사연이 딱 거기서 끝이라면 이 이야기는 결이 다른 동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고로 인생이 뒤바뀐 것은 그 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부모, 배우자와 자녀들 또한 영향을 받았다. 12년 전 사건이 남기고 간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소설은 재를 뒤집어쓴 폐허 같은 가슴속을 조명하며 시작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유원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녀의 이야기는 이슈가 되어 학교의 누구나가 유원의 과거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해맑게 웃고 있는 신문 기사 속 6살 아이에게 앞으로 베풀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기원했다. 유원의 생존은 다른 누군가의 단명을 의미한다. 바로 이 사실이 유원에게 미친 부정적 영향을 많은 이가 간과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읽었다기보다 '피부로 느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인 것 같다. 소독약을 바른 후 아픔이 스며들며 아련하게 찾아오는 얼얼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내용을 읽어보면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데도 내가 그렇게 느꼈던 건, 죄책감, 유감, 분노, 연민, 단절, 호기심, 이기심, 너그러움 같은 모순된 감정들이 뒤섞여 공존하는 십 대 소녀의 감정과 생각에 동조를 했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옥상, 높은 곳에 대한 상징성이 마지막 장면에서 확 펼쳐지면서 "어딘가의 바깥에서 드디어 안으로 들어온 느낌(본문 223쪽)"이 들었다. 뭐라고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이 그 순간 유원의 내면을 흔들며 맴돌았을 텐데 차분히, 나란히, 그러면서도 벅차게 늘어선 문장 덕분에 카타르시스가 배가 되었다. 올해 읽었던 소설 속 잊지 못할 마지막 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본문 221쪽.
나는 어떤 사고 후에 주인공이 치유되는 과정이라는 것만 아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읽었다. 덕분에 사전 정보 없이 유원이라는 아이의 인생의 장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른 독자분들도 그렇게 만나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유원이 높은 곳을 꺼리는 이유, 사고가 남기고 간 정신·육체적 후유증, 상처의 치유 과정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내 이름의 뜻이 뭔지 알아?"
"뭔데?"
"원하다 할 때 원이야. 원하다, 희망하다, 그런 뜻이야. 원(願)."
"그래서?"
"언니가 나를 원했대. 엄청 기다렸대.
그래서 원이라고 지은 거래."
본문 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