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제인 오스틴 지음, 앨리스 패툴로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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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당한 재산을 지닌 독신 남자에게 반드시 아내가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그런 독신 남자는 딸을 둔 부모에겐 "마땅히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겨졌다(본문 7쪽)." 바로 그런 독신남이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통칭 리지 베넷)이 사는 하트퍼드셔 지방의 네더필드로 이사를 온다. 잘생기고 쾌활한 남자 찰스 빙리. 그는 무도회에서 리지 베넷의 언니 제인과 춤을 두 번이나 춘다. 제인은 베넷 가의 다섯 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남들의 좋은 점만을 보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언니에 비해 현실적인 성격의 리지 베넷은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한 남자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엘리자베스에게 첫 만남부터 최악의 인상을 심어준 찰스 빙리의 절친 피츠윌리엄 다아시다. 다아시 씨가 보기엔 리지 베넷은 외모도 성품도 별로였다. 그런데도 그는 리지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리게 된다.



<오만과 편견>은 18세기 영국 중산층들의 삶을 조명하여 당대 젊은이에게 연애와 결혼이란 무엇인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칼과 방패를 들고 켄타우로스에 맞서 싸우는 반신반인 영웅의 이야기와 비교하면 이 소설의 갈등은 다소 심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과 그녀의 가족들은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딸 부자인 베넷 가의 관심은 온통 결혼에 쏠려있다. 소설의 갈등과 전개도 '결혼이 성사될 것인가 아닌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소설에는 여러 형태의 결혼이 나온다. 좋은 집안의 상대와 결혼을 하는 것이 여성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업적 중 하나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이렇게나 젊은 남성의 재산을 따지고 젊은 여성의 미모와 집안을 따지는 게 이해가 간다. 한정 상속(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토지와 집 등 재산을 남자에게 한정시켜 상속하도록 한 영국의 제도), 재산 분배 같은 결혼 후에 생기는 법적 문제들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남자나 결혼 생활 자체에 큰 환상이 없었던 그녀의 목표는 예전부터 결혼이었다.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재산은 많지 않은 젊은 여자에게 결혼은 유일하게 명예로운 생계 수단이었고, 행복을 가져다줄 확신은 없더라도 궁핍을 예방하는 최선의 대책인 건 틀림없었다. 168쪽. 


"키티와 리디아가 오히려 저보다 그의 변심에 더 상심하고 있어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들이라 잘생긴 젊은 남자도 평범하게 생긴 남자만큼이나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그 안타까운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200쪽. 






특히 이 시대 사람들의 결혼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다아시 씨가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당신의 집안 수준을 고려했을 때 내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지금 청혼을 하는 것은 내 가문에 미칠 불명예를 감수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당신은 이 사실만으로도 기꺼이 내게 감사해야 한다'라는 뉘앙스의 말이다. "그는 애정보다 자존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히려 더 열변을 토했다. 자신에 비해 낮은 그녀의 신분, 그로 인해 자신이 받을 타격, 마음을 정하기까지 늘 걸림돌이 되어 왔던 그녀의 집안 등에 대해 흥분해서 늘어놓았다. 그가 감수해야 할 손해 때문이겠지만, 정작 청혼에는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255쪽)."


엘리자베스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동생들의 경망스러운 행동 때문에 자신과 언니 제인의 혼사가 취소되었다는 것을 안 후부터는 남들, 특히 다아시 씨가 자기 가족을 어떻게 평가할지 전전긍긍한다. 동생이 다아시 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위컴 씨와 결혼하는 게 결정되었을 때에는 이제 다아시 씨가 자신에게 재청혼을 하지 않을게 분명하다며 낙담한다. 그토록 경멸하는 위컴 씨와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것을 꺼리는 마음이 자신을 향한 사랑보다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만과 편견>에는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중요시하는 중상류층 가문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 오만함 때문에 그들은 어떤 인물을 평가할 때 남들의 평판에 휘둘리기 쉽다. 자신의 체면과 가문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부당한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인물의 성격을 꿰뚫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비해, 사소한 눈짓이나 말에도 오해와 편견은 쉽게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행복하고 현명하고 너무나 당연한(450쪽)" 시작을 함께 맞이할 상대를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소설 속 결혼관과 현대의 결혼관은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많겠지만 그것 하나만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결혼은 안중에도 없고 사랑을 믿지 않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결혼과 사랑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제인 오스틴의 역량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언니 제인의 결혼 지지자, 동생 리디아와 절친 루카스 양의 결혼 반대자, 자신의 부모의 결혼 관찰자 그리고 다아시 씨 사이의 결혼 당사자다. 그녀의 인생에서 결혼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이것은 당대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제인 오스틴은 리지의 입을 빌려 "본분이나 명예, 감사 같은 것들은 어떤 호소력도 발휘할 수 없는(464쪽)" 애정이 있는 결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신분, 본분, 명예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이루어지는 사랑은 당시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에게 큰 행복과 만족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로맨스 장르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만 들었고 실제로 읽어 본 적은 없었던 <오만과 편견>을 지학사아르볼에서 나온 풀컬러 일러스트 버전으로 만나보았다. 504쪽에 달하는 묵직한 양장본이며 따뜻한 색을 사용한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특징이다. 이 책은 작품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삽화를 담당한 Classics Reimagined 시리즈 중 하나이다. 프랑켄슈타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그림 형제 동화, 셜록 홈스 등 시리즈의 나머지 책들도 전부 다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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