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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2020. 050. 5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소설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내 친구는 자주 도쿄타워에 올라 야경을 봤다.
바, 아파트, 사무실, 단독주택, 호텔...
불이 켜진 여러 건물을 보며 저기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5년 전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도 도쿄 타워가 보이는 곳에 사는 누군가는
이 책의 주인공과 비슷한 삶을 살고 사랑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쿄 타워》는 내게 동질과 이질의 경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준 소설이다. 소설 본문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다. 두세 번 정도 나왔다. 소설의 인물들은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해서 이렇게 행동한다.' 혹은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사랑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는다. 작가는 말로 정의 내리기 전에 두 청년이 느끼는 감정을 보여 준다.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사랑이 뭔지, 어떤 게 사랑 다운 건지에 대해서 주장을 펼칠 생각은 전혀 없다. 독자인 내가 그들의 삶에 끼어들어 버린 것 같아 숨을 죽이고 읽게 되는 책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20대 청년 토오루와 코우지는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랑을 한다. 토오루는 고등학생 때 어머니의 직장 동료였던 시후미를 만나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의존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코우지는 유부녀인 키미코라는 여성과 열정적인 육체적 관계에 빠져있는데 그러는 한편 같은 또래의 유리라는 여성과도 사귀고 있다.
나는 불륜 관계에 대해선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애에 대해선 거부감을 느꼈다. (생식력있는 나이 어린 여성을 연상의 남성과 결혼시키는 관습이 생각나서다.) 주인공 토오루는 첫 인상이 괜찮았지만 코우지는 별로였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걸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던 내게 구조의 손길을 내밀어 준 건 토오루였다. 그는 시후미를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이야기하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소설의 세계관으로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시후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그렇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요리를 먹는다. 토오루는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이탈리아 요리로 가득 차 버린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까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순도의 문제였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다. 토오루의 온몸은 음악으로 가득 차고,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연주, 참 좋았어."
시후미가 말하고, 그 순간 토오루는 깨닫는다. 이것은 피아니스트의 힘이 아니라 시후미의 힘이다, 라고. 자신은 시후미가 하는 대로 흘러갈 뿐이라고.
본문 62 ~ 63쪽.

소설은 토오루와 코우지의 머릿속을 드나들며 세세한 감정과 생각까지 보여준다. 사랑의 상대역들(시후미와 키미코)의 감정과 생각은 독자에게 드러나지 않기에 그들은 상대적으로 베일에 싸여있다. 주인공들은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이런 언행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한다.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의 생각을 알 수가 없기에 두렵고 고통스러웠을 때가 생각났다.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이 바뀌고 두 커플의 관계에 찾아온 변화를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책을 덮을 즘에는 코우지 유리와 요시다 같은 주변 인물들에게도 애착이 생겼다. 엔딩을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 갑작스럽게 끝난 것 같아 놀랐고 아쉬웠다. 며칠간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끝이 났지만 토오루와 코우지의 인생은 끝이 나지 않았다. 이 커플의 미래를 상상해 보기도 하고, 내 과거 사랑의 기억들을 헤집어 보기도 했다.
소설의 읽으며 나는 크고 작은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머릿속에 '이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대항해 '사랑에 옳고 그름이 어디있지?'라고 반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토오루가 시후미를 만나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소설에선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토오루 말했듯이 '연상의 여성에게 눈길이 자꾸 간다고? 아, 그냥 취향의 문제인가 보다.' 했다. 코우지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태도가 밉상이었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던데...? 내가 코우지를 밉살스럽게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그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번역은 무난했지만 일본어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것 같은 대화문이 있어서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너한테는 정말 어이가 없다." p.306 / "정확히 30분. 도심에 사는 녀석은 좋구나." p.335 / "절대 오늘만이야." p.342)
이 책은 내가 북라인마크를 낭비하듯이 쓴 책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공감 가는 문장과 단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본문 122쪽.

독서 모임에 꼭 가져가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은 국내와 일본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인터넷 서점을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5살 이상 연상과의 연애,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의 사랑, 정식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에 대해 생생하게 표현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건 무엇인지, 내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돌아보게 된다. 다른 세대와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아주 다양한 의견이 오갈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두근거린다! 《도쿄 타워》는 연애 소설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독자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종류의 로맨스 소설만 접해서 그런지 정말 신선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 볼 생각이다.
소담출판사 꼼꼼평가단 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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