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0페이지 넘어가면 심히 몸을 배배 꼬는 성마른 독자인 나에게 500페이지 책은 큰 도전이었다. 그러나 자녀가 있는 모든 여성들, 즉 엄마라는 입장과 생후 6주 된 아기가 사라졌다는 설정, 그리고 여러 여성들이 저글링하고 있는 많은 상황들이 너무나 공감되어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갔다.

우리나라에도 엄마들의 수많은 인터넷 카페들이 있고 또 산후조리원 동기모임 등 서로 교류하는 많은 모임이 있는데 미국에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앞두고 또 출산을 경험한 엄마들이 서로 모여 교류하는 모임이 있나 보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 조절도 쉽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도 무거운데, 출산휴가 제도도 미흡한 상황에 처한 엄마들이 숨통을 트기 위해 하룻밤 클럽에서 즐겁게 모이고자 한다. 비밀에 휩싸인 아름다운 여성 위니도 마지못해 모임에 나오는데 그 사이에 위니의 아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온통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버리는 엄마들의 일상이 속도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미스터리적인 면에 있어서도 나쁘진 않았다. 범인의 내레이션을 중간 중간 삽입하는 서술 트릭을 약간 이용하여 범인을 오해하게 만든다. 범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는 쾌감까지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스터리의 결말보다도 각 여성들이 처한 상황들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범인이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고독과 배신, 실망과 망상에도 안타까움이 깊이 느껴졌고, 그 외 다들 유복하고 행복하게만 보였던 그들 각자가 과거의 상처, 실패, 현재의 경제적, 관계의 고민들을 떠안고 저글링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그녀들이, ‘엄마’인 그들이 ‘감히’ 아기들을 두고 클럽에서 ‘보통 여자’들처럼 떠들썩하게 있었다는 것이 미디어에 밝혀지며 그들을 향해 싸늘한 사회의 시선이 부어진다. 이게 더 큰 공포인 것 같다. 누구나 미성숙하고 취약하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족한 인간일 뿐인데 엄마가 된 순간, 성모 마리아라도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성 스스로, 또 사회의 무언의 압박이 가해진다. 특히, 첫 아이들 낳은 후가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처음 해 보는 일인데, 처음 가 보는 길인데, 완벽한 최고의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기보다 페미니즘을 다룬 소설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한 것 같다. 각자가 겪어온 과거의 상처들에는 남성, 위계에 의한 피해, 그리고 피해자임에도 비난받는 여성의 현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미숙하고 연약했던 자신으로부터 도망쳐 이제는 상처를 뒤로 하고 꿋꿋하게 살고 있는데 과거의 상처까지 원치 않게 노출되며 다시금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말 곁에서 토닥토닥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간이기에 이들은 서로의 상황을 질투하기도 하고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기도 한다.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지도 한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또 잃어버린 아기를 찾아야 한다는 강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연대한다. 이토록 부족하고 이토록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고 애틋해지는 그녀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갈 그녀들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괜시리 빌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이루는 〇〇〇” 이런 책들이 한참 유행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읽은 책이야말로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이루고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반 년 전쯤, 올해 초, 일어원서로 이 책을 가볍게 검토할 일이 있었다. 꼼꼼히 다 읽지는 않았고 전체적인 흐름과 몇 군데를 발췌해서 읽었는데, 맨 첫 장을 읽을 때부터 이 책에 반했다.

회계 책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출생 비화에서부터 시작하다니… 그리고 비틀즈는 자기 노래를 부르면서 저작권료를 마이클 잭슨에게 준다니… 이 책이 보통책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검토자와 편집자의 눈은 같은 법. 위즈덤하우스에서 너무나 멋진 표지와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세계사책에서 배웠던 역사적 사실, 유명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숫자는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회계가 상업과 문명 발전에 있어서 가장 유용한 ‘도구’로부터 시작하여 거시 경제의 흐름까지 지배하는 중추적인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다.

이 책은 회계의 역사를 크게 세 시대로 분류하고 있다. 15~17세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은행과 부기가 대두하고,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탄생한 초창기, 그리고 19~21세기, 산업혁명, 미국 신대륙으로의 이주 행렬, 미국에서의 거대 금융기관의 등장을 다루는 발전기, 그리고 같은 19~21세기의 다른 양상으로 산업의 표준화, 거대화, 분업화를 거쳐 기업가치와 투자 등을 아우르며 그 속에서 회계가 어떻게 진화, 발전해 왔는지 보여준다.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로 인정받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수학 선생으로 삼았던 루카 파치올리의 저서에서 ‘부기’라는 개념을 집대성하여 한참 지중해 무역에 힘을 쏟던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각광을 받았고 그때 ‘은행’도 처음 생겼다. 그리고 피렌체의 예술가들을 전적으로 후원했다고만 알고 있는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세계사 책에서 영국의 산업혁명의 시초가 된 증기기관차의 발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철도회사’의 존재가 회계에 있어서도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지 볼 수 있다. 연결재무제표, 감가상각 등의 개념들이 철도회사를 통해 발전되었다. 점점 자신들의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내부적 목표에서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주주 및 잠재적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적 목표까지 회계의 역할이 확장된다. 이 이야기들 속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렘브란트, 메디치 가문, 카네기, 록펠러, 루이 암스트롱,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까지 어린아이들조차 알 만한 유명인물들의 이야기들과 코카콜라, 포드, GE, 듀퐁 사 등 유명 기업들의 이야기까지 얽히고 설켜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누구에게나, 특히, 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회계적 마인드와 지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최적의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숫자놀음이 아니라, 무엇이 왜 생겼는지 필연적인 관계를 이해하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필독서로 강력히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게 행복을 주는 그림책
이루리 지음 / 북극곰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극곰 출판사의 대표이자 그림책 편집자 이루리 작가님의 그림책 서평집입니다. 4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56권을 지면에 담고 있어요. 순수한 웃음을 주는 그림책, 찡한 눈물을 머금은 그림책, 깜짝 선무을 안겨 주는 그림책, 아름다운 탄성을 부르는 그림책 이렇게 4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옥 같은 그림책들을 엄선하여 간단한 내용과 함께 작가님의 단상을 실어 주셨어요. 각각의 책을 소개해 주시는데 결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저는 스포일러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궁금해 죽겠는데, 딱 감질나는 부분까지만 소개해 주시고 그림책 독자들에게 다음은 맡기신답니다. 진짜 엄청 궁금해요. 서평집을 읽으며 인터넷 서점과 동네 도서관 웹사이트 들어가서 소장 여부를 확인하고 체크하면서 읽었답니다.



그림책 왜 읽으세요?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봤어요. 작가님께서 발신하시는 메시지를 잘 받았는지 모르겠네요.^^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보여주는 그림책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을 위해 돈을 쓰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사람을 위해 돈을 쓴다면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이 돈을 만든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지 돈을 축적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 그게 바로 행복입니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에게 더 잘하면 좋겠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그림책. 『이보다 멋진 선물은 없어』입니다. (47~48쪽)



돈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우정에 대하여, 의리에 대하여, 진심에 대하여 그림책은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직설적으로 직접적으로 교훈을 던져주지 않지요. 은근하게, 우리 마음에 슬쩍 스며들어 활짝 피어나는 꽃처럼 전달을 해 줍니다. 그림책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문외한이지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림, 음악, 문학 이 모든 예술분야가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미지와 서사 속에서 우리 마음에 부드러운 깨달음을 주지요.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들이밀지 않습니다. 고운 그림과 다정한 말을 통해 전해주지요.

행복을 주는 그림책

이분들에게 그림책은 입시 교육을 위한 예비 교육 또는 교양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분들이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어떤 그림책을 읽어야 우리 아이가 행복해지나요?'라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은 공부만 잘하면 아이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인이 자신들이 불행한 이유가 공부를 잘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50쪽)



뜨끔!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그림책을 읽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다른 엄마들 하듯이 유아 그림책 전집을 중고로 여러 질을 사서 많이 읽어주긴 했지요. 단지 에릭 칼 등 아동용 영어 그림책이 잘 나와 있기에 그런 것들을 사서 영어에 노출시켜줄 목적으로 읽어주고 반복했지요. 그나마 그림을 눈여겨 본 적도 없고요.



학습용 만화책은 엄청 많이도 사 주고 있습니다. 만화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그림과 스토리가 곁들여지면 자연스럽게 흡수가 될까 하고요. 실제로도 무척 효과가 좋습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듯 정말 "공부를 시키기 위한 그림책(만화책)"만 사 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공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공부를 잘하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랍니다. 단 '어떻게 '와 '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사람 생명을 살리고 싶어도 공부를 못 하면 의사가 될 수 없지요. 개인이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희열과 앎의 기쁨, 가능성의 확장이 아니라 작가님 말씀하시듯이 '사회의 효율'을 위한 공부, 입시 위주의 공부,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성적 지상주의가 문제인 것이겠죠. 저는 공부를 즐깁니다. 왜 하는지 모르면서도 입시용 공부도 나름대로 즐기면서 했었던 것 같습니다. 입시 만점자들의 클리셰 같은 인터뷰처럼 과외 한번 하지 않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그리고 단과반과 주말반 학원의 힘을 약간 빌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공부하는 기쁨을 알고 공부해서 남 주는 인성을 겸비한 아이들로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단, 그림책을 공부 잘하게 하려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평생의 반려로 삼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림책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보통 어른들은 글 없는 그림책을 두려워합니다. 혹시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누군가 물어볼까 봐 두렵습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그림책 앞에서 두려움에 떨게 된 것은 바로 우리가 받은 교육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개인의 행복운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의 효율을 위한 교육이었기 때문입니다. (272~273쪽)



이 부분을 읽으며 정곡을 콕 찔렸습니다. 글 없는 그림책을 보면 가슴 속에서 뭉게뭉게 갑갑함이 몰려 오고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에휴, 한숨이 나옵니다.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을지, 그림 속에서 놓치는 게 있는 것은 아닐지 등등 막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글이라는 길과 이정표가 없으니 망연할 뿐이지요. 작가님이 딱 지적한 부류의 사람인 거예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토록 사랑하는 '글'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었구나 싶습니다. 그림만 있는 그림책을 보며 어른이든 아이든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 보세요. 즐기면 되는 것이지, 작가의 의도, 작품의 주제라는 정답을 찾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림책을 통해 진정 자유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일수록 글 없는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56권의 그림책 중에는 외국 작가, 국내 작가의 그림책들이 고루 섞여 있습니다.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아름다운 그림책들이 있었습니다. 공광규 시인의 시에 주리 작가님의 그림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흰 눈>, 하얀 고양이와 강아지가 앙증맞은 하얀 벚꽃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그림이 인상적인 <팔랑팔랑>, 제목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하지만 그림체가 서정적인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 등등이 무척 끌립니다.



이루리 작가님은 직접적으로 교훈을 주는 그림책, 컴퓨터의 힘을 빌어 그린 느낌이 나는 그림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는데 저도 100% 동감입니다. 교훈을 주고 의견을 주도하고 선동하는 것은 그림책의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은은하게 혹은 허를 찌르고 발칙하게 독자의 마음에 무언가를 전달해 주는 것이 그림책이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 1년은 족히 읽을 그림책 데이타 베이스를 마련해 둔 것 같아서 배가 부릅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분들, 그림책에 문외한인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TV에서 저자님이 개그맨 이윤석 씨와 역사기행을 가는 것을 얼핏 본 기억이 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정말 역사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터라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쉽사리 손에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역사의 쓸모>라는 제목에서부터 이 책은 꼭 입문서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불 하나가 지펴졌다는 생각이 든다.



'쓸모'에 대한 단상

'쓸모'라는 어휘를 써야 하나 고민하셨다고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무척 적절하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아무리 고매한 사상이나 복잡다단한 과학이론이라한들, 그것을 추구하고 이해하고 적용하여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나와 타인에게 유익이 되는 무엇인가를 재창조해내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존재의미가 있는가? 실용주의가 어딘가 경박해 보인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그것이 의미가 되듯이, 역사든 철학이든 그것이 우리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쓸모는 무척 깊고 심오한 것이며 삶 전체를 바꿔놓을 혁명적인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육사와 이순신)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오히려'입니다. 이육사는 일제강점기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어나지 않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순신은 누구나 싸움을 포기했을 상황에서 '오히려' 해볼 만하다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10쪽)



서문에서부터 이렇게 가슴이 찡해도 되는 것일까? 지금 21세기는 신체적인, 직접적인 위협은 느낄 수 없는 시기인지 몰라도 정신성의 위기 시대가 아닌가 싶다. 이육사와 이순신이 겪었던 시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사나워지고 절망과 분노가 우리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버릴 것만 같은 험악한 시대같다. 우리 민족의 키워드가 한(恨)이라고 배웠는데 그 말도 싫었지만 지금은 그 한이 무한 분노와 폭력성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두려운 마음도 든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런 때이기에 역사를 공부하고 성찰과 반성을 통해, 그리고 공감을 통해 한민족의 품격을 높여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된다.



종으로, 횡으로 연대감을 가져야 할 이유

나는 일개 소시민인데 무슨 영향력이 있나 하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만큼 나의 선택은 타인1, 타인2....... 그들과 연결된 타인100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선택이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미칩니다. (65쪽)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젊음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사람들에게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앞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은 만큼 뒤이어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주고 싶어요. 그리하여 훗날 눈을 감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생으로 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26쪽)



나 하나의 작은 결정 혹은 선택 하나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지구 정반대의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모든 인류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 오늘의 내 결정 하나가 10년 후, 20년 후의 우리의 삶, 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이것은 종적인 연결이다.



횡으로 모두와 연결되어 있고 종으로 과거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니 비록 개미만큼이나 작은 존재인 나지만 오늘을 허투루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평가와 심판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내 자식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어려서 모를지라도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여러 가지 국면에 접하면서 우리 부모는 어떠했는가, 엄마는, 아빠는 왜 그런 판단을 했고 선택을 했는가를 묻게 될 것이다.



멘토는 역사 속에서 찾는 걸로



정약용은 18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18년을 보낸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때로는 비참하고 암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폐족이 되었음을 한탄하거나 힘든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앗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그의 여생은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나 어쩌면 삶의 마지막 투쟁이었을 겁니다. 역사를 알았기에 고난을 버티며 투쟁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78쪽)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였나 소설 목민심서라는 여러 권짜리 책(지금 검색해 보니 초판이 1992년 작가는 황인경)이 집에 있길래 우연히 책장을 넘겨보다가 시리즈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정약용은 대표적인 실학자로 특히나 이미지가 좋은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이었는데 이런 인생의 굴곡이 있었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독설을 퍼붓고 아니면 자기 팔자 탓을 하며 그저 범인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었는데 자신이 할 일을 찾고 천부적 소질이었던 듯한 학구적 성격을 이용하여 연구하고 집대성하여 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에게 명하지 않았는데, 스스로가 명하고 스스로가 따랐다. 아, 정말 내가 따르고 싶은 멘토이다.



저자님도 이 시대의 유행어처럼 '멘토'라는 말이 청년, 장년 할 것 없이 흔히 쓰이고 있고 현존하는 인물 중에서 멘토를 찾는 것의 위험성을 말씀하고 계셨는데, 나 역시 평소의 지론이 저자님과 같았다. (이 와중에 정작 저자님은 역사계의 큰 별, 멘토시고... ㅋㅋㅋ) 나 자신이 워낙 경계심이 많고 아무도 믿지도 따르지도 않고 검증, 또 검증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딱히 누구를 멘토로 삼아야겠다 싶은 사람은 없었다. 인간에게는 양면성 아니 다면성이 있어서 어느 부분에서는 존경받을 만하지만 또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멘토를 찾을 필요 없이 필요한 분야에서 따르면 되기에 뭐 그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멘토를 찾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멘토를 찾는 세상이라는 것은 그만큼 스승, 어른이 없는 세상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역사 속에서 나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인간 자체에 사실 그렇게 기대를 걸기보다는 나는 개인적으로 다면성과 복합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아이에게도 흑과 백의 논리가 아니라, 어떤 배경에서 어떤 결론이 나온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는 편이다. 가령, 낙태 이슈, 일본과의 관계 등등 아이가 아직 어려서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흑백으로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아이랑 같이 읽자

아이들이 중학생 정도가 되면 충분히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일독을 했고 군데군데 찾아서 몇 번 더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심층적으로 공부를 해 보고 싶다. 고수들은 말도 쉽게 하고 글도 쉽게 쓴다. 투자 쪽 일을 하는 남편은 그쪽 분야 책을 많이 보는데 거장들의 책은 오히려 쉽다는 것이다. 이 책 정말 쉽다. 그러나 쉽다고 해서 얕지 않다.



아이와 함께 읽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중 한 권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이고 또 한 권이 이 책 <역사의 쓸모>이다. 무기라고 해야 할까, 난 도구라고 하고 싶다. 무기는 아무래도 공격의 요소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팩트는 있는 단어겠지만. 도구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해 내는 것이다. 이 책들은 한 번뿐인 인생을 값지게 살게 해 줄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크맨》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가의 신작인 데다가 스릴러의 제왕 스티븐 킹이 강력 추천했다니, 이 작가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 같아 차기작을 읽어 봤다.

잊어버리고 싶은 고향, 폐광촌 안힐로 돌아온 남자 조. 조는 안힐 아카데미의 교사로 돌아왔다. 그에겐 갚아야 할 빚이 있고, 그 빚을 갚을 궁여책으로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십대 때의 어두운 비밀을 파헤쳐 이용하려고 한다. 그가 사들인 집은 최근에 아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권총자살한 여교사가 살던 집이다. 이미 폐가와 다름없는 집이 자신에게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마을에는 그의 십대 시절의 음울한 기억을 공유하고, 또 그 기억이 파헤쳐져 온 천하에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 그의 클래스메이트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여전히 안힐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그 누구도 조의 귀환을 반기지 않는다. 그들은 거친 환영식을 여러 번 치른다. 그리고 묻어두었던 진실이 서서히 벗겨진다......

퇴락한 폐광촌이 주는 느낌만으로도 스산하고 음울한데, 그 폐광촌보다 더 어둡고 음험한 성격의 사람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채권자 글로리아, 결국은 비열한 채무자일 뿐인 주인공 조. 거기에 초자연적인 엑소시스트와 영원한 십대 문제인 잔학한 괴롭힘 문제 등 모든 것이 이 작품을 올 여름 최고의 납량특집으로 북돋워준다.

그 모든 것이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기억의 왜곡과 배신이 아닐까 싶다. 조는 자신의 기억이 틀렸다는 것을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지만 그의 기억은 틀렸었고, 배신을 깨닫는다.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마리와 알콜 중독자이지만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 수 있었던 브렌던에게...

죽은 사람이 악령으로 살아나 눈앞에 나타나고 쇠망치로 사람을 치고 변기 속에서 날아드는 수만 마리의 딱정벌레떼도 무섭지만 사실상 그건 대부분의 독자들의 삶과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악의... 사람의 영혼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의도라는 것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모든 악의로부터 절대적으로 안전했으면 하는, 안전해야 하는 가정이 그렇게 무참히 부숴지면 우리의 영혼이 쉴 곳이 없다. 그래서 이런 공포물이 진정한 공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영화화되면 크게 히트를 칠 것 같다. 활자를 통해 독자의 머릿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도 좋지만 시각적인 이미지가 무척 큰 작품인 데다가 러닝타임 전체를 흐를 그 음산한 분위기 자체가 한여름의 더위를 싹 씻어줄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품의 파격성와 완성도 뿐만 아니라 집필 속도도 무척 빨라서 차기작의 구상이 이미 끝났다고 하니 정말 스릴러계의 거물이 탄생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이 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