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 -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종활 일기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일본의 각본가 하시다 스가코 씨가 안락사로 죽게 해 달라는 내용으로 쓴 에세이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오싱>의 작가이자 30년 이상 방송된 일본의 국민 드라마 <세상살이 원수천지>의 각본가이다. 1925년생이시니 우리 나이로 94세이시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주장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적 성격이 강하다. 안락사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된 경위를 거슬러올라가다 보니 자연히 그간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고 왜 안락사로 죽고 싶은지에 대한 소회가 담겨 있다.

우리에겐 일제시대, 일본으로서는 한참 군국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1925년에 태어나 10대 소녀시절을 제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보낸 경험이 이분의 삶을 크게 좌우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전쟁의 비애와 배고픔을 이겨냈건만 패전하자마자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는 지배자들을 보고 큰 회의를 품는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 씨와 같은 감정이다. 미우라 아야코 씨는 교단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었는데 패전이 되자마자 어제까지 맞다고 믿고 가르쳤던 것을 오늘부터는 틀리다고 가르쳐야 함에 좌절을 느끼고 교단을 떠난다.

비단 이 분들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피해국가이므로 일방적으로 일본이라는 한 덩어리 전체를 비난하지만 그 안의 개개인도 어쩌면 국가라는 권력의 피해자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전쟁의 기억이 저자의 정신세계의 기반을 형성한 것은 틀림없다.

남성중심적인 일본 사회에서 성공한 각본가로 살아왔고 더 이상 생에 미련은 없다고 하며 치매나 중풍 등 중병으로 자리보전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안락사로 죽고싶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존엄사(연명치료 거부)는 허용되어있지만 적극적인 의미가 강한 안락사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적제도와 실제로 안락사 여부를 판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주장한다.

병이나 부상을 치료해 목숨을 구하는 것은 의료인의 중대한 사명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살리는' 것만을 생각한다는 느낌이 든다. '행복하게' 혹은 '편히' 죽을 수 있게 하는 일 역시 의료인이 감당할 역할이 아닐까? (128쪽)

어려운 문제이다. 어떤 마음인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의료인의 역할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이 스치는데 죽음에 대한 결의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일정하고 일관적이고 주체적으로 확립된 것인지 그걸 누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행복의 빵>이라는 원제의 일본 소설이 생각난다. 동명의 영화(국내에서는 <해피해피 브레드>로 알려짐)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한겨울에 찾아온 세 번째 손님...
고베에 살며 목욕탕을 운영해 온 사카모토 부부.
50년간 인생을 함께 해 온 75세의 남편과 80세의 아내 아야...
켜켜이 그 긴 세월을 함께 쌓아오며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딸을 잃기도 하고
불에 타 버린 목욕탕을 다시 일으키기도 했다.
아내 아야는 페암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삶의 의욕을 잃고 한겨울 동반자살을 꾀하러 추억의 장소를 찾은 이 부부...
그러나, 평생 빵을 입에 대지 않던 아내 아야가
"내일도 이 빵을 먹고 싶다."며
내일도 살고 싶다는 삶에의 희망을 붙들자
다시 살아가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아내 아야가 죽은 후에도 목욕탕을 지키며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남편...

어제까지 몰랐지만 오늘 알게된 맛있는 빵 하나 때문에라도 살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므로 생일이 올 때마다 지나온 삶의 의미와 기쁨을 곱씹으면서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습관이란 말인가. (224쪽)

엔딩노트를 쓰라고 권한다. 이건 꼭 따라 하고 싶은 일이다. 매년 생일에 죽음에 대해 기록해놓으라는 것이다. 어떻게 죽고 싶은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지 등등... 친절하게 책 말미에 엔딩노트까지 실어주었다.

저자의 인생관에 동조하지 않지만 나와 주변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며 존엄사와 안락사 논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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