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여로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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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만 아래에 소개한다. (스포일러는 없음)



삶의 의미를 찾지 못 하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대생 리카코.

그녀는 유흥업소에서 만난 애인 도모나가의 제안으로

도쿄 근교의 으슥한 산중에서 동반자살을 결행한다.

그런데 과다복용한 수면제를 구토해내고 살아나게 되는데

살아난 그녀의 손에는 칼자루가 쥐어져 있고,

그녀의 곁에는 칼에 찔려 죽은 애인인 도모나가가 죽은 채 누워있다.



그녀는 자기가 함정에 빠졌으며,경찰이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고

자기의 결백을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필사적으로 여명이 밝기 전의 현장을 빠져나와 도쿄로 돌아온다.

그녀는 도모나가 아내 유키노를 살인 용의자로 의심하고

유키노의 반응을 보러 남장을 하고 도모나가의 집을 찾아간다.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하고 뒤돌아오던 골목길에서

리카코는 괴한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와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 도모나가의 집을 감시하던

다키이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다키이는 실종된 매형의 행방을 찾기 위해 유키노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매형의 이름 '이와타'는 리카코가 일하던 유흥업소에서 전화로 들어봤던 이름이고

리카코는 이와타를 살인 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렇게 리카코와 다키이는 함께 사건에 얽힌다.

리카코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다키이는 매형의 행방을 찾기 위해

이 둘은 긴 여로를 함께 나선다.



일본의 애거사 크리스티로 불리는 저자 나쓰키 시즈코의 1975년 작품이다.

40년도 더 전에 나온 작품이니만큼 읽다 보면 1970년대 느낌이 물씬 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게도, 방 안에서도, 택시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찻집에서도 종업원이 재떨이를 바꿔 주고 가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단서를 찾아 두 사람이 택시를 타고 추적하는데,

택시기사에게 어딘지 아는지 묻고, 택시기사는 잘 모르지만 가 보자고 한다.

생각해 보면 네비가 지금처럼 일반화되기 전에 늘상 나눴던 대화이다.

또, 지금은 통화하며 버튼 하나만 누르면 통화내용이 녹음되는데,

리카코와 다키이가 녹음기능이 있는 전화기가 있는

다키이의 사무실을 굳이 빌려서 전화를 거는 장면도 있다.

핸드폰이 없어서 여관의 전화, 경찰서 전화를 빌리며

전화 교환수가 몇 번이나 나온다.



전형적으로 whodunit를 좇는 미스터리인데

솔직히 시대적인 차이로 인해 감정이입이 되지 않은 것인지,

추리소설다운 숨 가쁜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해결을 향해 가는 과정은 꽤 재미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지리한 느낌이었다.



반전을 꾀한 것 같긴 하지만 반전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다.

스포일이 될까 봐 말은 못하겠지만 나중에 밝혀진 범인과 트릭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카코는 왜 처음부터 몰랐지? 어두워서? 에이 좀 그렇다.'



어쨌든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아무 죄도 없고 아무 관계도 없는 리카코를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이 사실 용서가 되지 않는다.

리카코가 다시 살아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하고 싶다.

70년대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화두를 던지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의 '성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정체성 문제'.

그것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미스터리가 풀리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은 성 소수자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권리 주장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70년대에는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전적인 아닐로그 느낌 물씬 나는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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