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이혼할 뻔
엔조 도.다나베 세이아 지음, 박제이.구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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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획이 신선하여 돋보이는 책이었다. 부부가 모두 전업이든, 파트타임이든 작가기에 가능한 기획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책을 권하고 상대방은 그 책을 읽고 웹진에 서평을 올리는 것을 번갈아 근 1년간 했던 연재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문제는 두 사람의 취향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나 같으면 못할 것 같다. 내 취향은 분명하고 생활 속에서 주어진 시간은 짧고 읽고싶은 책은 너무나 많은데 부부라지만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타인, 즉 남이 골라준 책을 읽고 있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를 잘 알고 내 취향을 아는 친밀한 누군가가 선정해 준 거라면 대환영이다.

이 부부처럼 우리 부부도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독서 취향이 다르다. 일단 남편은 책을 많이 안 읽는다. 나는 많이는 아니어도 최대한 읽으려고 하는 독서 애호가이다. 그나마 남편이 책을 읽을 때는 실용성에 근거한 독서를 한다. 즉, 자기 업무와 관련된 경제, 투자 관련 책 일색이다. 나는 철저히 행복해지기 위한 독서, 즉 즐기고 감상하고 감동하기 위한 독서를 한다. 남편이 골라준 책을 읽는다고 하면 ... 그건 재난이다. (그 반대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에서 좋았던 건 수 백권에 달하는 새로운 책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일어원서, 영어원서, 심지어 만화책까지 수많은 책들의 제목을 접하고 몇몇 관심 가는 책들은 메모를 해두었다. 일어원서 고를 때도 참고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국내 미번역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벽이 높은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작가인 두 사람답게 편안한 문체로 써내려간 글이지만 재기발랄하고 흐르는 물같이 자연스러운 글들이어서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책에 관한 서술보다는 오히려 두 사람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의견이 더 재미있었다. 너무 모르는 책들이 많아서 책에 대한 담론 자체는 '그런가 보다.'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받는 돈도 많지만 나가는 돈도 많다.
그것이 미국 이노베이션 도시의 생활이 아닐까?
미국에서는 사는 곳에 따라
계급의식도 다르고
평균 수명조차 크게 차이난다.
평균적인 삶의 차이가 그다지 없는
일본이 중류층에게는 오히려 편할지도 모르겠다.(91쪽)

괴담도 그렇지만 이야기와 글은
아무래도 다르다.
들을 때는 등골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라도
들은 그대로 글로 옮겨보면
전혀 무섭지 않은 경우가 있다.
체험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과
문장으로 쓰는 것.
둘 다 어렵고 각기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126쪽)

책을 읽으며 뇌리를 스치는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 독서 에세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옥신각신, 주거니받거니 말장난도 재미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부에 대한 애정은커녕 어떤 책을 쓴 누구인지조차 정보가 없는 독자로서는 독자에게 발신하는 글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웹진에 정기적으로 올리는 포스팅 같은 것이었으므로 매체의 특성상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컴퓨터 화면으로 매주 이런 글을 봤으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혼 안 하시고 잘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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