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인생 노트 - 매력적으로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109가지 조언
대그 세바스찬 아란더 지음, 김성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정말이지 상큼한 민트색 표지에 고급 다이어리를 연상케 하는 양장, 단정한 글씨와 둥근 안경, 빨간 나비 넥타이, 햇님 같은 미소를 짓고 계신 이 노신사분(저자)의 사진이 톤다운되어 띠지로 장식되어 있는 멋진 책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들과 그 제목에 맞는 토막토막 길지 않은 글들이 담겨 있어 읽기도 무척 쉬웠다. 그러나 저자가 평생에 걸쳐 배워온 교훈을 독자들에게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두고 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40대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다가오는 내용이 있고, 아마도 50대, 60대, 70대 연령대가 달라질수록 다가오는 내용들이 달라질 것 같다. 좋은 책이라 읽어보고 책꽂이에 꽂아두고 한번씩 읽기로 했다.

* 일기장이 있는 인생

옛날 일기장에 적힌 천진난만한 몇 마디 문장들 때문에 수많은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아난다는 생각을 해보라.

추억이란 한때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마지막 순간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추억이 없으면 시간 감각도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살아오면서 세운 기초들도 잃고 만다. (pg. 46~47)

사춘기 시절, 독서실에서 다이어리를 끼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때로는 여학생다운 정갈한 글씨로, 때로는 못내 부대끼는 마음으로 거친 글씨로 지면 위에 고함을 질러대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손바닥만한 작은 플래너에 그 날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촘촘하게 적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들이 무거운 추처럼 느껴졌다. 아마 20대다운 낭만과 허세가 섞인 허무와 염세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살았던 흔적 하나 없이 바람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 버렸다. 기억의 처분이랄까? 그리고 기록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후 기록이라 하면 회사에서 그 날 그 날 처리해야 할 업무를 번호 매겨 적어놓고 하나하나 지워나가고 주간 업무보고 작성할 때 참고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다시 기록을 시작한 것은 역시 아이를 낳고 나서이다.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아이의 한마디 말, 작은 몸짓 하나, 다음 단계의 성장으로 넘어가는 한 걸음, 표정 하나까지... 아이가 커 가면 예전 모습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현재 아이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 쉽지만 예전의 기록, 예전에 아이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추억들을 함께 쌓아 왔는지를 기억하면 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더욱 깊이 아이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생각했는지,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가 보이고 되돌이켜야할 부분이 눈에 띈다. 이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삶이면 좋겠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거기서 거긴 것 같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면 많은 것이 변해 있고, 어디가 그 변곡점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후회인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를 늘 모니터할 수 있고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징조가 보이면 잡아라

글을 쓰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은, 당신의 삶에서 운명 같은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 그 징조가 보이거든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pg. 69)

그렇다. 징조가 보일 때가 반드시 있다. 내 소박한 삶 속에서 극적인 징조랄 것은 없었지만 '계기', '기회'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우연히 발견한 인터넷 정보가, 아는 사람의 소개가 징조가 되어 준다. 앞으로 징조가 비칠 때 잡을 수 있도록 매일의 삶 속에서 담금질을 하듯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다.

* 재미가 없다면 책장을 덮어라

중역 자리를 걷어차도, 수업을 중도 포기해도, 광고 카피에 비해 형편없이 재미없는 책을 읽다가 덮어도 된다. 연극의 막간에 자리를 떠도 된다. 좋은 평판을 들으려고 하지 말라. 당신의 인생에서 결정을 내릴 사람은 오직 당신밖에 없다.

아이고, 참 고마운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참 보기와는 달리 변덕이 죽 쑤듯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보기엔 차분해 보인다고들 한다.) 저자의 글을 나 좋은 대로 해석한 건가? ㅋㅋㅋ 이거 하면 저게 하고 싶고, 저거 하면 이게 하고 싶고... 사실 학창시절은 거의 누구에게나 정해진 길이니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도 그 안의 체계가 있으니 그 체계와 기준을 따라 별 생각없이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떤 제도권에서 벗어나 보니 '자기주도권'이 없으면 그저 그렇게 흘러가 버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중도 포기하고, 책도 덮고, 다른 어떤 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인생으로 일구어가도록 내가 결정하는 것... 올해 초 마흔이 되며 내가 결정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아전인수격일지 모르지만 위로가 되는 내용이다. 마흔이 되면서 '뭐가 유망할까'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는 결심을 했다. 40년 가까이 살아보니 인생이 이렇게 짧고 어차피 회사도 그만뒀는데 좋아하는 거 한번 해 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일어 원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책을 좋아하고 원어 그대로의 의미가 전달되므로 원서를 종종 읽었다.

하지만 앞으로 주력하여 할 일은 수요 면에서나 전망 면에서 영어 관련된 일을 하려고 많이 신경을 썼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외대에서 테솔(TESOL) 단기 과정도 들었었다. 성향상 몰입하는 것을 좋아하고 뭘 하면 열심히 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밤잠 덜어내며 공부했다. 그리고 뭘 배우고 습득하는 것을 좋아해서 진심으로 즐기며 공부했다. 그 전데도 그 후에도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맡긴 적이 없는데 네 달간, 일주일에 세 번, 3시간씩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오로지 집중해서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달콤했다. 아이가 폐렴 걸려 입원하여 한 주를 통째로 빼먹고 병원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후 둘째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상대하여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기쁘지가 않았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어본 적 거의 없이 무난하게 지내왔지만 사실은 내가 무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사회화'라는 과정을 거쳤으므로 살아남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왔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싫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점점 드는 것이다.

마흔이 되며 기회가 닿으면 영어에 대해서도 일을 할 수 있겠지만 무리해서 애쓸 필요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어로 좋아하는 책을 마음 편하게 읽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더 삶에 활력도 생기고 즐거움도 생기고 블로그도 적극적으로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지금 하는 프리랜서 일은 영어 일이 90%이지만 사람을 대면하여 하는 일이 아니고 영어와 한글 문장을 대면하여 하는 일이기에 적성에 맞다. 일이 들어오면 즐겁게 하고 시간이 남으면(둘째 꼬마가 잘 때, 밤에 애들 재우다가 먼저 잠들지 않고 다행히 일어나서 밤에 여유시간을 가질 때) 책을 집중해서 읽고 서평도 쓴다.

저자분이 그렇게 나 하고 싶은 거 해도 된다고 컨펌해 준 기분이 들어 해방감도 들고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ㅋㅋ

06 가족도 조금씩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부모 역할은 잊어라 / 참견과 간섭은 금물 / 자녀들과의 새로운 교제 / 소소한 일들에 손을 내민다면 / 큰 문제는 모른 체하기 / 관계가 서먹해지기 전에 / 자녀들에게 잘하는 방법 / 침묵할 때는 침묵 / 부모의 뒷모습을 배운다 / 모든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 모든 것에 답할 필요도 없다 / 자녀들을 위한 시간과 공간 / 손주들과의 시간은 적당히

제6장의 내용은 깊이 깊이 새겨두고 싶어서 타이틀을 적어봤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품 안의 자식이라고 부모를 많이 필요로 하지만 언젠가는 빈 둥지로 남겨질 것이다. 지금 그토록 원하는 '나만의 시간'을 원치 않아도 무한정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아이들의 삶에 분노하고 내 수고를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자기연민에 빠지면서 아이들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진작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아이들을 혼내면서도 나를 미워하게 되면 어떡하나, 생각이 먼저 든다. 너무나 미성숙한 엄마이다.

아마 좋은 본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 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저 위의 항목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뭘 해도 어설프다며 모든 것을 본인이 해야 제대로라고 생각하시는 듯한 친정 엄마와 아들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시어머니.

나이 들어서 이렇게 아이가 어렸을 때와는 다른 형태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정신적으로 풍요하고 교감하는 부모자식 사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내 인생을 아이들에게 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을 충실히 하며 나의 일의 영역을 넓혀가며 평생 현역으로 살아가며 아이들에게 멘토로, 때로는 아이들이 나의 멘토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오늘도 미성숙하지만 엄마도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엄마도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언젠가는 알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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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짧은 토막글 같아서 휙휙 넘겨보다가 서서히 책장 넘기는 손길이 느려지고 다시 들여다보고 다시 읽어보고 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요즘 출판의 추세가 '에이징'인지 다각도에서 늙어가는 법을 조명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관심이 있다 보니 꽤 접하게 되는데 먼저 인생을 살아오신 멘토로부터의 살아있는 조언이 최고인 것 같다.

유전으로 인해 벌써부터 새치라고 하기엔 흰머리가 너무나 많아 서럽지만 나중에 늙어서 긴 생머리로 흰머리 휙휙 날리는 멋진 호호 할머니가 되어 나도 이렇게 살아있는 조언들 담은 작은 책 하나 자비 출판하는 것도 좋은 인생의 목표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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