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다운 죽음을 꿈꾼다 - 마지막 순간, 놓아 주는 용기
황성젠 지음, 허유영 옮김 / 유노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생명만은 살려야 한다'는 의학계 및 환자와 그들의 가족의 고정 관념에 도전한다. 환자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마지막 순간에 불필요한 연명치료로 인해 신체적 손상, 경제적 손실, 가족들의 상처가 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놓아주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DNR: Do Not Resuscitate)를 작성하는 것이다. 환자 본인의 의식이 뚜렷할 때는 직접 작성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가족이 작성할 수 있다.

"환자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존엄성을 지키며 편안히 생을 마감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144쪽)"

더 이상 장수가 미덕이 아닌 시대에 어떻게 죽을까?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건강수명을 최대한 늘리도록 건강하고 젊을 때 관리를 잘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조기발견, 조기치료를 하여 위험을 최소화하고, 혹여 불가항력적인 질병 혹은 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를 대비하여 DNR 작성여부를 미리 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날, 마침 우리나라에도 연명치료 결정법이 통과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준비된 죽음은 환자 본인의 존엄을 지키고 가족들에게는 경제적, 정서적 부담을 덜어주며 전사회적으로는 의료자원 효율적인 배분을 실현한다.

"하지만 뇌사 문제는 근본적으로 의료 자원의 분배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160쪽)"

사실 환자 혹은 환자가족의 입장에 살 가능성이 100퍼센트로, 의료진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이런 말은 듣기가 거북한 말이다. 의료자원의 배분이라니... 무의미하게 병상을 차지하고 의료진의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시키는 소생 불가능한 환자 한 명 대신 수많은 건질 수 있는 환자를 돕는 게 낫다는 의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말은 학회에서만 하면 좋겠다. 죽어가는 환자와 소중한 사람을 잃어가는 가족들이 사회 전체의 의료자원의 분배까지 생각해줄 필요도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환자는 고통 없이 존엄을 지키며 아름답게 세상을 떠나게 하고, 환자의 가족들은 안타까운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하루 빨리 슬픔을 극복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인생의 의의를 배우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호스피스 의료의 목표다. (165쪽)"

"DNR 동의서를 작성하고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것이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살릴 수 있다면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살릴 수 없다면 환자의 존엄을 지키고 고통 없이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183쪽)"

생명의 연장에만 집착하는 것보다 마지막을 평안하게 차분히 준비하는 호스피스 의료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TED 강연에서 아동 호스피스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죽음, 특히 아동의 죽음은 터부시되어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하다가 차가운 벽, 연결해 놓은 기계의 소음, 밝은 불빛, 한밤중에도 편히 쉬지 못한 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어린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아동 호스피스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는 유럽에 비해 강연자가 대표로 있는 아동 호스피스 홈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생긴 곳이라고 한다. 비영리 조직으로 집과 같은 편안함(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음)을 누리게 함과 동시에 의료진이 상시대기하고 있어 안심할 수 있고 어린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각각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부모들은 아픈 아이들과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을 누리고 준비된 작별을 한다. 그리고 슬프고 괴롭지만 다시 삶으로 복귀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제대로 이별하지 않으면 계속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없는 것 같다.

"언어는 소통의 시작이다....환자나 환자의 가족들과 대화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86쪽)"

환자의 눈높이에서의 소통은 이루말할 수 없이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과중한 업무 때문인지 현실화되지 못하는 의료수가 때문이지 의료진의 마인드 부족인지 하여간 환자 및 환자가족과의 소통이 힘든 경우도 왕왕 있는 것 같다.

큰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겁이 나니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각설하고 심폐소생술 해야 할 정도의 응급이 아니면 응급실은 가는 게 아니다. 침상 하나도 얻지 못하고 복도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기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침상 하나를 얻었는데 손에서 담배 냄새 나는 젊은 남성 레지던트가 와서 아기의 얇은 혈관을 보며 덜덜 떨며 몇 번이나 찔렀다 뺐다 하는 것이다. 초조해하는 환자 가족이 보고 있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신생아 수준의 아기 혈관에 주사를 꽂기가 만무했을 것이다. 못하면 바로 IV 전문 간호사를 불러야 하는데 미적미적하는 모습에 애가 새까맣게 타버렸다. 결국 내가 울었다지. 그리고 IV 전문 간호사가 왔는지 안 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레지던트보다는 조금 높아보이는 전공의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설명을 하는데 입과 손에서 담배 냄새 풀풀 나고,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조사 빼고 전문용어였다. 핵심은? 아침 되고 외래 진료 시작돼서 전문의가 오지 않으면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국, 야밤에 쓸데 없는 피 검사, X-RAY 검사, 심전도, 초음파까지 다 찍었는데 아침 외래 시작되니 다 제대로 안 되어서(피 검사할 피의 양이 모자라고, 초음파는 제대로 안 찍히고...) 다시 피를 뽑아야 해서 아기 팔에 또 주사기를 꽂겠단다.

반면, 같은 병원에서 우리 아이를 계속 봐주신 소아 외과 선생님과 소아 안과 선생님은 진정한 의료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아 외과 선생님은 당시에 이미 환갑이 넘으신 연세의 여의사 선생님이셨는데 그 연세에도 직접 집도하시며 외래 갔을 때도 세세히 설명해 주시고 질문을 하면 막지 않고 듣고 대답해 주신 분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소아 외과계의 대모이신 분이었다. 비록 간단한 수술이어서 40분만에 끝나고 상태만 지켜보다가 당일 퇴원 가능한 수술이었는데도 수술 끝나자마자 잠깐 나오셔서 불안해할까봐 나오셨다며 다 잘 끝났고 회복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일망정 7개월된 아기를 수술실로 홀로 보내는 부모 심정을 헤아려 주신 것이었다.

그리고, 소아 안과 선생님은 젊은 분이신데 명의라고 알려져 그냥 예약하려면 길게는 1년도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 이 분은 아기를 안고 방문에 들어서면 검사하는 전등을 아기 눈에 비추셔서 진료실 의자로 가는 동안 이미 아기 눈동자를 관찰하시고 진료실 안쪽 의자에 앉으면 "사시는 아무 문제 없고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실력이야 누구나 인정하는 분인데 더 대단한 건 1년만에 찾아뵈어도 기억을 하신다는 것이다. 아기 때 얼굴이 남아있다거나 엄마 고생 많이 시켰다거나 항상 웃으며 얘기를 해 주시고, 담당 교수님 분위기를 따라 가는 건지 진료실에 계시는 전공의 선생님들도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전날 방에 함께 있는 전공의들을 데리고 다음 날 올 환자들에 관해 공부하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의 관심이시다. 그렇게 공부를 세밀히 하시기에 15분마다 환자가 5명 이상씩 배정이 되어 있는데도 진료가 가능하신가보다. 정말 인술(仁術)을 베푸시는 분이다.

"뇌사자의 장기 기증 때 마취를 하는 것은 마취의에게는 직업 윤리를 다하는 것이고,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들에게는 장기 기증자를 존중하는 것이며, 가족들에게는 환자가 장기를 기증하며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위안을 준다. (194쪽)"

이 부분은 참으로 숙연해졌다. 장기 기증자의 수술에도 마취를 한다는 건 수술대 위에 놓인 환자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존중한다는 것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장기 기증자의 시신을 보고 기롱한 의사들에 관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이미 대학생 때 장기 기증 서약을 했는데 바로 취소했다. 나도 죽어서라도 그런 꼴은 당하고 싶지 않고 내 소중한 사람들도 죽어서라도 그런 꼴은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죽기 전에 제대로 사랑하고, 화해하고, 감사하고, 작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칭송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죽을 때 후회 없이 그리고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고 죽고 싶다.

죽음을 생각할 때야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와서인지 더욱 생각이 많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