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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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온 40세 히토미 씨와 나는 동갑이다. 엄밀히 말하면 만 39세이므로 한 살 어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족보를 엉키게 하는 적폐(? ㅋㅋ)로 간주되는 '빠른' 출생이므로 대략 동갑으로 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히토미 씨의 아버지 시로 씨와 동갑이다. 이렇게 같은 연령대 가족이라서 그런지 더 더욱 공감이 갔던 책이었다.

책의 뒷표지는 가슴이 찡해온다. 사와무라 씨 가족의 젊을 때 모습과 '치비(꼬마)'라 이름지어준 강아지가 함께 있었던 자상한 시간의 한 컷이다.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은 시간은 돌아보면 훌쩍 지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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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러브신보다 그게 민망해.
"뭐??"
"양로원 취재 뉴스 같은 것."
"맞아,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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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후라~"
"올림픽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어떨지..."
언젠가 이별이 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 아직 어린 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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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오고 있다는 것. 알면서도 쉽게 인정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님은 담담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다 큰 자식은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점점 보호를 받던 입장에서 보호자의 입장으로 변화하는 것도 아직 낯설다.

엄마가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닌 걸로 판명이 됐지만) 갑상선에 크게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직접 열어보기 전엔 모른다는 말을 들어서 입원하시고 수술실로 들어가신 적이 있었는데 착잡하고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한 심정이었다. 어려서 중이염과 편도선 절제술을 받으러 딱 한 번 입원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보호자였던 엄마가 이번엔 환자가 되어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걸 보니 더 이상 어린 내가 아니고 더 이상 강인한 엄마가 아님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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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라.
최근에 있었나?
'좋은 일'이라.
어떤 게 '좋은 일'이었더라?
나이를 먹으니
건강하게
지내는 게 그냥
'좋은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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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평탄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없이 지내온 40년은 아니다보니 '좋은 일'이 참 별 거 아니라는 거, 정말 가족 모두 건강하게 평범하게 그래서 어쩌면 지루하게 지내는 매일매일이 '좋은 일'이라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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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웃과 잘 지내는 요령 있어?"
"글쎄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기'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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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꼬치 캐묻지 않기! 큭하고 웃었다. 맞다. 내가 궁금해도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남을 불편하게 꼬치꼬치 캐묻지 말자. 관심과 배려라고 우기지 말고 매너를 갖자. 노리에 씨는 평범한 노년의 주부 같으면서도 가끔씩 정곡을 콕 찌를 때가 있다.

바로 며칠 전, 7살짜리 큰 아들 아침을 주며 엄마 바쁘니 알아서 기도하고 먹으랬더니, "아빠 회사 잘 다녀오게 해 주시고 저도 유치원 잘 다녀오게 해 주세요.... 아멘."이라는 거다. 그래서 "엄마는?" 이랬더니, "엄마? 엄마는 아무 일도 없잖아."

". . . . "

엄마는 딱 어딜 가거나 하는 것이 정해지지 않고 집에 있다는 그런 의미인지는 알겠다만, 엄마도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는 사람이란다, 아들아.ㅋㅋㅋ 참고로 나도 노리에 씨처럼 스케줄 수첩, 이쁜 펜에 사족을 못 쓴다.

이번 사와무라 씨 댁 이야기 2탄에서 사와무라 씨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것만큼 즐거운 또 하나의 묘미는 바로 히토미 씨를 포함한 독신여성 트리오의 수다시간을 통해 그들의 속내를 보는 것이다.

내가 택하지 않은 길. 그래서 더 궁금한 모양이다. 자유롭고 자기관리 잘하고 세련되고 자기 일 하면서 여행도 다니는 삶...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어찌 고민 없는 삶이 있으랴.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이 있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는 법.

이렇게 셋이 수다떠는 걸 보면 일드 <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에서 독신 여성 트리오가 술도 마시며 최근의 열애담, 직장에서의 고충들을 나누는 모습이 떠오른다. 여자친구들과의 오랜 우정이 내겐 로망인가보다. 만나서 남편 얘기, 애들 얘기, 시댁 얘기 아닌 '나'로서 만날 수 있는 친구들... 멋진 것 같다.

사람이 나이듦과 같이, 어려서 함께 지낸 강아지 치비도 나이들어 병들어 죽는다. 그 후로 사와무라 씨 댁은 개를 키우지 않지만 치비의 이름표만은 간직하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 희노애락은 당연한 것인데 담담히 받아들이며 갑작스럽게 당했다고 느끼지 않도록 준비된 삶을 살아야겠다. 40대 초입, 이젠 정말 그래야 할 때다. 이젠 김치도 담가서 양가에 좀 드릴 수 있어야겠다. 마흔쯤 되면 김치쯤 뚝딱 담그고 가사의 달인이 되어 있으며 내 커리어에 있어서도 과장, 차장급의 중견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괜찮다. 이 삶도 나쁘지 않다. 앞으로의 시간을 더 소중히 가꿔가야겠다는 뒷맛을 준 사와무라 씨 댁 이야기 2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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