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배크만 책 중에 제일 괜찮았다. 평범한 사람이 사랑하고 늙어가고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이다. 어깨에 힘 안 주고 편안하게 써내려 간 글이라 그런지 저자의 전작들에 등장했던 괴짜들의 재미있지만 피로감을 주는 이야기보다 난 더 좋았다.

3분의 1 지점까지는 솔직히 읽기 힘들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보면 다 감동적이고 눈물 났다는 호평 일색인데 난 무슨 이야기인지조차 감을 못 잡겠는 것이었다. 치매 환자의 머릿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냈기 때문이었다. 두서 없이 화살처럼 슉슉 날아다니는 기억의 파편들을 써놓은 것이다. 이미 죽은 아내의 젊었을 때의 모습, 이미 노아의 아버지가 된 아들 테드의 어렸을 때의 모습 등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파스텔톤의 예쁘고 정겨운 삽화들이 내용과 어우러져 서정성을 더해줬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아이가 또 커서 아이를 낳는다. 아들은 주인공 남자와 성향이 맞지 않았지만 그 아들의 아들, 손자 노아는 좋은 친구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린 손자, 손녀들의 조합은 세상에서 가장 포용적인 조합이다. 훈육과 옳고그름을 잣대로 하지 않고 절대적 사랑과 신 뢰, 자유가 있는 관계이다. 그래서 모든 아이에게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필요한 것 같다.

"한번은 선생님이 인생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쓰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함께하는 거요."
할아버지는 눈을 감는다.
"그렇게 훌륭한 대답은 처음 듣는구나."
"선생님은 더 길게 써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이렇게 썼어요. 함께하는 것. 그리고 아이스크림."

함께하는 것과 아이스크림이 인생의 의미가 되는 고운 관계이다. 부모는 아이의 인생을 염려해 아이를 조종하고 강요하는 우를 범하지만 조부모는 그저 함께 앉아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얘기를 나누고 감기가 걸려도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려주는 융통성(?)도 발휘한다. 존재 자체를 무조건 수용받는 안정감이란 세상 그 무엇의 가치보다 묵직한 것이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그런 할아버지가 하나씩 기억을 잃어간다. 영원히 붙들고 싶은 이 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스르륵 빠져나가 빈손만 남게 되듯이...

하지만 할아버지의 소중한 손자가 또 건전한 성인으로 장성하여 증손녀를 할아버지에게 데리고 온다. 할아버지의 온기는 이렇게 사라지지 않고 세대를 이어가며 전해지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
불안정하고 부스러지기 쉬운 유리 같은 심성의 소유자였던 어린 나에게 존재 기반이 되어주셨던, 지금은 안 계시는 할머니를 거듭 생각나게 해 주었던 이야기였다. 이렇게 중년이 되도록 성장하여 한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전폭적인 사랑이었다. 내 아이들은 내 할머니이자 그들의 증조할머니를 모르지만, 이렇게 생명의 배턴이 이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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