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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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이 따뜻하고 포근한 소설을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도 보지는 않았지만, 여주인공 역의 시바사키 코우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강하고 개성 있는 마스크가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리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었지요. 영화 정보를 모르고 오히려 편견 없이 소설을 접했다면 더 일찍 읽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본서는 일본발 힐링소설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요리와 음식을 매개로 한 연작소설 느낌의 에피소드로 전개될 것이 사실 뻔할 거라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요. 조금 따뜻하고 조금 엽기적인 그런 느낌일 거라는 감이 왔어요. 그리고 실제로 읽어보니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공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는 있구나 싶었습니다.

같은 자극의 자석끼리는 되도록 멀리 떨어지듯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엄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도시에서 일과 사랑을 좇으며 살아온 20대 여성 린코는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회귀 본능을 가진 연어처럼 그리도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 엄마가 있는 곳으로 빈털털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할 줄 아는 것, 하고 싶은 것 바로 요리를 통해 서툴고 어설프나마 그녀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해갑니다.

그녀는 목소리를 잃고 필담으로 의사를 전달하는데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정성이 그녀의 본질이기에 말을 할 수 있고 없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 지역에서 나는 그 땅의 식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재료의 본질을 살리는 요리를 하며 마음문을 꽁꽁 닫은 사람, 상처받은 사람, 비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갑니다. 바로 하루 한 팀만 받는 달팽이 식당에서요.

길가에 뒤집어진 공벌레를 구해 주는 것이 행복했다.

닭이 갓 낳은 계란을 뺨에 대고 온기를 느끼는 것도,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의 다이아몬드보다 예쁜 물방울을 발견하는 것도,

대나무 숲 입구에서 발견한 레이스 컵받침처럼 아름다운 비단그물버섯을 겨된장에 넣어 먹는 것도.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신의 뺨에 감사 키스를 보내고 싶은 사건들이었다. (80쪽)

자연 속에서 허리를 낮추고 땅을 바라보며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볼 때 그녀에게 익숙하고 평범한 그곳은 천국이 됩니다. 너무 예쁜 말들에 제 마음도 몽글몽글 부드러워지는 걸 느낍니다.

나는 주방에 있는 야채 중에서 재료를 골라 잘게 다지고,

익는 데 오래 걸리는 순서대로 버터에 볶았다.

호박을 고른 것은 사토루 군이 감고 있던 산뜻한 겨자색 목도리가 예뻐서.

당근은 창 너머에 펼쳐진 노을 색을 표현하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사과를 추가한 이유는 모모 양의 귀여운 뺨이 빨간 사과를 닮아서였다. (118쪽)

그녀는 미리 손님과 면담을 통해 자신의 직관으로 어떤 음식을 만들지 정해갑니다. 일 년 내내 검은 상복 차림으로 지내는 할머니, 풋풋한 첫사랑의 설렘 속에 있는 고교생 커플, 비밀스러운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온 커플,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맡기고 간 소녀, 그리고 애증의 대상이었고, 이제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를 위해 그녀는 요리를 합니다.

본서를 읽으며 소설과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바베트의 만찬》이 떠올랐습니다. 영화와 소설을 모두 보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바베트의 모습과 본서의 린코의 모습이 오버랩되더라고요. 프랑스의 요리사로 일했던 바베트가 금욕적이고 음울한 한 기독교인들의 마을에 들어와 최상의 식재료로 만찬을 제공할 때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끊겼던 마음의 유대가 이어지죠.

요리에는 인생의 위로가 되는 힘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꼭 큰 병이 아니더라도 기운을 쏙 빼놓는 병을 앓고 난 후의 죽이나 수프 한 그릇, 자극 없이 부드러운 질감, 인공적인 자극 없이 식재료의 개성이 살아있는 음식은 마음의 위로가 되더군요. 린코처럼 타고난 감각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런 음식을 만들어 가족을 살리는 자리에 있을 수 있어 그 또한 기쁨입니다. 린코가 만들어주는 요리의 단 한 팀의 손님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도 감출 수 없네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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