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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 이야기
마크 트웨인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8월
평점 :

여기 한 개가 있습니다. 그녀는 허영심이 넘쳐서 유식해보이는 거창한 단어를 좋아하지만, 자애롭고 훌륭한 어머니의 딸이며, 작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엄마가 되었어요. 그녀에게는 엄마가 붙여준 에일린 마보닌이라는 멋진 이름이 있습니다.
에일린의 어머니는 친구뿐만 모르는 이라도 도움이 필요할 땐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위험이 닥친 순간에 용기를 내라고 배웠고, 친구뿐만 아니라 모르는 이가 위협을 받고 있어도 함께 맞서 싸우라고 배웠다.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계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대답하게 달려들라고, 그리고 위험에 닥친 이들을 도와 주라고, 엄마는 가르쳤다."(27쪽)
그녀는 어머니를 떠나 새 가족인 그레이가로 왔습니다. 이별은 괴로웠지만, 엄마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삼고 다정하고 강한, 어엿한 성견으로 그레이가에서 생활합니다. 멋진 저택, 아름답고 자애로운 그레이 부인, 에일린에게 친절한 그레이가의 하인들, 그레이 부인의 딸 새디, 그리고 갓난아기 모두 완벽합니다. 과학자라는 그레이 씨는 미남에 멋쟁이지만 에일린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와 자고 있던 에일린은 난로에서 불이 옮겨붙은 아기 침대에서 아기를 꺼내물고 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불길은 무서웠지만, 늘 흠모했던 엄마의 말을 따라 대가를 계산하지 않고 아기를 구하려고 한 것이죠. 그런데 아기를 물고 나온 에일린을 본 그레이 씨는 에일린이 아기를 해치려는 줄 알고 몽둥이를 휘두릅니다. 그러나 곧 불길이 치솟고 에일린이 아기를 구하려 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에일린은 가족의 영웅이 되었지만, 그레이 씨가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앞다리를 절게 됩니다.
그레이 부인과 아이들이 친척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에일린은 사랑스러운 딸 강아지가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레이 씨가 동료 과학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곧이어 그들은 안구라고 부르는 것에 관하여 논의를 시작했다. 뇌의 어떤 부위에 특정한 부상이 생기면 과연 실명할지를 놓고 다투었는데, 도저히 본인들끼리 합의를 이룰 수 없는지 실험해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79쪽)
하지만 에일린은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비극이 찾아오죠. 그들은 그 실험에 에일린의 소중한 딸을 사용한 것입니다. 머리를 강타당해 피 흘리는 딸을 핥아주며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곧 딸은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에일린은 씨를 심으면 아름다운 꽃이 피는 자연의 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소중한 딸을 땅에 묻을 때 처음에는 아름다운 강아지로 다시 태어나리라고 생각했으나 몇 주가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고, 하인들은 말하죠.
"불쌍한 것...... 너는 그의 아이를 살렸는데......" (91쪽)
그제서야 에일린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시름시름합니다. 아이를 묻은 곳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허약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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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작품에서 인간의 잔혹함에 농락당하는 개의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졌고 그래서 더욱 비애스럽게 느껴집니다. 마크 트웨인이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였습니다. 펴내는 이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에 마크 트웨인은 문학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세상의 비윤리적인 비극에 서서히 젖어들게 하는 방법으로 공감의 지평을 넓혀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트웨인은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런던의 동물시험 반대협회에 보낸 편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윤리는 가슴 깊이 뿌리내린 본능적 감정과도 같으니까요."(106쪽)
담담한 어조, 아름다운 삽화를 보고 흠뻑 빠져들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틀기의 명수 마크 트웨인이 이대로 끝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럴 때 마치 미스터리 소설의 복선처럼 그레이 씨는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뇌를 구타하여 실명하게 하려는 실험에 관해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정원에 씨를 심는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를 암시합니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뭘 읽었나 싶더군요. 어떻게 이렇게 인간이 잔혹할 수 있는지, 과학자란 신과 같은 것인지, 흥미와 호기심 본위로 생명 있는 존재를 멋대로 죽여도 되는 것인지 분노도 치솟았지요.
실제로 마크 트웨인은 런던 동물실험반대협회 앞으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펴낸 분들의 출간 의도가 정말 마크 트웨인의 행동과 맥을 같이하는 것 같습니다. 문학을 통해 윤리성에 관해 생각해 보고 상상력과 공감을 키우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거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상상력과 공감을 불어넣어 이해의 폭을 넓힙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조명하여 변화를 꿈꾸게 합니다."(112쪽)
이 책은 과학자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화를 모티브로 합니다. 실제로 베르나르의 부인은 여행을 다녀와서 남편이 한 짓을 알게 되고 이혼한 후, 동물실험 반대 단체를 세웠다고 하니 참으로 멋진 여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 사지가 짧거나 없는 아이를 낳게 하는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담긴 신약 '케바돈'이 미국에 유통되기 전에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며 6번이나 승인을 거부한 프랜시스 올덤 켈시라는 여성의 모습에서도 정의와 올바름, 용기를 보게 됩니다.
정말 멋진 책을 기획발굴하여 번역출간하신 분들께도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