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예술인 그림책, 《마트료시카》 by 유은실 글/김지현 그림

마트료시카 ㅣ Dear 그림책
유은실 지음, 김지현 그림 / 사계절 / 2022년 9월

정말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났어요.

러시아 전통 인형으로 알려진 마트료시카 인형을 주제로 하는 그림책이에요.

전자책의 간편함 대신 종이책을 선호하시는 분들은 책 자체의 물성을 좋아하시는 걸 텐데요.

즉, 종이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손으로 만지며 촉감도 느끼고, 색감을 느끼고요.

이 책은 정말로 내지 자체가 고급스럽고 아름다워요.

연필로 밑그림을 사각사각 그리고,

투명한 수채 물감으로 은은하게 채색한 색감을 100% 살려주는 재질의 종이예요.

일곱 개의 인형이 차곡차곡 작은 인형은 조금 더 큰 인형의 품에,

그 인형은 또 조금 더 큰 인형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작가는 첫째에게

제일 너른 품과

가장 큰 꽃그늘

깊은 주름

그리고 큰 손을 주었습니다."

첫째의 너른 품 안에 여섯 인형이 안겨 숲속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나비 한 마리를 품은 첫째

찬 비바람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둘째

하늘빛을 눈에 담은 셋째

뒷모습이 쓸쓸한 넷째

생각에 잠긴 다섯째

터질 듯한 볼의 여섯째

조그마한 입도 없는 일곱째

숲 속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7명의 여인들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흰 나비를 따라 일곱째 아이가 헤매고 있어요.

다른 여섯 명은 일곱째가 걱정입니다.

그러나 일곱째가 닿은 곳은 어린 소녀의 품이었네요. 흰 나비와 함께요.

그림책은 어린아이부터 100세까지 보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 책은 그야말로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네요.

7개의 겹쳐진 목각인형은 우리 안의 켜켜이 쌓인 각 인생 단계의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나와 내 곁의 수많은 여성이라는 동지들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숲속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고요하고 정다운 풍경은

내 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듬는 시간일 수도 있고,

위로가 필요한 다른 누군가, 타인을 보듬는 시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며칠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 책을 보니 더욱 그립네요.

여리고 불안한 정신성의 소유자인 저를 첫째 인형처럼 보듬어주셨죠.

그래서 이렇게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에너지 넘치고 두려운 게 없는 것처럼 보였던 엄마가 할머니가 되셨어요.

여린 나비 같고, 여린 꽃잎 같은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넓은 할머니의 품이 되겠죠.

연필을 사용한 소묘 기법으로 정성스럽게 그린 정갈하고 한없이 투명한 그림을

전시관 벽게 걸린 작품 바라보듯 잠잠히 바라봅니다.

원화 전시라도 하시면 꼭 가서 보고 싶어요.

서로의 적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보듬어주고 아픔 속에서 연대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목각인형, 마트료시카 같은 우리가 되었으면 해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